젊은 산악인들 “산 오르는 것 힘들지만 산 내려와서 살길은 더 힘들어”

입력 2011-11-15 03: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 젊은 산악인들 생활고에 ‘투잡족-알바족’

“산 오르기가 어렵다 하지만 내려와 살기는 더 어렵다.”

11일 오후 네팔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을 오르다 갑작스러운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은 장지명 원정대 대원(32). 장 대원은 아웃도어 스포츠업체 지방 대리점에서 개최하는 국내 산악 등반에 안내원 역할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장 대원의 한 지인은 “(장 대원은) 늘 꿋꿋한 모습이었지만 때로는 ‘등반에 장비가 많이 필요한데 마련할 방법이 없다’며 아쉬워하곤 했다”고 전했다.

산 위에서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젊은 산악인들이 산을 내려와서도 생계를 유지하려 ‘투잡족’과 ‘알바족’을 자처하는 삶을 살고 있다. 고산등반 성공은 국가이미지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하산한 전문 산악인의 삶은 늘 고단하다.

얼마 전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의 원정대 일원이었던 고 신동민 대원은 등반과 관계없는 제과·제빵사 자격을 취득해 제빵사로 일했다. 신 대원은 한때 아웃도어 스포츠 브랜드인 N사 고객상담팀에서 불량품을 다시 재봉하거나 손상된 재킷 내충재의 털을 갈아 넣는 일을 하기도 했다.

엄홍길(50), 오은선 씨(44) 등 유명 산악인들은 아웃도어 브랜드의 이사직을 맡아 연봉을 받지만 대다수 산악인은 소속 회사조차 없다. 기업스폰서를 받아 고산 등반에 나서더라도 실비 외에 경제적 대가는 거의 없다.

이형모 씨(31)는 박영석 대장 팀에서 수년간 대원으로 활동하며 2005년 26세의 나이로 에베레스트 남서벽 등반에 성공한 전문 산악인이다. 이 씨는 2009년부터 등반을 중단하고 사이클로 종목을 바꿔 후원사(알피엠스포츠) 소속 선수가 됐다. 이 씨는 “등반을 쉴 때마다 대기업 신입사원 연수에서 함께 등산하고 길을 알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해 돈을 모았다”며 “등반으로 경제적 대가를 얻은 건 남서벽 등반에 성공했을 때 격려금으로 받은 300만 원이 전부”라고 말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산악인의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부족하다. 대한산악연맹 관계자는 “유명 산악인이 사고를 당하면 후원사나 소속사에서 위로금을 받기도 하지만 다른 산악인들의 경우 합동장례식을 치르고 난 뒤 유족들이 조의금을 나누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한국 산악계의 원로인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65)은 “산에 대한 열정으로만 버티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안쓰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업 후원금은 수억 원에 달하는 등정 비용으로 모두 쓰인다. ‘스타 산악인’의 원정대도 예외는 없다. 한국인 최초이자 세계 6번째로 에베레스트와 로체를 연속 등정한 김미곤 씨(38)는 “올해 9월 세계 14좌 가운데 하나인 티베트의 시샤팡마(해발 8027m)를 오를 때 소속사와 지자체(전북도청)에서 후원을 받았는데도 비용이 부족했다”며 “결국 선배들에게 손을 벌리고 마이너스통장을 이용하고 나서야 산으로 나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에베레스트 등 해외 고산등정을 지원하는 국제산악활동지원금마저 삭감돼 고통은 커졌다. 국제산악활동지원금은 1986년 아시아경기 당시 고산등반을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린다는 취지로 생겨 매해 1억여 원을 3개 안팎의 원정대에 지원해 왔다. 2006년 1억1534만 원에서 2009년 7512만 원, 2010년 7538만 원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며 그마저도 올해는 아예 지원되지 않았다. 내년 예산에서도 삭감될 예정이었으나 최근 문화체육관광부가 다시 예산심의를 신청해 현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심의 중이다.

박영석 대장 구조대 대원으로 에베레스트를 밟았던 산악인 김창호 씨(41)는 “그간 국고지원금은 해외 고산원정의 종잣돈이자 산악인들의 자부심이었다”며 “영국은 왕립지리학회를 통해, 미국은 정부가 참여하는 기금 형태로, 중국은 국가 차원에서 고산등반을 지원하는 상황에서 국고 지원이 오히려 줄어드는 우리의 현실은 젊은 세대에게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윤식 기자 jys@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