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애 “예뻐보이던 ‘서른살 치매’ 일부러 안 망가졌냐고요?”

입력 2012-01-05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여인을 연기한 수애는 “할 수 없을 것 같던 역할을 소화할 수 있던 길은 바로 대본에 있었다”고 말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드라마 ‘천일의 약속’에서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여인을 연기한 수애는 “할 수 없을 것 같던 역할을 소화할 수 있던 길은 바로 대본에 있었다”고 말했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천일의 약속’ 수애, 아직 못 다한 이야기

망가지고 싶어도 감독님이 만류
늘 사랑받는 서연, 끝까지 아름다워야 한다고…
김수현 작가님이 방송 후 치열하게 잘 싸웠대요

대상 못 받아 연말 시상식 불참?
이서연 캐릭터를 떠나보낼 시간 가져
제가 너무 유난을 떨었나봐요
이젠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가 하고 싶어요


“치열하게 싸우고 치열하게 연기했어요.”

안방극장을 4개월 동안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수애. 그는 SBS 드라마 ‘천일의 약속’(극본 김수현·연출 정을영)에서 알츠하이머에 걸린 이서연을 연기했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다 결국 죽음에 이르는…, 서른 살 여자가 감당하기는 결코 쉽지 않은 인물이었다.

4일 서울 장충동의 한 호텔에서 만난 수애는 이서연과 헤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방송 내내 이서연으로 살다보니, 드라마가 끝나도 쉽게 떨쳐 보내기 힘든 눈치였다.

공교롭게도 그는 지난해 연말 열린 SBS ‘2011 연기대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지만 상황을 잘 모르는 이들로부터 “대상을 받지 못해 참석하지 않았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받았다.

“마지막까지 정말 망설였어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게 사실이에요. 열심히 한 드라마가 평가를 받는 것인데 배우로서 최고의 선물이죠. 이서연에게 올인해 연기하다보니까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었어요. 여느 배우도 마찬가지겠지만,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거든요. 저만 겪는 일처럼 유난을 떤 거 같아서 정말 죄송해요.”


● “제 내공으로 힘든 캐릭터라 고사하러 갔다가 그만…”

‘천일의 약속’은 그에게 남다른 작품이다. 연기자로선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김수현 정을영 콤비의 작품. 거기에 연기는 쉽지 않았지만 감정 기복이 큰 인물을 해냈다는 성취감도 준 드라마다.

원래 수애는 처음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어려운 캐릭터”라고 완강히 거절했다.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여서 대본을 받고 정말 설레었어요. 저한테 대본이 왔다(출연제의)는 사실이 뛸 듯이 기뻤거든요. 그런데 막상 대본을 보니 알츠하이머에 걸린 서른 살의 여자라는 캐릭터여서 ‘내가 과연 연기할 수 있을까’라는 충격에 빠졌죠. 아무리 고민 고민 해봐도 제가 도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는 연출자 정을영 감독을 만나 “죄송하다. 정말 못하겠다”고 고사를 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정 감독은 “당신 밖에 없다. 잘 해주리라 믿는다”며 격려를 했고, 결국 수애는 이서연을 맡기로 생각을 바꾸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 순간 도전이었고, 두려웠어요. 솔직히 말하면 공포를 느낄 정도였죠. 촬영 내내 가장 많이 한 말이 ‘힘들어요, 감독님. 무서워요’였어요. 그럴 때마다 ‘잘한다. 잘하고 있다’고 감독님이 힘을 실어주셨어요.”

과연 이렇게 무섭고 버거웠던 인물을 그는 어떻게 연기할 수 있었을까. 뭔가 기발한, 깜짝 놀랄 비밀을 기대했지만 수애의 대답은 의외로 평범했다. “길은 대본에 있었어요.”

“알츠하이머라는 병에 걸린 여자, 단순히 제가 아는 상식으로는 표현하기 불가능했어요. 자료도 찾고 공부를 많이 했지만 정답은 대본에 있더라구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는 모습 등. 김수현 작가님은 저에게 ‘수애는 착해 보여. 서연은 치열해야 해. 치열하게 싸워줘’라고 부탁했죠. 방송 후에 ‘잘 싸우네’라고 칭찬해주셨어요.”


● “이제는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하고 싶어”

드라마 후반부 알츠하이머 증세가 악화되는 데도 수애는 단아함이 돋보였다. 이를 두고 시청자들은 망가지지 않은 모습이 사실적이지 않다고 문제를 삼았다. 카레를 손으로 퍼먹고, 기저귀를 차는 상황에서도 이상하리만큼 예뻐 보였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사실 ‘예뻐 보이고 싶은 여배우의 욕심’이 아니라 정을영 감독의 계산된 연출이었다.

“머리도 헝클어지고, 옷에 이것저것 많이 묻고, 발바닥도 새카만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자고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감독님이 ‘안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서연은 사랑받는 캐릭터고, 늘 사랑하는 남자와 고모가 있어 그럴 수 없다는 판단이셨어요. 사실 드라마에서 외모가 망가지면 배우는 편해요. 그런데 서연은 끝까지 아름다워야 한다고 고집했고 내면과 눈빛으로 시청자들과 소통하기를 원했어요.”

수애는 “이제 큰 산을 넘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당분간 쉬고 싶은 심정이지만, 역시 속내는 배우여서 “10분 후 정말 좋은 시나리오를 보면 또 도전하고 싶을거에요”라고 한다. 액션, 멜로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했지만, 이제는 가벼운 일상을 보여줄 수 있는 로맨틱코미디에 욕심을 내고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가볍게 내려놓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유독 저에게만 어려운 것 같아요. 편하게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어요.”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ngoostar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