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수는 지난해 67이닝을 던지며 뒤늦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기세를 올해도 이어나가야 비로소 ‘대기만성’이라 말할 수 있다. 스포츠동아DB
이대호 루킹삼진 잡는 겁없는 승부사
좋은 파워포지션 불구 중심이동 숙제
풀타임 지구력 키우면 대형투수 재목
최근 5년간 SK의 마운드는 역대 최강으로 불릴 만 했다. 전성기의 현대도 최강 투수진이었는데, 현대가 선발 투수(최초 선발 5명의 60승 돌파)의 힘과 마무리 투수에 강점이 있는 구조임에 비해 SK의 마운드는 선발·중간·마무리 등 역할 분담에 있어서 더 세분화됐다. 흔히 말하는 벌떼 야구를 펼칠 수 있는 구성이었다. 선발 투수가 승리를 많이 챙기지 못했던 단점도 있었지만, 중간 투수에게 역할을 돌려줌으로써 엔트리에 들어 있는 모든 투수들이 항상 긴장감을 갖고 경기를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선발 투수가 아닌, 첫 번째 등판하는 투수’라 말할 정도로 선발 투수들의 능력보다는 그 다음을 준비하는 투수의 능력이 더 뛰어났다(?)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SK의 야구가 정립될 수 있었던 이유는 좌완 투수들의 눈부신 활약 덕분이었다.
박희수의 강점은 승부사적 기질이다. 2011년 10월 1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 8회초 무사 만루에서 이대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고 있는 박희수.스포츠동아DB
김광현, 이승호(롯데로 이적), 정우람, 전병두(부상으로 지난해 성적이 좋지 않았음), 고효준(군입대 예정) 등 어느 팀에서도 선발로도 당장 기용 가능하고 중간 계투로는 최적의 기량을 갖췄으며 마무리도 소화해낼 수 있는 투수가 있어 다른 팀의 부러움을 샀다. 여기에 LG에서 이승호가 합류했고, 김태훈이란 좋은 신인도 있었다.
덕분에 SK는 무려 6∼7명이나 되는 믿음직한 좌투수를 보유하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좌타자만 상대하는 좌투수가 아닌, 좌타자·우타자 모두를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좌투수라는 점이다. 최근 더욱 심해진 ‘좌·우 놀이’,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원포인트 릴리프’(왜 좌투수만 좌타자 상대 후 투수를 교체할까?)를 쓰는 상식을 깨뜨릴 수 있었던 것도 좌투수들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2011시즌 SK의 마운드는 시작부터 균열의 조짐이 보였다. 확실히 피로해 보였고 구위가 떨어져 있었다. 이런 시점에 또다른 새로운 좌투수가 탄생했다. 그가 바로 박희수다.
6월 17일 LG전에서 프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면서 박희수는 존재를 알리기 시작한다. 39경기 방어율 1.88, 4승 2패 1세이브 8홀드 기록, 총 투구수 1084개. 이닝당 평균 투구수 16.18개, 9이닝당 평균 삼진 10.21개, 9이닝당 평균 볼넷 허용 4.03개, 피안타율 0.175가 지난해 성적이다.
기록으로만 보면 깜짝 놀랄만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1군에 늦게 합류한 신인 투수(?)치고는 오만한 성적이다. 더군다나 깜짝 등장과 함께 성적 이외의 포스는 가히 센세이션을 일으킬 정도의 파급력을 보여주었다. 통산 투구 이닝이 87이닝인데 2011년 시즌 투구 이닝이 무려 67이닝이다. 확실히 SK는 선수들을 잘 뽑는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하게 된다. ‘시간과 경험만 쌓이면 잘할 수 있는 잠재적 능력을 갖춘 선수를 선택하는 것이 먼저냐, 들어온 선수를 잘 지도해서 훌륭한 선수로 잘 키우는 것이 먼저냐’라는 문제는 아직도 정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영화 ‘머니볼’에서도 나왔지만 미국, 일본, 한국 등 프로야구가 성행하는 주요 나라에서도 매년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신인 드래프트가 이루어지고 있다. 박희수도 대전고 졸업 당시 SK에서 선택을 했지만 동국대로 진학하면서 2006년에 비로소 SK에 입단하게 된다.
어쨌든 박희수는 대학 시절을 알차게 보낸 듯 하다. 입단 후 빨리 상무 입대를 결정한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어려운 시기를 잘 이겨내고 늦게 꽃이 피는 선수가 분명히 있다. 박희수도 조금은 늦게 꽃이 피기 시작했다. 경험적으로 보면 이런 선수는 꼭 2년째 시즌이 정말 중요하다. 확실히 만개하는 토대를 만드는 시즌이 될 것인가 아니면 또 한번의 어려움을 겪을 것인가는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다. 새로운 시즌을 만들기 위해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또다른 날갯짓이 꼭 성공하여 SK 마운드의 희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변화 그리고 성장
올시즌 SK의 투수진은 많은, 또 큰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감독이 바뀌어 투수 기용부터 많이 달라질 것이다. 만약 선발 투수가 되면 타선의 도움을 받아 많은 승수를 챙기지 않을까 예상해 본다. 올시즌 새로운 감독이 어떻게 경기를 풀어갈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메이저리그식 투수 기용을 한다고 말한 이상 선발 투수를 길게 끌고 갈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필자가 보는 박희수는 선발 투수로도 충분한 기량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며, 정대현이 빠진 마무리를 맡아도 90% 이상의 성공률을 가질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지난 시즌처럼 ‘미들맨’의 보직을 맡는다면 선수의 능력을 극대화시키지 못할 수 있다. 때문에 보직이 사실상 결정돼 있어야 한다.
본인의 말로는 이번 시즌을 대비해 슬라이더를 배우겠다고 한다. 선발 투수로 내정된다면 본인의 생각과 맞아 떨어지는 좋은 계획이 될 수 있겠지만 마무리 투수로 선택되면 새로운 구종의 연구 노력에 쏟을 시간보다는 현재 자신의 구종을 더 정교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우선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투수의 보직을 코칭스태프가 결정해야 한다. 그에게 주어진 역할이 시즌을 치르면서 맞지 않으면 신중하게 변화를 주어야 하겠지만 주요 선수의 역할에 대해서는 지금부터 결정지어 주는 게 좋다.
2011시즌 후반기(6월)부터 두각을 나타낸 선수지만 아직은 신인 티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준비할 수 있는 마음과 몸의 여유가 필요하다. 박희수의 투구폼 중 ‘파워 포지션’자세(두 발이 완전히 땅에 닿아 있고 왼팔이 머리 위쪽에 90도의 위치를 만들고 글러브 낀 손은 옆구리에 완전히 밀착된 자세)에서 강한 투구를 하기 위해 준비하는 동작은 정말 나무랄 데가 없다.
강한 볼을 던지겠구나 하는 느낌이 분명히 온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공을 던지는 순간(임팩트 시기)에 뒷다리가 너무 펴져 있어 하체의 중심 이동이 앞으로 되지 못하고 있다. 팔이 뻗어지고(던지고), 허리가 돌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뒷다리(축이 된 다리)가 앞으로 따라가면 훨씬 더 강한 공과 제구 그리고 중요한 지구력이 생길 수 있는데 지금은 상체로만 투구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 시즌 후반기부터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플레이오프까지 치르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물론 그런 긴장감 넘치는 경기를 치러내면 체력이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체중 이동이 좋은 투구폼을 가졌다면 체력 소모를 어느 정도 줄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올시즌은 어떤 형태로든 풀타임을 뛰어야 한다. 선발로 뛰게 되면 지난해보다 세 배 많은 이닝을 던져야 하며 ‘미들맨’으로 나서도 두 배 많은 경기수를 기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올시즌 박희수의 최대 과제는 지구력, 오랫동안 던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첫 번째라고 생각한다. 또한 더 중요한 순간에 더 많이 투입될 것이 분명하다.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은 지난해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아질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이러한 부분에서 철저한 준비를 해야만 첫 풀타임 시즌을 무사히 넘길 수 있다.
○승부사
2011년 플레이오프 3차전 1사 만루 상황에서 천하의 이대호를 몸쪽 공으로 ‘루킹 삼진’을 잡아내는 배짱과 연이어 홍성흔까지 완벽하게 헛스윙 아웃으로 잡아내는 모습에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의 모습이 이 선수의 강한 승부력, 정신력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올시즌 어떤 역할도 확실히 소화해낼 것으로 확신한다. 하지만 이 선수에게 많은 역할이 주어져 뛰어난 기록들을 세우면서 그동안 고생하며 꿈꿔왔던 대선수에 한 발 더 다가서길 기대해 본다.
스포츠동아 해설위원
○ SK 박희수는?
▲생년월일=1983년 7월 13일
▲출신교=유천초∼한밭중∼대전고∼동국대 ▲키·몸무게=184cm·84kg(좌투좌타)
▲프로 입단=2002 신인 드래프트 SK 2차 6번(전체 43번) 지명·2006년입단
▲2011년 성적=39경기 4승 2패 8홀드 1세이브 방어율 1.88(67이닝 14자책점)
▲2012년 연봉=70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