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차’에서 사랑스런 연인과 내밀한 신분의 비밀을 동시에 가진 인물을 연기한 김민희.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봄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의 창가에 앉은 김민희는 화장기 없는 얼굴에 개나리색 스웨터를 입고 몇 번이나 자지러지게 웃었다.
햇살을 얼굴에 담은 모습이 마치 한 편의 CF를 보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실제론 투명하게 보이는 김민희(30)와 8일 개봉하는 영화 ‘화차’(감독 변영주) 속 미스터리한 김민희 사이에는 좀처럼 비슷한 구석을 찾아보기 어렵다.
극과 극이 더 잘 통해서일까. 사람을 죽이고 대신 그 신분으로 사는 ‘화차’의 주인공 선영은 김민희를 만나 처연하고도 섬뜩한 인물로 탄생했다. 한국영화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신비로운 여자 캐릭터다.
‘화차’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그가 내뱉은 말은 “나 할래”였다고 했다. “(데뷔하고) 12년 만에 기회가 왔구나.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텐데. 막연하게 꿈꾸던 것들이 다 들어있었어요. 백 퍼센트 만족스러웠죠.”
개봉을 앞둔 그는 “성취감에 푹 빠져있다”며 수줍은 듯 웃었다.
● 속옷만 입고 피칠갑 살인 연기
“좋아하는 일을 할 땐 스스로 흥이 나서 해요. ‘화차’가 딱 그랬죠. 영화의 맑은 느낌이 좋아요. 얇고 깨질 듯 아슬아슬한데 그게 아름다워요.”
‘화차’는 결혼을 앞두고 사라진 연인 선영을 찾아 나선 약혼자 문호(이선균)의 시선으로 진행한다. 문호의 추적으로 선영의 실체가 하나씩 밝혀지고 거짓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여자의 삶이 드러난 순간 연민과 충격이 동시에 터진다.
감독과 배우의 좋은 궁합은 영화에 큰 동력을 일으킨다. ‘화차’의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힐만한 펜션 살인 장면은 그 힘이 제대로 발휘된 순간이다. 김민희는 속옷만 입고 몸에 피칠갑을 하고 바닥에 뒹굴며 절규한다. 속옷만 입는 건 변영주 감독의 아이디어. 조심스러워 하던 변 감독에 비해 김민희는 흔쾌히 동의했다.
“촬영을 시작했는데 뭔가 스스로 생각지도 못하게 움직이고 있었어요. 겁이 났고 두려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잡념이 없어지고 몸이 자유로워진 느낌이었고 그 장면을 끝내고 ‘화차’를 할 수 있겠다는 자신을 얻었죠.”
● “누군가를 질투하기엔 내 자신에게 너무 미안하다”
김민희는 ‘화차’를 만난 걸 ‘인연’으로 생각하고 있다.
“다 인연이 있듯이 하고 싶지만 오지 않는 건 ‘그래 내 게 아니야’라고 포기해야 해요. 마음 비우는 연습을 했다고 할까.”
김민희는 또 “대중은 보고 싶은 부분만 보는 것 같다”고도 했다. 발랄한 모습을 보여준 드라마 ‘연애결혼’이나 사회부 여기자로 나온 영화 ‘모비딕’, 허술한 작가 지망생이던 ‘뜨거운 것이 좋아’까지 저마다 다른 인물을 연기했는데도 막상 대중의 반응을 접하고 깨달은 사실이다.
김민희는 “제가 추구하는 삶은 만족하고 따뜻한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질투하는 일도 없다.
“질투하면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해요. 최고가 아니더라도 그냥 저를 인정하고 싶어요. 늘 평가받아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저에게 더 관대해지고 싶고, 그것만은 저에게 꼭 줘야할 것 같아요.”
알려진 대로 그는 공효진, 신민아와 ‘절친’이다. 공교롭게도 ‘화차’와 공효진이 주연한 영화 ‘러브픽션’은 같은 시기 개봉한다. 김민희는 “친하다고 해놓고 둘 중에 한 영화만 잘되어서 연락 안하고 그런 건 아니겠죠”라고 하더니 “이건 정말 농담이에요. 농담”이라며 웃었다. 세 사람은 고등학생 시절 잡지 모델로 만나 지금까지 비밀을 털어놓는 사이다.
김민희는 패셔니스타의 대표주자로도 꼽힌다. 그래서 봄을 맞아 맞는 패션 팁을 공개해달라고 주문하자, 김민희는 “봄… 이 때 쯤이면…”이라고 말을 흐리다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자세히 다 나와요. 요즘엔 옷 잘 입는 분들 정말 많은데 제가 뭘…. 하하.”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deinhar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