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수완 작가. 사진 제공=팬엔터테인먼트
시청률 40%를 넘으며 큰 인기와 화제를 모은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이하 해품달). 지난 3개월, 아니 지난 2년여간의 대장정을 마친 진수완 작가를 만났다. 그는 드라마에 다 담지 못한 숨은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놓았다.
“정치적인 이야기들을 더 하고 싶었죠. 윤대형은 칼을 맞아 그 자리에서 죽는 게 아니라 생포돼 사지가 찢기는 거열형을 당해요. 그전에 옥사에서 왕 이훤(김수현)과 정치적 토론을 펼치죠. 딸 윤보경(김민서)의 죽음 소식을 들은 윤대형이 눈 하나 깜짝 안 하자 이훤이 ‘아비로서 어찌 그러느냐’고 놀라 물으니 오히려 윤대형이 ‘원래 정치란 것이 그렇다. 주상이 이리 연약해서 이 나라를 이끌어 가겠느냐!’고 큰소리쳐요. 이후 홀로 남았을 때 몰래 눈물을 훔치죠.”
하지만 고심 끝에 결정한 결말에 후회는 없다. 진 작가는 “마지막에 양명, 설, 보경까지 다 죽어서 내용이 우울하잖아요. 그동안 드라마를 애청해준 시청자들에게 감사의 의미로 웃을 수 있는 내용을 담자고 결정을 했죠. 그게 바로 이훤과 내관 내시 형선(정은표)의 가야금 쇼입니다. 제 아이디어인데 보조 작가들이 듣자마자 ‘빵’ 터지더라고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는 “낯을 많이 가린다. 말을 잘 못한다”며 인터뷰를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수많은 뒷이야기와 시청자들의 궁금증에 답변, 혹은 해명으로 또 한편의 ‘해품달 품은 작가’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나갔다.
▶“시청률 40%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그래프 분석”
‘해품달’의 시청률은 가히 놀라웠다. SBS, KBS와 함께 동시에 출격한 MBC 수목드라마 ‘해품달’은 첫 회부터 18%의 시청률로 순항을 시작해 막방 시청률 42.2%(AGB 닐슨미디어리서치 제공, 전국기준)로 화려한 매듭을 지었다. 시청률이 40%를 넘은 것은 2010년 ‘제빵왕 김탁구’ 이후 1년 3개월만.
높은 시청률 덕분에 드라마 작가로서 지난 석 달은 행복과 그에 따르는 부담감의 혼합이었을 것.
“시청률이 잘 나오니까 더 일희일비하더라고요. 처음에는 20%만 넘으면 쓰고 싶은 대로 쓰면 되겠다고 맘 편히 생각했는데, 가진 자의 오만인 건지 40%에서 30%대로 떨어지면 실시간 시청률 표까지 보며 왜 그러나 분석해요.”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그는 특히 원작 소설이 있는 드라마여서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각색 작업은 항상 하나의 고통을 더 안고 가요. 바로 끊임없는 원작과의 비교와 캐스팅 논란입니다. 조금만 잘못되면 원작 훼손이란 말을 들어요. 특히 정은궐 작가의 ‘해를 품은 달’은 이미 팬덤이 있는 작품이어서 잘해도 본전이라고 마음먹고 시작했어요. 그럼에도 체력이 떨어지면 예민해져서 상처를 받더라고요”
이 때문에 진 작가는 의식적으로 인터넷도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간 작가를 해오면서 들은 욕보다 더 많은 욕을 들은 것 같다”며 “드라마의 인기 때문이겠지만, 방송 초기에만 보고 못 보겠더라. 이후로는 보조 작가를 통해 대체적인 여론의 흐름과 실수하는 부분 등에 대해서만 따로 들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특히 로맨스를 잘 그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자다가 가위에 눌릴 정도였다.
“원작에 이훤과 허연우의 사랑이 정말 매력 있게 잘 묘사돼 팬들의 기대가 높았어요. 촬영 감독이 ‘시간상 몇 신 잘라야 할 것 같다’고 말하면 ‘제발 로맨스만큼은 건들지 마세요!’라고 요청했죠.”
그 밖에도 그는 원작을 가장 잘 표현하면서도 드라마에 맞게 재구성하기 위해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왕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하는 ‘개연성’ △고급스러운 수묵화 느낌의 원작을 전 계층이 즐길 수 있게 하는 ‘대중성’ △드라마로 옮기며 변주될 수밖에 없는 ‘캐릭터 묘사’ △개별 인물 중심의 이야기에서 하나의 사건 중심의 이야기로 흡입력을 높이는 ‘이야기의 힘’ △정치코드와 로맨스코드를 적절히 섞는 ‘황금 비율’, 이 다섯 가지에 특별히 힘써 각색 작업을 해나갔다고 설명했다.
▶ 한가인 연기력 논란? “한가인 아니었어도 욕먹었을 것”
드라마 초반에 가장 많은 논란이 있었던 것이 바로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특히 여주인공 한가인의 연기력에 대해 시청자들은 원작과 비교, 상대 배우인 김수현과의 조합, 어색한 말투 등을 이유로 들어 불만을 제기했다. 직접 대본을 쓰고, 배우들의 연기를 지켜본 진수완 작가는 이들의 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진수완 작가는 “한가인이 아닌 누가 했어도 불만이 있었을 것”이라고 배우를 감싸듯 말했다. 실제로 그는 “조폭 기질이 있는지 캐스팅이 된 후에는 내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 왈가왈부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덧붙였다. 그렇다고 그의 말이 빈말은 아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작품을 해오며 불만이 없는 배우는 없었어요. 누가 해도 ‘조금만 이렇게 해주지’라고 생각하는 부분과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디테일하게 해줬네!’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공존했죠. 이번에는 특히 드라마가 열리기도 전에 한가인이 마녀사냥을 당하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아팠어요.”
이훤 역의 김수현에게는 불만이 없었을까. 그는 앞선 인터뷰를 통해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6부에서 김수현의 연기를 보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아역들이 너무 잘해주고 퇴장해 성인 배우들이 무척 긴장한 것 같았어요. 특히 김수현이 어깨며 연기에 힘이 빡 들어가 있더라고요. ‘그럴 필요 없는데. 하던 대로 하면 되는데’라고 조바심을 냈죠. 하지만 곧 톤 조절에 바로 들어가더라고요. 다행이었어요.”
그렇다면 연기력보다 앞서 캐스팅 자체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을까. 그는 당당하게 “이것이 최선”이었다고 답했다.
“제작진이 공식홈페이지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언급된 인물들을 다 고려해보지 않았겠어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최종적으로 낸 결론이 지금의 캐스팅입니다. 각자 원작을 보고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고, 그것과 배반이 되면 싫은 거죠. 모두를 만족하게 할 캐스팅은 없어요. 저는 최상의 캐스팅이었다고 생각해요.”
진 작가는 이어 각 주연 배우들을 떠올리며 마치 잘 키운 자식을 자랑하듯 장점들을 하나하나 짚었다. 양명 역의 정일우는 진지하고 물음이 많은 노력파 배우, 운 역의 송재림은 긍정적 에너지가 넘치는 배우, 허염 역의 송재희는 이후의 스토리를 내다보며 연기할 줄 아는 어른스러운 배우, 잔실 역의 배누리는 무속이라는 이질감 있는 소재를 대중화시킬 수 있는 귀여운 배우, 민화공주 역의 남보라는 클라이맥스에 도달하기까지 완급조절을 할 줄 아는 배우, 윤보경 역의 김민서는 눈빛이 살아있는 배우라는 등 더 이야기할 것 없나 고민하며 배우들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말에서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핏빛 위에서 이뤄진 사랑이 뭐가 그리 예쁘겠어요?”
진 작가는 두 주인공만 남아 행복한 것이 영 결벽에 걸렸다며 결말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는 “외척들 제거한다고 설도, 양명도 죽는데 둘만 남아 이뤄진 사랑이 뭐가 예쁘겠냐. 과연 행복할까 싶었다”며 “결국은 연우에게 중전자리를 찾아주는 것만이, 아닌 근본적으로 개혁 필요성이 있는 사건들을 만들어 처음부터 이야기를 꾸몄다”고 말했다.
“가상의 왕이라 업적이나 사건을 만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다른 왕의 잔영이 보이는 순간 그 왕의 모조품이 돼버리기 때문이죠. 그래서 정치적 사건들은 소소하게 그릴 수밖에 없었어요. 어쨌든 소소한 사건들로나마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개혁의지가 있는 왕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격이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 앉아있으면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알고 이를 지키려는 왕이요.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과정에서 연우 또한, 자신의 중전 자리를 찾은 거죠.”
문제가 되었던 양명의 죽음 역시 첫 회부터 치밀하게 예고된 바였다. 진 작가는 “1, 2회에서 ‘두 개의 태양’이라는 구절을 내세우면서 이미 결말을 예고했다”고 답했다.
바를 정(正)에 둘 치(置). 18회에서 언급됐듯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 이훤의 바람이었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
진 작가는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앞으로는 각색이 아닌 정말 하고 싶은 자신의 이야기를 꼭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보였다.
“이제는 ‘해품달’도 내 손을 떠나가 자신만의 생명을 얻은 듯해요. 다른 이야기를 또 만들어야죠. 생각해놓은 소재는 늘 있는데 늘 거절당했죠. 하하. 아직 날 것이라 더 다듬어서 준비해나가야죠”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결국 해피엔딩을 맞은 ‘해품달’ 처럼 진수완 작가 역시 유쾌한 웃음으로 후일담을 마무리했다.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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