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라면 누구의 발밑에도 서본 적 없는 사나이가 무릎을 꿇었다. 이종범은 5일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그간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큰 절을 올렸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beanjjun
“팀에 도움 안되면 옷벗을 각오…충동적 결정 아냐
KIA 성적에 방해될 것 같아서 은퇴경기 사양한 것”
이종범(42)이 눈물과 함께 은퇴했다. 그리고 “꼭 다시 KIA 유니폼을 입고 돌아오겠다”며 지도자, 감독의 꿈을 밝혔다.
2009년 10월 24일 밤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 15층 로즈홀에서 이종범은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환하게 웃었다. 3년여의 시간이 흐른 2012년 4월 5일 똑같은 장소에서 그는 은퇴 기자회견을 열었다.
담담한 표정으로 회견장에 들어서 고개 숙여 인사한 이종범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었다. “타이거즈 유니폼을 동경하며 야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유니폼을 처음 입는 순간 너무나 기뻤다. 그리고 마지막 같은 유니폼을 입고 은퇴해 감사하다. 저는 행복한 선수였다.” 그는 한 글자 한 글자를 정성을 다해 말로 옮겼다. 그리고 “은퇴는 절대 충동적인 마음으로 정하지 않았다. 대주자, 대수비로도 팀에 보탬이 될 수 있다면 끝까지 뛰겠다는 마음뿐이었다. 팀에 작은 도움도 될 수 없다면 언제라도 유니폼을 벗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올 시즌 주전으로 뛸 수 없게 되면 5월쯤 스스로 은퇴를 하려고 했다. 지난 4년간 단 하루도 은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운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KIA에서 제안한 코치직, 해외연수를 모두 사양했지만 지도자, 감독의 꿈은 분명히 했다. 이종범은 “평생 야구를 했다. 사업은 절대 안한다. 아직 아무런 계획은 없지만 야구를 떠나지 않고 지도자를 준비하겠다. 일본에서 2군에도 뛰어봤고, 리그 1위도 했었다. 선진야구 경험은 충분히 했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야구장에만 있었다. 더 넓은 세상에서 시야를 넓혀 선수와 코치, 구단의 마음을 잘 살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겠다. 잘 다듬어 훌륭한 지도자가 되겠다.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여러분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선수생활 최고의 순간으로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라운드 일본전의 결승타를 꼽았고, 40대에도 계속 선수로 뛴 이유는 “많은 아버지들의 격려를 받았기 때문에 그분들께 힘과 희망을 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팀 성적에 방해가 될까봐 은퇴경기를 사양하고 은퇴식만 하기로 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종범은 마지막으로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참았던 눈물을 쏟았고, “분에 넘치는 사랑을 꼭 다시 돌려드리겠다. 선수로 마지막 날 많은 분들이 축복해주셔서 감사하다”며 큰 절로 팬들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