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한 김진우.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작년에 개봉한 영화였는데 뒤늦게 생각이 나 다운받아 보게 됐다. ‘퍼펙트 게임’ 얘기다. 스토리가 빤한 것을 알면서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스포츠 영화를 즐겨 봐왔던 터라 이번에도 별 기대 없이 맥주 캔 까기 시작했는데 웬걸, 자막 올라갈 때 보니 허리 구겨진 캔이 여섯 개나 쌓여 있지 뭔가. 배우와 작품에 대한 갈증도 분명했을 테지만 나는 조승우와 양동근으로 분한 최동원과 선동열이라는 걸출한 두 선수에 대한 조갈이 더 났던 것도 같다. 해봤자 입만 아픈 소리가 되겠지만 그라운드 위에서 두 사람이 벌이는 난공불락의 시간을 이제 상상으로밖에 기대할 수 없게 되지 않았는가.
누군가 말했지. 가장 위대한 사람들조차 죽는 게 삶이라고. 그 자명한 진리 속에 무쇠팔 최동원 선수도 떠나갔다. 영화 속에서는 금테 안경 너머 예리한 눈빛 그대로 글러브를 낀 젊은 그대로 살아남았으니, 운동선수로서 누릴 수 있는 최상의 특권은 이렇듯 모두의 기억 속에서 인생의 절정으로 남은 저 자신들이 아닐까.
그리고 선동열… 감독. 이름 끝에 아직도 선수라고 붙여야 할 여지가 남는 듯한 무등산 폭격기는 오늘도 야구장 위에 선 채다. 그 이름 석 자를 칠라 치면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붙는 나만의 뉘앙스가 뭔고 하니 곱슬머리, 빵빵한 볼, 빨강, 그리고 호랑이. 왜 그만 마운드에 오르면 뒤에 자리한 수비수들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웠을까.
그 어둠, 그렇게 드리워진 그늘로 사람의 존재감이라는 게 얼마나 묵직한 힘인지 증명해보이던 그가 지금은 아이러니컬하게도 KIA 타이거즈의 막막한 타선이라는 먹구름 아래 놓여 있다. 그래서들 인간만사 새옹지마라 하나. 일부러 치지 않으려고 작정한 것도 아닌데 도무지 넘어가지 않는 공을 두고 사실 타자들 탓하면 무엇 하리. 그렇다고 대신 타석에 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럴 때 감독이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코치는 문책도 아니고 채근도 아니고 안타까움에 절로 뿜어내는 깊이 있는 한숨이 아닐까. 물론 일부러 선수들 보란 듯이는 아니고 어쩌다 선수들 보면 그도 효과이려니 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계속되는 타선 침체로 분위기를 쇄신해보고자 KIA 타이거즈 선수들 단체 삭발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기억의 한 꼬투리를 펼쳐보게 되었다. 선동열 같은 무적의 투수도 있었다만 해태 시절로 거슬러 가보건대 김봉연, 김성한과 같은 홈런 타자들도 즐비했던 팀이니 부디 선수들이여, 역사를 믿고 부상을 잊은 채 자신 있는 방망이질 보여주시길!
[스포츠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