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건의 Let’s Go Baseball] 장채근이 투구 사인을 욕으로 한 까닭

입력 2012-07-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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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관계가 오묘하듯 야구의 배터리 관계도 마찬가지다. 해태에서 환상 호흡을 자랑했던 선동열(큰 사진 왼쪽)과 장채근. SK 투수 김광현은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직후 대선배인 포수 박경완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난 뒤에야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작은 사진). 스포츠동아DB

부부관계가 오묘하듯 야구의 배터리 관계도 마찬가지다. 해태에서 환상 호흡을 자랑했던 선동열(큰 사진 왼쪽)과 장채근. SK 투수 김광현은 2010년 한국시리즈 우승 확정 직후 대선배인 포수 박경완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난 뒤에야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작은 사진). 스포츠동아DB

마운드의 ‘짝’ 배터리, 그들의 궁합

야구에서 배터리는 부부관계로 지칭된다. 부부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듯 배터리도 여러 유형이 있다. 두 사람의 호흡이 맞으면 홈에 평화가 온다. 주자가 들어오지 않는다. 아니면 시끄러워진다. 경기 도중 의견이 맞지 않아 주먹다짐을 벌였던 배터리도 있었다. 두 선수 모두 그 팀에서 짐을 쌌다.

쌍방울 시절 김성근 감독은 투수에게 원하는 포수의 이름을 적어내라고 했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찾아주기 위해서였다. ‘짝’의 시작이다. ‘해태왕조’의 주역이었던 장채근. “포수는 투수를 만족시켜야 하지만 투수의 머리 위에서 놀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부관계 또한 이렇지 않을까.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처럼.


○신뢰관계가 만드는 부부 사이

부부관계의 기본은 신뢰다. 투수는 자신의 공과 포수의 사인을 믿어야 한다. 해태 장채근은 투수들이 좋아하는 포수였다. 원하는 대로 해줬다. 가끔은 투수에게 장난스런 사인도 냈다. 요즘처럼 TV중계화면에 모든 것이 노출되는 때라면 상상도 못할 사인이다. 욕으로 연상되는 손동작을 미트 속에서 했다. “네 맘대로 던지세요”라는 뜻이었다. 선동열, 이강철, 차동철은 그 사인을 보고 웃으면서 투구했다.

선수시절 장채근 서효인(전 LG) 김동수(전 LG·현대) 등과 노 사인으로 던졌다는 차동철의 회고. “포수가 가짜 사인으로 흉내만 내고, 내가 원하는 대로 던졌다. 딱 한 번 사고가 난 것은 LG 시절 포스트시즌 경기였다. 김정민이 바깥쪽 슬라이더 사인을 냈는데, 타자가 노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몸쪽 직구를 던졌다. 당황한 김정민이 스트라이크였던 공을 놓친 뒤 마운드로 총알같이 달려왔다. 그래서 내가 먼저 사인대로 던지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신뢰는 서로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진다. SK 김광현은 2010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4차전 투수로 시리즈를 끝내면서 인상적 장면을 남겼다.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모자를 벗어 포수 박경완에게 인사를 했다. 자신을 잘 리드해준 베테랑 포수에 대한 최고의 예우였다.

오래 살며 정이 든 부부는 끝도 아름답다. 일본프로야구에서 400승을 넘긴 ‘전설의 투수’ 가네다 마사이치. 현역시절 자신의 공을 오래 받아줬던 포수가 은퇴하자 사업자금을 대줬다. 자신의 공을 받다가 손에 장애가 생겨 고생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선뜻 거액을 건넸다.


○불신의 배터리 사고는 여기저기서 난다

좋은 부부관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도 있다. 포수의 사인대로 공이 오지 않거나 사인을 거부한 경우다. 당연히 신뢰가 깨진다. 청보 시절 어느 포수는 경기 도중 나이 어린 투수를 인천구장 선수통로로 데려가 원투펀치를 날렸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사인대로 안 던진다”며 씩씩댄 뒤 경기를 계속했다. 물론 그 투수는 다음부터 포수의 사인대로 던졌다. 포수가 하늘 높은 선배 또는 스타이거나 유난히 고집이 세면 이렇게 된다. 투수들은 마지못해 포수의 사인대로 던지지만 마음속으로는 100% 신뢰하지 않는다.



선동열은 베테랑 포수 덕분에 컨트롤의 중요성을 실감한 적이 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주역이었던 고(故) 심재원. 별명이 ‘심통’이었던 그는 선동열의 컨트롤이 들쭉날쭉하면 혼을 냈다. 원하는 곳에 미트를 댄 뒤 그곳으로 공이 오지 않으면 일부러 놓쳤다. 선동열에게 뛰어가서 그 공을 가져오라고 했다. 당시 대학 2학년이던 선동열은 선배의 얼차려에 정신이 번쩍 들어 컨트롤을 잡았다고 한다.

서로의 신뢰를 이상한 방향으로 몰고 간 케이스도 있다. 1988년 빙그레와 롯데의 경기에서였다. 초반부터 빙그레 타선이 터져 쉽게 끝나는 경기였다. 그러나 경기 중반 롯데 A 선수가 타석에 섰다. 실업야구 시절 A와 친구였던 빙그레 포수 B는 사인을 알려줬다. A는 느닷없이 3점홈런을 때렸다. 이후 경기는 팽팽해졌다. 간신히 빙그레가 이겼지만 김영덕 감독은 의혹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B는 홈런 이후 정성껏 투수리드를 했다. 나중에 그날 빙그레 선발투수였던 C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B와 C의 사이가 워낙 각별했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잘못된 만남도 많았다. 어느 팀의 배터리. 심야에 방망이를 들고 싸움을 했다. 야구문제 때문만이 아니었다. 돈이 얽혀 있었다. 한 여자를 두고 싸움을 벌였다는 배터리도 있지만 당사자만 알 뿐이다. LA 다저스 시절 박찬호와 채드 크루터는 한국 팬들에게 환상의 호흡으로 알려졌지만 끝이 좋지 못했다. 박찬호가 사업자금을 빌려준 뒤 소송까지 갔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어 남이 된 경우다.

전문기자 marco@dobga.com 트위터 @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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