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강심장 윤희상 뒤엔 아버지 채찍 있었다

입력 2012-11-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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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상은 2012시즌 SK의 선발 마운드를 홀로 떠받치다시피 했다. 이제 윤희상은 아버지에게 우승 반지를 바치기 위해 다부진 마음으로 2013시즌을 준비한다. 스포츠동아DB

윤희상은 2012시즌 SK의 선발 마운드를 홀로 떠받치다시피 했다. 이제 윤희상은 아버지에게 우승 반지를 바치기 위해 다부진 마음으로 2013시즌을 준비한다. 스포츠동아DB

SK 에이스 윤희상과 아버지 윤태성 씨

엄격한 아버지, 학창시절 달리기 시켜
때론 한밤 망우리 공동묘지까지 동행
담력 키우고 하체단련 일석이조 효과
길었던 2군생활…따뜻한 위로 큰 힘
내년엔 아버지의 이름으로 V 쏘겠다


28경기에 선발 등판해 10승9패, 방어율 3.36. 윤희상(27)은 올 시즌 SK의 보물이었다. 선발로테이션을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으며 실질적 에이스 역할을 했다. SK 이만수 감독이 수차례 공개적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정도였다. 가을잔치에서도 윤희상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8이닝 3실점 완투패. 이어 5차전에서도 패전투수가 됐지만 7이닝 2실점(1자책점)으로 역투했다. 그러나 SK는 삼성에 무릎을 꿇었고, 윤희상의 생애 첫 우승 반지 꿈도 다음으로 미뤄졌다. 그는 “내년에는 야구선수 윤희상을 만드신 아버지(윤태성 씨·53)를 위해 꼭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이끈 새벽 러닝

“감독님, 코치님. 우리 아들 제일 많이 혼내주세요.” 아버지는 학교에 올 때마다 지도자들에게 한결같은 얘기를 했다. 집에서도 자식들에게 엄한 가장이었다. 윤희상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아버지 덕분에 ‘아침형 인간’이 됐다. 아버지는 이른 새벽, 단잠을 자는 아들을 깨웠다. 그리고 출근길에 아들을 학교 운동장 앞에서 내려줬다. 윤희상은 성장기에 무려 5년간 오전 6시부터 홀로 학교 운동장을 달렸다. “투수는 하체가 중요하잖아요. 그 때 많이 뛴 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


○부정(父情)으로 키운 신장

윤희상은 “매일 아침마다 달린 것이 성장판 자극에도 도움이 됐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특히 아들의 키를 크게 하는 데 노력을 쏟았다. 윤희상은 학창시절 그 흔한 드라마도 본 적이 없었다. 오후 9시가 넘으면 아버지가 아들의 잠자리를 재촉했다. “숙면을 취해야 키가 큰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되면 잠들어 있는 아들의 곁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주물러서 성장판을 자극하기 위해서였다. 키가 크는 데 좋다는 음식이나 약도 끊이질 않았다. 결국 윤희상은 투수로서 최적의 신체조건(키 193cm)을 갖게 됐다. “좋은 몸을 물려주시기도 했지만, 아버지께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써주신 덕에 키가 몇 cm 더 큰 것 같아요.”


○공동묘지에 아들을 내려놓은 이유는?

윤희상의 경기도 구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망우리 공동묘지가 있다. 아버지는 야밤에 아들을 차에 태워 종종 공동묘지로 향했다. 그리고 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내려라.” 윤희상은 공동묘지의 꼭대기까지 뛰어올랐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약 40∼50분이 걸리는 코스였다. 오싹한 묘 사이를 달리기 때문에 담력 훈련으로선 제격이었다. 비포장의 산길을 타야 하기 때문에 하체 단련에도 효과가 있었다. 큰 경기에서도 위축되지 않는 윤희상의 강심장은 그렇게 단련됐다.


○“인생이란 원래 굴곡이 있는 것이란다”

윤희상은 야구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200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3순위로 SK에 입단한 것을 꼽는다. 계약금 2억원으로 구리에 번듯한 집도 마련했다. 그러나 기대감과는 달리 2군 생활이 길어졌다. 2006년 어깨수술을 받고 기약 없는 재활을 할 때는 야구공을 내려놓을 생각도 했다. 공익근무(2007∼2008년)를 마치고 팀에 복귀했을 때도 주로 2군에 있었다. “2군 생활을 오래 하다보면 점점 지쳐요. 그 좋던 야구가 싫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1주일만 야구 안 해도, 다시 야구 생각이 나니….” 힘든 시기 그를 잡아준 사람도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수차례 사업실패를 겪으면서도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경험을 갖고 있었다. “(윤)희상아, 인생이란 다 그렇게 굴곡이 있는 거란다. 당장 힘들다고 주저앉지 말고 남자답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어차피 다 지나갈 일이야. 정 안 되면, 아버지랑 대리석 까는 일 하면 되지.” 엄격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따뜻한 위로에 아들은 큰 힘을 얻었다.


○내년에는 아버지 위해 우승 반지!

결국 윤희상은 올 시즌 10승투수로 우뚝 섰다. 큰 칭찬을 한번쯤 할 법도 하지만, 아버지는 언제나 그랬듯 담담하기만 하다. “어깨는 괜찮니?” 그저 아들의 수술 부위만을 염려할 뿐이다. “작년에 삼성에 한국시리즈에서 졌을 때 진짜 부럽고, 분했거든요. 올해는 지고 싶지 않았는데…. 제가 2패를 하는 바람에…. 남들이 저보고 ‘잘 던졌다’고 하지만, 어쨌든 저는 패전투수였잖아요. 내년에는 꼭 우승하고 싶어요. 저를 위해 고생하신 아버지를 위해서요.” 윤희상은 내년 시즌 더 큰 목표를 겨냥하고 있었다. 그가 던지는 공에는 아버지를 향한 효심이 실려 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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