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보경 “지단처럼 되려면 미스 없어야…자만할 땐 우상 떠올리자”

입력 2013-04-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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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경. 스포츠동아DB

김보경. 스포츠동아DB

12번째 한국인 프리미어리거 김보경의 축구일기 단독 입수

‘포스트 박지성’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의 주인공. 김보경(24)이다. 그가 속해 있는 잉글랜드 챔피언십(2부 리그) 카디프시티가 프리미어리그(1부 리그) 승격을 확정하며 그는 한국선수로는 12번째 프리미어리거가 됐다. 스포츠동아는 김보경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쓴 축구일기 6권을 단독 입수했다. 꼼꼼한 메모와 훈련 복기, 부단한 자기암시 등 꿈 많던 소년이 ‘꿈의 무대’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기까지 성장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포기하지 마라 저 모퉁이만 돌면 희망이란 녀석이 있다’ -김보경 일기 중


원삼중학교부터 장소·훈련내용 등 적어

단신 고민…장어·자라즙 먹고 8cm나 커

고교 일기장엔 전술분석·개선점 빼곡히

김보경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쓴 6권의 축구일기. 제공|김보경 가족

김보경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쓴 6권의 축구일기. 제공|김보경 가족



○어릴 적 우상은 지단

어렸을 적 김보경의 우상은 프랑스 축구의 전설 지네딘 지단(41)이다. 지단이 2002한일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을 때 김보경은 중학교 1학년이었다. 비록 부상으로 큰 활약은 못 했지만 지단은 당대 최고 스타였다. 김보경은 지단의 플레이를 보며 자신의 10년 후 미래를 그렸다. 운동이 힘들고 잡념이 머리를 지배할 때마다 지단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의 일기장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지단 : 난 스피드가 느려도 남보다 1초 더 빨리 생각 한다’ ‘지단 같이 경기를 만드는 선수는 미스가 없어야한다’ ‘자만하고 방심할 때 우상(지단)을 생각해라’

김보경은 용인FC산하 원삼중학교에 입학한 뒤 일기를 썼다. 일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날짜와 장소, 훈련 내용을 적은 뒤 반드시 느낀 점과 선생님의 지적, 칭찬을 적어 놓았다. 둔필승총, 무딘 붓이 더 총명하다고 했다. 서툰 기록이 기억보다 낫다는 뜻이다. 한 번 저지른 실수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김보경의 의지가 일기에 묻어난다.

어린 시절 김보경. 사진제공|김보경 가족

어린 시절 김보경. 사진제공|김보경 가족



○작은 키에 고민

박지성(32·퀸즈파크레인저스)이 그랬듯 김보경도 학창시절 작은 키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 키가 170cm. 또래에 비해 많이 작았다. 키가 작은 만큼 체력도 처졌다. 김보경은 2002년 8월6일 일기에 ‘체력이 모자라 힘들다’고 토로했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 ‘보경이는 체력이 모자란 것이 아니고 다른 아이들에 비해 성장이 좀 늦는 것뿐이야. 조금 늦게 키가 클 수도 있는 거니까 너무 조급히 생각하지 마. 보경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기술적인 면은 뛰어나다‘고 한 선생님의 격려가 눈에 띈다. 김보경 아버지 김상호 씨는 “하루는 보경이가 아내에게 ‘엄마가 작으니 나도 작은 것 아니냐’며 투정을 부렸다. 겉으로 티를 내는 성격은 아닌데 본인도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아들을 위해 장어와 자라 즙을 내서 엄청 해 먹였다. 그 덕분인지 김보경은 고등학교 때 키가 훌쩍 커 지금은 178cm다.

오류초 시절 2000년 서울시 교육감배 대회에서 볼 트래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보경 가족

오류초 시절 2000년 서울시 교육감배 대회에서 볼 트래핑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김보경 가족



○자세한 분석을 통한 발전

신갈고에 진학하며 김보경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동기 중에는 이승렬(성남), 이범영(부산) 등 뛰어난 자원들이 많았다. 김보경은 이 중에서도 발군이었다. 고1,2 때 김보경을 지도했던 강릉문성고 유재영 감독은 “기본기가 탄탄하고 기술이 좋았다. 무엇보다 축구지능이 뛰어 나 동기들 중 유일하게 고1 때부터 게임을 뛰었다. 성실하고 긍정적인 스타일이라 프로에서 대성할 줄 알았다”고 했다. 실력과 비례하게 일기 쓰는 솜씨도 늘었다. 중학교 때와 달리 고등학교 일기에는 전략, 전술분석과 개선점을 자세하게 써 놓은 점이 눈에 띈다. 다음은 6대6 미니게임을 한 날의 일기다.

‘1. 공격을 하고 있는 팀은 디펜스에서 한 명 올라올 수 있으며 공격 시 4:3이 될 수 있음. 2. 수비를 하고 있는 팀은 역습준비를 한다. 3. 공격은 계속 볼 소유를 하다가 찬스가 100%일 때 슛을 한다.

★수비는 하프라인부터 프레싱을 하면 유리하다. 공격 시 오래 볼 소유를 하는 게 유리하다.’(2006년 11월9일)

김보경(오른쪽 가운데)이 오류초 재학 때인 2001년 서울시 남녀종별선수권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김보경 가족

김보경(오른쪽 가운데)이 오류초 재학 때인 2001년 서울시 남녀종별선수권 시상식에서 우승 트로피를 받고 있다. 사진제공|김보경 가족



○축구밖에 모르는 독종

김보경은 축구에 관한 한 ‘독종’으로 불린다. 김보경을 남아공월드컵에 데려갔던 허정무 축구협회 부회장, 런던올림픽 동메달 신화를 함께 쓴 홍명보 전 올림픽대표팀 감독, 조광래와 최강희 전·현직 대표팀 감독 모두 김보경의 마인드를 칭찬한다. 김보경의 이런 집념은 일기를 쓰며 길러졌다. 누구나 한번쯤 꿈꿨을 일탈이나 이런 저런 유혹을 극복해 냈다.

‘하나의 경기가 끝날 때부터 다음경기는 시작된 것이다. 꿈이 바로 앞에 있는데 왜 팔을 뻗지 않는가? 잠이 오면 생각해라. 부모님과 너의 라이벌을 잡념이 나면 생각해라. 가족과 너를 비웃는 자를. 포기하지 마라 저 모퉁이만 돌면 희망이란 녀석이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기꺼이 가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열정이 있는가. 모든 게 완벽해 보일수록 너무 쉽게 안주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고장 나지 않았다면 고장 내라. 성공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은 실패다’(김보경의 일기 중)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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