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프리즘] 트레이드는 확실한 시나리오…극적 인생드라마가 연출된다

입력 2013-05-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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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는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스포츠인 것 같다. 디지털 신호가 0과 1의 조합으로 모든 현상을 표현하듯, 야구도 스마트하게 숫자의 배열로 경기를 설명할 수 있다. 야구 통계는 발전을 거듭해 요즘에는 RC/27(한 타자에게 27개의 아웃카운트가 주어질 때 득점발생을 예상한 수치) 같은 지수로 타자의 능력을 평가하기도 한다.

20일까지 RC/27 1위는 최정(SK)이다. 11.44점으로, 리그에서 유일하게 두 자릿수다. 1∼9번타자로 모두 최정을 내세울 수 있다면, 감독은 얼마나 행복할까. 매 경기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릴 수 있으니. 그러나 한편으로는 야구에서 느끼는 서사의 힘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해결사만 아홉 명이면, 기승전결이 흐릿하지 않을까 싶은…. 영화 ‘미스터 3000’의 마지막 장면에서 홈런보다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 희생번트를 기억한다. 자식의 손을 잡고 야구장에 간 부모가 “아들(딸)아, 세상살이에서 홈런만이 가장 큰 가치는 아니란다”라고 말할 때의 교훈은 통계로 표현하기 힘든 것이다. 가장 디지털적인 스포츠이지만, 이렇게 아날로그적 감수성이 숨쉬는 것도 야구의 매력인 것 같다.

최근 트레이드 이후 맹활약하는 선수들을 보면서 그들의 예전 모습이 떠올랐다. 2010년 12월 롯데에서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직후, “부산보다 서울 집값이 비싸다. 와이프에게 미안하다”며 속상해하던 박정준(NC)을 기억한다. 당시 그는 결혼한지 3주 만에 유니폼을 갈아입어야 했다. 머나먼 전남 강진에서 구슬땀을 흘린 박정준은 마침내 NC에서 날개를 펴고 있다. 2012년 2월 SK의 오키나와 스프링캠프에서 “올해는 꼭 1군에서 던질 것”이라고 눈망울을 밝히던 신승현(KIA)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팔꿈치 수술 등으로 7년 가까운 시련기를 거친 그는 결국 KIA에서 자리를 잡았다. 타율과 방어율만으로는 이들이 보낸 인고의 세월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2009년 김상현(SK)이 KIA 유니폼을 입고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했을 때, 부산 KT 농구단 전창진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농구에서도 그런 대기만성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전 감독은 농구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다소 부정적이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듬해 KT에는 박상오라는 인동초가 피었다)

야구에선 팀을 옮김과 동시에 가려졌던 빛을 내는 선수가 종종 있다. 그들의 활약과 함께 흙 속에 묻혀져 영원히 알려지지 않을 뻔한 이야기들도 수면 위로 떠오른다. 지금도 2군에선 불과 한 달 전의 박정준, 보름 전의 신승현처럼, 자신만의 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는 선수들이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트레이드를 통해 이들의 감춰진 세월에도 한 번씩 귀 기울여 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프로야구 콘텐츠의 경쟁력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때 디지로그(Digilog·디지털+아날로그) 마케팅이 유행했던 것처럼 말이다. 트레이드란 어떤 측면에서 보자면, 그 선수의 스토리를 팀에 덧입히는 행위이기도 한 것 같다. 마치 넥센 이장석 대표이사가 “(송)신영이만큼은 꼭 우리 팀에 다시 데려오고 싶었다”고 말한 것처럼….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setupman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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