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민한. 스포츠동아DB
선배 위해 자리 내준 이재학에 고마움도
“아주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1378일 만에 1군 마운드에 올랐던 손민한(NC·38·사진)은 진지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살아있다’는 표현처럼, 그동안 ‘야구선수 손민한’은 마치 죽은 생명체와 같았다.
손민한은 불과 몇 해 전까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투수였고, 모든 프로야구선수들의 리더였다. 그러나 권시형 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이 수십억 원의 횡령과 배임수재라는 큰 죄를 지었다. 손민한은 선수협 회장으로 선수노조까지 추진하며 큰 의욕을 보였지만, 내부적으로 실무 책임자는 큰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은 아니었지만, 후배들은 손민한에게 등을 돌렸고 부상이 겹쳐 쓸쓸히 롯데 유니폼을 벗었다.
권 전 총장이 감옥에서 죄 값을 치르고 있을 때, 손민한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라는 또 다른 감옥의 높은 담 안에 갇혀 있었다. 법적으로 모든 것이 소명됐지만, 명예를 회복하는 길은 그의 표현대로 마운드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뿐이었다. 동료 선수들이 그를 다시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다시 야구를 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야 했다. 자신보다 더 고통 받는 가족도 있었다.
6일 SK전을 앞둔 마산구장에서 손민한은 처음에는 인터뷰를 정중히 사양했다. 하루 전 승리의 여운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을 아끼려 했다. “아직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그라운드에서 더 열심히 던진 후 뵙고 싶다.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들이 여전히 많이 계신데….”
그러다 한 명의 이름이 갑자기 떠올랐던 모양이다. 이 말은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이재학 선수가 잘 던지고 있었는데, 제가 그 자리에 들어갔기 때문에 팀을 위해 꼭 역할을 잘해야겠다는 다짐하고 던졌다”고 털어놓았다. 자신이 선발진에 합류하는 대신 마무리로 보직을 옮긴 열다섯 살 어린 후배를 챙기고 싶은 진심이 묻어났다.
‘경기 후 어떤 느낌이 들었나’라는 질문에 손민한은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굉장히 긴장도 했던 것 같다. 모처럼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사실 NC가 신생팀으로 내가 유니폼을 입는 과정이 굉장히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기회를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더 많은 분들이 웃으실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다시 언론을 통해 인사드리고 싶다.”
창원|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