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UTDOOR&PEOPLE] 패러에 미친 남자…홍필표, 알프스 하늘길 1031km 횡단 극한 도전

입력 2013-06-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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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필표 선수가 오는 7월 7일 개막하는 ‘레드불 엑스-알프스 2013’에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해 알프스 하늘길 횡단에 도전한다. 홍 선수는 이미 산악인 박정헌 씨 등과 함께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동서 2400km를 패러글라이더로 횡단한 바 있다. 지난 2011년 9월 히말라야 횡단을 위해 북인도 케이롱에서 힘찬 날갯짓을 하고 있는 홍필표 선수. 케이롱(북인도)|이훈구 동아일보 기자 ufo@donga.com

■ 지옥의 레이스 ‘레드불 엑스-알프스’에 출사표, 홍필표

히말라야에 이어 백두대간 패러 종주…
내달 7일 ‘엑스 - 알프스’ 완주에 도전장

변화무쌍 기상에 매 비행마다 다른 느낌
짜릿한 희열에 한번 빠지면 못 헤어나와

패러글라이딩 연수원을 설립하는 게 꿈
최고의 난관은 돈…지원이 더 늘었으면


“히말라야 종단 경험을 살려 반드시 알프스 산맥 종단 완주에 성공할 겁니다. 주위에서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미지에 대한 도전을 좋아합니다. 알프스의 땅과 하늘에 대한민국의 혼을 심을 겁니다.”

사내의 두 눈은 매처럼 빛났다. 굳게 다문 입술은 상기된 듯 파르르 떨렸다. 꽉 쥔 주먹은 당장이라도 일을 낼 것만 같았다.

홍필표(46·진주 패러스쿨 스쿨장). 활공인이자 익스트림 스포츠맨. 그가 지옥의 신에게 맞장 뜨자고 ‘선빵’을 날렸다. 유럽의 지붕인 알프스산맥을 패러글라이더와 도보로만 횡단하는 ‘레드불 엑스-알프스 2013’대회에 한국대표 선수로 출사표를 던진 것. 그의 길엔 하치경(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김민수(언론인) 씨가 서포터로 동행한다. 엑스-알프스는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레이스 중의 하나. 그는 왜 이런 목숨 건 도전을 할까.


● 히말라야도 넘었다, 백두대간도 넘었다. 이젠 알프스다

그가 엑스-알프스를 꿈꾼 것은 히말라야 패러 횡단 원정대인 ‘이카로스의 꿈’의 대원으로 참가하면서부터. 2011년 8월부터 이듬해 1월 말까지 직선거리 2400km, 비행거리 2900km의 히말라야 산군을 비행했다. 해발 6119m 로부제 정상에도 올랐다. 대자연에 대한 외경을 느꼈다. 그것은 단순한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이 아니었다. 고요 속에서 삶을 깨닫게 하는 철학이었다.

히말라야 패러 횡단을 마친 뒤 곧장 짐을 다시 꾸렸다. 이번엔 우리 땅 백두대간 패러 종주. 지난해 5월 지리산 천왕봉을 출발해 6개월에 걸쳐 15회의 비행과 1000km에 달하는 비행을 했다. 그리고 산길로 44km를 걸어 구간 비행종주를 마쳤다. 엑스-알프스를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히말라야 비행은 그 거대함 때문에 산 전체를 볼 수 없지요. 자연의 거대함과 웅장함에 압도당하는 느낌이랄까. 그러나 백두대간은 아기자기하고 평온함을 줍니다. 하늘로 오르면 세상이 다 보이죠. 땅에서의 치열함과 하늘에서의 평온함을 모두 느낄 수 있지요. 히말라야와 백두대간 종주에 성공한 뒤 자신감이 붙었어요. ‘그까짓 것’이라는 일종의 깡도 생겼죠.”


● 주특기는 수상스포츠…거제서 페러 보고 블랙홀처럼 빨려들어

그가 패러의 세계로 빠져 든 건 20년 전. 사실 대학시절엔 ‘물’에 빠져 살았다. 고향 진주서 해양소년단 활동을 했다. 윈드서핑 스킨스쿠버 수상스키 등 수상스포츠는 못하는 게 없었다. 졸업 후 지도자가 됐다. 청소년들을 이끌고 국토순례도 했다. 카누와 돛단배로 남해서 부산까지 가기도 했다. 진주에 있는 대학 동아리를 지도하다 아내(교사)도 만났다. ‘지독한 열애’ 6년. 처음엔 ‘반 백수’인 그를 처갓집에서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을 막지는 못했다. 둘은 마침내 한 이불을 썼고 두 딸을 낳았다. 세 여인은 이제 그의 든든한 후원자다. 그렇게 물에 빠져 산지 5년 여. 1994년 어느 날. 거제에서 패러글라이더를 보는 순간 ‘멍’한 느낌이 들었다. 파란 하늘에 펼쳐진 패러글라이더는 그 어떤 그림보다 아름다웠다. 그리곤 곧장 패러의 세계로 빨려들었다. 블랙홀처럼.

“패러글라이딩의 세계는 끝이 없지요. 기상이 날마다 달라 변화무쌍 합니다. 바람과 열기류가 시시때때로 변하거든요. 그 바람을 타야하니 오늘 탈 때와 내일 탈 때의 느낌도 다를 수밖에 없죠. 일단 비행하면 순간순간 자신이 판단해 움직이는 것도 매력이죠. 불확실성에 대한 도전에서 오는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 이륙하다 떨어져 목뼈 부러져…수술 뒤 깁스 낀 채 다시 활공

틈만 나면 패러 등짐을 메고 이륙장으로 향했다. 비 오는 날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날. 비행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길 5년. 집념은 화(禍)로 그에게 다가왔다. 1999년 국가대표 선발전이 열린 의령 한우산. 힘껏 이륙을 했다. 그러나 이륙 하자마자 몹쓸 바람에 휘말려 추락하고 말았다. 보조낙하산도 펼 새가 없었다. 땅에 떨어지니 목을 움직일 수 없었다. 경추가 부러진 것. 결국 구급차에 실려 병원행. 골반뼈를 이식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누워있는데 날고 싶다는 생각 밖에 안 들더라고요. 한번 사고를 당하면 회복하기 힘들거든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죠. 그때 깁스 한 채 다시 사고 당한 한우산에 가서 비행했죠. 한 달 보름 만이었어요. 2시간 비행하고 나니 기분도 후련하고 자신감도 생기더군요.”

무림의 세계에서 한 번 추락은 병가지상사라고 했던가. 훌훌 털고 다시 일어섰다. 오뚝이처럼. 산과 바람과 하늘은 그를 다시 품안에 안았다. 어머니 품 같았다. 마침내 2002년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에 올랐고 그 후 아시안 챔피언전과 호주 프리월드컵 등 굵직한 대회에 참가했다.

불현듯 드는 궁금증 하나. 비행 중 생리현상이 오면 어떻게 할까. 그는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하하하. 알프스나 히말라야처럼 장시간 비행할 땐 배변용 호스를 사용하지요. 쉽지 않아요. 그래서 호스를 이용한 배변연습도 미리 합니다. 호스만 끼웠지 호스를 통해 ‘지구로 낙하’시킵니다. 대변이요? 그냥 위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죠. 사실 패러는 와일드한 경기입니다. 와류에 걸리면 온 몸이 오싹하죠. 강한 열기류를 받으면 컨트롤이 안돼요. 엄청난 회전에 걸릴 수도 있죠. 그런 위험 상황이 늘 존재하는데 긴장이 돼서 생리현상도 잘 안돼요.”


● “엑스-알프스 꼭 우승해야 돼요. 왜? 돌아올 비행기 값이 없어요. ㅎㅎ”

패러에 ‘미친’ 그는 꿈이 있다. 멀게는 패러글라이딩 교육을 하는 연수원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까지 패러는 어쩌다 추락해 전깃줄에 걸려야 화제가 되는 스포츠이죠. 패러의 매력을 많이 알리고 저변확대에 앞장서고 싶어요. 하늘을 날기 위한 꿈은 인류의 오래된 염원이죠. 누구나 그 꿈을 이루게 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체계적인 교육을 하는 연수원이 필요합니다.”

표창처럼 날아오던 그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숨을 크게 쉰 후 다시 말은 표창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곤 가까이에 있는 그의 꿈을 말했다.

“사실 이번 대회 준비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 돈입니다. 한 번 출전하는데 1억 원 가까이 들거든요. 이곳저곳에서 지원을 많이 해 주지만 여전히 저를 괴롭히고 있는 문제죠. 저는 이번 엑스-알프스 대회서 꼭 우승을 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우승 상금(약 1400만원)을 못 받으면 돌아올 비행기표 값이 없어요.”

그는 하얀 이를 드러내고 쑥스러운 듯 웃었다. 그의 웃음 속엔 안타까움과 비장함이 함께 배여 있었다. 그의 눈을 보았다. 선한 두 눈엔 엑스-알프스 목적지인 모나코의 바다에 그가 제일 먼저 입맞춤을 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홍필표 선수. 케이롱(북인도)|이훈구 동아일보 기자 ufo@donga.com



■ 홍필표는?

● 1967년 경남 진양 출생
● 1993년 패러글라이딩 입문
● 2002∼2006년 패러글라이딩 국가대표
● 2003년 제1회 아세안 챔피언전 국가대표
● 2004∼2009년 대만오픈 국제대회, 중국 프리월드컵, 호주 프리월드컵, 문경 아세안챔피언전 가
● 2011년 8월∼2012년 2월 히말라야 전구간 패러글라이딩 횡단 원정
● 2012년 5월∼2012년 11월 백두대간 패러글라이딩 횡단 대장
● 현 레브불 엑스-알프스 2013 한국대표팀장·진주 패러스쿨 스쿨장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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