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포의 조건: 배트 무게<스윙 스피드

입력 2013-06-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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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김태균, 오릭스 이대호, 삼성 이승엽(사진 왼쪽부터)과 같은 거포들은 다른 타자들보다 더 무겁되 신체적 무리 없이 자신의 스윙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배트를 사용한다. 배트 무게와 스윙 스피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싶기 때문이다. 스포츠동아DB

■ 스포츠동아·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공동기획 ‘과학으로 본 야구’

※ E=mc², 질량의 증가 보다, 속도의 증가가 더 많은 에너지를 창출한다. 아인슈타인의 가설은 가벼운 방망이를 선택했다.

홈런 치려면 140km대 스윙으로 스윗 스팟 타격
왕년 거포 심정수는 800g대 가벼운 배트로 펑펑
배트의 무게중심·스윙 궤도도 영향…홈런은 과학


야구를 좋아하거나 야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멋진 홈런의 주인공이 된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았을 듯하다. 그렇다면 거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대호(오릭스), 이승엽(삼성), 김태균(한화) 등 이름 있는 장타자들의 겉모습만으로는 그 공통점을 찾아내기가 어렵다.

배트 무게와 스윙 스피드의 상관관계만을 놓고 비교해도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거포들은 무거운 배트를 사용할 것으로 짐작하기 쉽다. 무거운 배트가 비거리를 늘리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리학적으로도 배트가 무거울수록 타격 시 반발력 또한 커져서 비거리를 늘려줄 수 있다. 그러나 비거리를 결정짓는 요인 중 또 다른 포인트는 스윙 스피드다. 지나치게 무거운 배트는 스윙 스피드를 감소시킨다. 배트가 무거울수록 빠른 스윙을 구사하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많은 장타자들은 배트 무게와 스윙 스피드를 놓고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진다. 선수들은 스윙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는 무게감 있는 배트를 고르게 된다.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고 싶기 때문이다.

‘힘을 제압하는 것은 속도’라는 TV 광고 문구가 있다. 이 문구는 물리학적 진실을 담고 있다. 좁쌀 크기의 돌이 빛의 속도로 날아와 지구와 정면충돌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빛의 속도가 만들어낸 엄청난 에너지로 인해 지구는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E=MC2’ 공식을 만들어낸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가설이다. 이 공식에 따르면 가벼운 방망이를 선택하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질량이 늘어나는 것보다 속도가 빨라지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800g대의 가벼운 배트로 홈런을 펑펑 날리는 과거 심정수의 선택은 탁월했다.

투수판에서 홈플레이트까지 거리는 18.44m다. 투수가 던진 시속 150km의 강속구가 타석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불과 0.44초다. 타자가 홈런을 치려면 0.2초의 빠른 판단력과 시속 140km 이상의 배트 스피드로, 스윗 스팟(sweet spot)에 공을 정확히 맞혀야만 가능하다. 즉, 가벼운 배트는 빠른 스윙 스피드와 적절한 타이밍을 만드는 데 이점이 많다. 이런 관점은 국내외 훌륭한 홈런타자들이 사용하는 배트가 각자의 개인적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한국선수들은 무게 850∼920g, 길이 33∼34인치(83.82∼86.36cm)의 배트를 선호한다. 무게감에 있어 신체적 무리 없이 스윙 스피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도 배트 무게와 스윙 스피드의 원리를 적극 활용한다. 이승엽의 경우 부상이나 컨디션이 나쁜 경우 900g짜리 배트를 사용하고, 정상 컨디션에선 920g짜리 배트를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훈련 시에는 960g의 무거운 배트를 사용한다. 훈련 상황에서 무거운 배트로 스윙 스피드를 유지함으로써 실전에서 스윙 스피드에 대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래주머니를 묶고 달리기를 하다가 풀어놓고 첫 걸음을 내딛는 순간 느껴지는 가벼움을 체험해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장타자가 되기 위해선 정확한 가격, 효과적 가속력, 타격 이후의 폴로스로(follow through) 등이 유기적으로 발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장타를 만들어내는 데 배트 무게와 스윙 스피드는 매우 핵심적 요인이기는 하지만, 그 외에도 고려 할 사항이 많다는 것이다. 배트의 무게중심, 그립의 굵기, 스윙 궤도, 타격 밸런스, 선구안 등이 장타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해당된다. 선수 개인의 신체적 조건과 타격 스타일에 따른 재조합이 이뤄져야 할 사항들이다.

홈런은 복잡한 과학적 원리들이 선수의 땀과 노력으로 하나의 스윙에 담겨진 결정체다. 많은 사람들은 쭉 뻗어 담장을 훌쩍 넘어가는 타구에 환호와 열광을 표한다. 스포츠가 예술임을 깨닫는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어느 선수가 또 우리에게 멋진 아치를 선물할지 설레는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한다.

송주호 박사·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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