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다저스 마운드의 ‘고독한 승부사’ 잭 그레인키

입력 2013-07-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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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다저스

1. 홈경기의 사나이


올 시즌 방어율 홈 1.90 원정 4.42
최근 홈에서 치른 43경기 28승2패
14일 다저스타디움서 2피안타 완봉


투수전의 백미는 1-0 승부다. 일찌감치 한쪽으로 승부가 기우는 것이 아닌 1점차 승부여서 마지막 아웃까지 긴장을 풀 수 없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팀 린스컴이 생애 첫 노히트노런을 달성한 14일(한국시간) 다저스타디움에서도 소중한 기록이 작성됐다. 콜로라도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한 LA 다저스 잭 그레인키(30)가 9이닝 2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으로 개인통산 4번째 완봉승을 거뒀다.

다저스는 이날 1회말 2루타를 치고 출루한 스킵 슈마커가 핸리 라미레스의 유격수 땅볼 때 홈을 밟아 선취점을 올렸다. 이 점수가 결승점이 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한 5만1992명의 만원 관중은 끝까지 손에 땀을 쥐어야 했다. 콜로라도 선발 타일러 채트우드도 8회까지 역투했지만 생애 첫 완투를 기록한 데 만족해야 했다.

최근 50년간 다저스 투수가 안타를 2개 이하로 허용하고 삼진을 9개 이상 잡으며 1-0 완봉승을 거둔 것은 그레인키가 4번째다. 1965년 샌디 쿠팩스가 시카고 컵스전에서 퍼펙트경기를 달성하며 이 기록을 수립한 것을 시작으로 1982년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1998년 이스마엘 발데스가 그 뒤를 이었다.

이날 승리로 최근 5차례 선발등판을 모두 승리로 장식한 그레인키는 8승2패, 방어율 3.49로 전반기를 마쳤다. 어느덧 다승 부문에서 7승(3패)의 류현진을 제치고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현재 페이스가 이어진다면 다저스 선발 3명이 나란히 15승 이상을 달성할 공산도 크다.

올 시즌 류현진은 홈(4승1패·방어율 1.90)과 원정(3승2패·방어율 4.42)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레인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레인키는 홈에서 5승 무패, 방어율 2.17인 반면 원정에선 3승2패, 방어율 5.03이다. 이처럼 그레인키가 안방에서 유독 강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레인키는 최근 홈 43경기에서 28승2패, 방어율 2.93의 경이적 성적을 거두고 있다. 특히 밀워키 시절이던 2011년에는 홈 15경기 선발등판에서 11승 무패를 기록했다.

류현진이 출격한 11일 애리조나전에서 돈 매팅리 다저스 감독은 연장 10회초 공격 때 투수 자리에 그레인키를 대타로 내세웠다. 그레인키는 상대 투수 조시 콜멘터와 8구까지 가는 접전 끝에 볼넷을 얻어 감독의 기대에 부응했다. 올 시즌 타자 그레인키의 성적은 30타수 11안타로 타율이 무려 0.367이다.

14일 콜로라도전도 마찬가지였다. 다저스가 채트우드를 상대로 때린 4안타 중 1개는 5회말 그레인키의 우전안타였다. 그레인키는 2루 도루까지 성공시켜 홈 팬들을 열광시켰다. 개인통산 2번째이자, 다저스 투수로는 2011년 6월 12일 테드 릴리 이후 처음이었다.


2. 사연많은 풍운아

불안장애로 2006년 우울증 약 복용
2011년 농구하다 갈비뼈 골절 중상
지난 4월엔 타자와 ‘맞짱’ 쇄골 골절


2004년 아메리칸리그(AL) 소속 캔자스시티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그레인키는 2011년 밀워키로 이적하기 전까지 타석에 들어설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2005년 6월 11일 인터리그 애리조나전에서 나온 그의 생애 첫 안타는 5회초 라몬 오티스를 상대로 친 솔로홈런이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그레인키는 4.1이닝 동안 홈런 3개를 포함해 15안타를 맞고 11점을 내줘 생애 최악의 투구로 패전투수가 됐다.

빅리그 2년차였던 2005년, 완투를 2차례나 했지만 그레인키의 성적은 5승17패, 방어율 5.80이었다. 시즌을 마친 뒤 심각하게 은퇴를 고려했던 그는 2006년을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보냈다. 사회적 불안 장애(social anxiety disorder)라는 진단을 받아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스포츠심리학자를 만나는 것이 주된 일과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07년 복귀해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한 그레인키는 2008년 붙박이 선발로 돌아와 13승10패로 가능성을 꽃피웠다. 이에 캔자스시티는 스몰마켓팀답지 않게 4년 3800만달러를 제시하며 장기계약을 체결했다.

2009년은 그레인키에게 최고의 해였다. 방어율 2.16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1위를 차지하며 AL 사이영상을 차지하는 기쁨을 누렸다. 16승(8패)으로 다승 부문 공동 7위에 그쳤지만, 뉴욕 양키스 CC 사바시아(19승8패), 시애틀 펠릭스 에르난데스(19승5패), 디트로이트 저스틴 벌랜더(19승9패), 토론토 로이 할러데이(17승10패), 보스턴 조시 베킷(17승6패), 텍사스 스콧 펠드먼(17승8패)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사이영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캔자스시티의 전력이 워낙 약한 탓에 2010년 10승14패에 그친 그레인키는 트레이드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불과 이틀 뒤인 12월 20일 그레인키는 유니 베탄코트와 함께 밀워키로 둥지를 옮겨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적이 확정되자마자 그레인키는 큰 사고를 쳤다. 농구를 하다 갈비뼈 골절상을 입은 것. 한 달 여 늦은 5월 5일에야 팀에 합류하고도 2011시즌 16승6패, 방어율 3.83의 뛰어난 성적을 올려 밀워키가 내셔널리그(NL) 중부지구 챔피언에 등극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171.2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했지만 무려 201개의 삼진을 잡아내 NL 7위에 올랐다. 밀워키 투수로 한 시즌 200개 이상의 탈삼진은 그레인키가 5번째였다.


3. 독특한 야구머신

데뷔 첫 안타가 홈런…타격도 귀재
올 30타수 11안타 ‘도루하는 투수’
다저스 선택 이유? “돈 많이 줘서”

2012년에는 3연속경기 선발등판이라는, 어쩌면 다시는 나오기 힘든 진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7월 8일 휴스턴과의 원정경기 1회말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공을 그라운드에 패대기친 뒤 퇴장 당했다. 불과 공 4개만을 던지고 패전투수가 된 그는 다음 날 경기에도 선발 등판했지만 3이닝 3실점에 그쳤다. 올스타 브레이크 뒤 후반기 첫 경기인 피츠버그전에도 그레인키가 마운드에 올라 3연속경기 선발등판이라는 진기록이 수립됐지만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2012시즌 전반기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밀워키는 7월 28일 그레인키를 LA 에인절스로 보냈다. 그레인키는 8월 중순까지 25이닝을 던져 1승1패, 방어율 7.20에 그쳐 에인절스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그러나 마지막 4경기에서 방어율 1.88을 기록하며 모두 승리해 자신의 주가를 한층 끌어올렸다.

프리에이전트(FA)가 된 그레인키를 둘러싼 치열한 쟁탈전이 스토브리그를 뜨겁게 달궜다. 최종 승자는 6년 1억4700만달러를 제시한 다저스였다. 역대 우완투수 최고 연봉자가 된 그레인키는 “우승 욕심보다 돈을 가장 많이 줘서 다저스를 택했다”며 자신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과시했다.

우려대로 그레인키의 기행은 다저스에서도 계속됐다. 4월 12일 샌디에이고전에서 사구에 흥분해 마운드로 돌진한 카를로스 쿠엔틴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충돌했다가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약 한 달 후 복귀했지만 밀워키전 4이닝 5실점, 에인절스전 4이닝 4실점 등 1승1패, 방어율 6.75로 5월을 보냈다. 최악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난 6월 12일 애리조나와의 홈경기에선 상대 투수 이언 케네디가 던진 공에 어깨 부위를 강타 당했지만 헤죽헤죽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일어나기도 했다.

6월 23일 샌디에이고 원정경기에서 8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며 분위기 반전의 발판을 마련한 그레인키는 필라델피아전 7이닝 4실점, 콜로라도전 5이닝 5실점으로 부진했지만 야시엘 푸이그, 핸리 라미레스의 불같은 방망이를 앞세운 다저스 타선의 도움으로 모두 승리를 챙기는 행운을 누렸다. 타자들의 도움에 화답하듯 그레인키는 9일 애리조나 원정경기에서 7이닝 무실점, 14일 콜로라도전 2안타 완봉승으로 최근 16연속이닝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자신의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다저스는 워싱턴 원정 3연전으로 후반기를 맞는다. 21일 경기에 등판하는 ‘고독한 승부사’ 그레인키는 시즌 6연승 및 개인통산 100승에 도전한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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