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희. 사진제공|KLPGA
이일희가 5일부터 충남 태안의 골든베이 골프장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한화금융클래식(총상금 12억원)에 출전했다. 첫 우승으로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 “상금은 통장에 그대로”
“우승했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더라고요. 여전히 하우징에서 잠을 자고 저렴한 항공을 이용해요. 지금은 그게 더 편하더라고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큰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예전의 생활에 익숙하다고 했다.
“해마다 대회가 같은 장소에서 열리다보니 같은 집에서 하우징을 하게 되죠. 그러다보니 그게 더 편하더라고요. 우승을 하고난 뒤에는 얘기꺼리가 하나 더 늘어났죠.”
하우징은 대회가 열리는 골프장 주변의 가정집을 선수들에게 무료로 빌려주는 민박이다. LPGA 데뷔 때부터 혼자서 생활해온 이일희에겐 가족적이면서 편안한 분위기의 하우징이 호텔방보다 더 낫다는 설명이다.
우승으로 19만5000달러(약 2억2000만원)의 상금을 받았다. 골프를 시작한 이후 가장 큰 돈을 벌었지만 아직 한 푼도 손대지 않았다.
이일희는 “우승 상금은 아직 통장에 그대로 있어요. 어디에 쓸 건지 계획을 세워두기는 했지만 아직은 통장에 넣어두고 있어요”라며 웃었다.
한 가지 꼭 해야할 일이 있다. 친구인 김하늘(25·KT)과 7년 전의 약속을 지키는 일이다. 2007년 나란히 프로에 데뷔한 이일희와 김하늘은 첫 우승을 하면 서로에게 선물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김하늘이 첫 우승을 했을 때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로 받았다.
“우승하고 나니 7년 전 약속이 생각나더라고요. 한국에 와서 (김)하늘와 함께 백화점에 가려고 했는데 서로 바쁜 일정 때문에 아직까지 가지 못했죠. 약속은 꼭 지켜야죠.”
● 30점짜리에서 70점짜리로 성장
LPGA 투어 진출 초창기, 그는 힘든 시간을 견뎠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탓에 동료들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고, 경비를 줄이기 위해 싼 비행기 티켓을 구해 대회장을 이동하기도 했다. 또 숙박비 등을 절약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무료로 방을 빌려주는 하우징(선수들을 위해 무료로 빌려주는 방)으로 잠자리를 해결하기도 했다.
그를 더 힘들게 한 사건이 있었다. 2011년 모 기업과 메인 스폰서 계약을 맺었지만 그만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계약금 받을 것을 예상하고 집도 빌리고 살림도 장만했죠. 그런데 골프단은 창단도 못했고 계약금 역시 받지 못하게 됐어요. 경제적으로 더 어려워졌죠. 대회에 출전하려면 돈이 필요했는데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소파와 침대를 내다 팔았어요. 정말 타격이 정말 컸죠.”
여건은 더 힘들어졌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버텼다.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차츰 LPGA 무대에 적응하며 정상 궤도를 찾아갔다. 2012년 35만5000달러를 벌면서 조금씩 안정을 찾게 됐다.
이일희는 “한 손에 골프백 다른 한 손에 짐 가방을 들고 공항에 내렸을 때 눈앞이 캄캄했어요”라며 처음 미국 땅을 밟았을 때를 떠올렸다.
낯선 땅, 처음 경험하는 LPGA 무대는 그를 주눅 들게 했다. 게다가 이일희는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다른 선수들이 경기하는 걸 보니 다들 정말 잘 치더라고요. 이름을 알지 못한 선수들도 어쩜 그렇게 잘 치는 지 ‘내 골프가 정말 약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1년을 보냈고 2년차 3년차가 되면서 다시 그 골프장에서 경기를 하면서 ‘나도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이일희는 주니어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번에 성공을 이뤘던 적이 없다. 한걸음씩 천천히 올라 지금의 위치에 섰다.
“주니어 시절에도 그랬고 프로가 돼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모든 게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한 계단씩 천천히 올라왔죠. 첫 우승 때도 2주 전 대회에서 3위를 했죠. 2주 뒤 우승했는데 그날의 경기가 큰 도움이 됐어요. 첫 해 내 골프 실력이 100점 만점에 30점이었다면 이제는 70점까지 되는 것 같아요. 1~2년 뒤면 90점까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일희가 첫 우승으로 배운 건 ‘여유’다. 4년을 기다려온 만큼 앞으로의 시간도 서두루지 않겠다고 했다.
“첫 우승까지 4년이 걸렸어요. 늘 우승하는 꿈을 꿔서 그런지 처음엔 실감도 안 났죠. 그러다 이틀이 지나서 친한 언니에게 ‘저 우승한거 맞아요. 꿈꾸는 것 같아요’라고 물었더니 내 어깨를 흔들며 ‘너 우승한거 맞아’라고 하더라고요. 그때서야 우승을 실감하고 눈물을 흘렸죠. 다음 우승도 빨리 하고 싶지만 천천히 기다려보려고요.”
태안|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na18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