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년 ‘랠리 몽키’ 신화…그리고 LA 에인절스
WS 6차전 7회 0-5 상황 ‘랠리 몽키’ 등장으로 역전승
7차전도 4-1 잡으며 AL 와일드카드팀 최초 WS 우승
이후 PS에 단골로 등장했지만 번번이 WS 진출 실패
한·일월드컵축구대회가 열렸던 해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 2002년. 그 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애너하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가 맞대결한 월드시리즈에선 지금까지도 많은 야구팬들에게 단골 메뉴로 회자될 만큼 최고의 명승부가 펼쳐졌다.
2002년 월드시리즈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유난히 많이 붙는다. 1961년 창단된 에인절스는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아메리칸리그챔피언십을 거머쥐며 월드시리즈 무대에 데뷔했다. 내셔널리그 챔피언 자이언츠도 1958년 연고지를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이후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나들이에 나섰다.
두 팀은 모두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1995년 이후 최초로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팀들끼리 격돌한 월드시리즈였다. 1974년, 1988년, 1989년에 이어 캘리포니아에 연고를 둔 팀들끼리 4번째로 정상을 다툰 2002년은 메이저리그 최다홈런기록을 보유한 배리 본즈(자이언츠)의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시리즈이기도 했다.
한 해 전, 자이언츠의 슬러거 본즈는 10월 7일 LA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박찬호를 상대로 71·72호 홈런을 터뜨렸다. 바로 다음 날에는 데니스 스프링거를 상대로 73호 홈런을 때려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홈런기록을 수립했다. 본즈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당시로는 파격적인 5년간 9000만달러의 조건으로 자이언츠와 연장계약을 하는 데 성공했다. 2002년에도 46홈런을 날리며 상대 투수들의 기피대상 1호로 군림한 본즈는 마침내 생애 첫 월드시리즈 진출의 꿈을 이뤄냈지만, 끝내 우승반지를 손에 끼지는 못했다.
흔히들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에선 1차전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에인절스에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4년 연속 아메리칸리그 우승을 차지한 뉴욕 양키스와의 디비전시리즈, 미네소타 트윈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모두 첫 판을 내주고도 승부를 뒤집는 뚝심을 발휘하며 ‘역전의 명수’라는 닉네임까지 얻었을 정도다.
자이언츠와의 월드시리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홈필드어드밴티지를 지닌 에인절스는 1차전에서 3-4로 분패했다. 본즈는 월드시리즈 첫 타석이었던 1차전 2회초 재로드 워시번을 상대로 솔로홈런을 쏘아 올리며 괴물다운 면모를 뽐냈다.
2차전에선 난타전이 펼쳐졌다. 9-9로 맞선 8회말 강타자 팀 새먼이 승부를 가르는 2점홈런을 터뜨린 에인절스가 멍군을 불렀다. 본즈는 9회초 에인절스 마무리 트로이 퍼시벌로부터 솔로홈런을 뿜어냈지만 팀의 1점차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퍼시픽벨파크(현 AT&T파크)로 옮겨 치러진 3차전에서 에인절스는 장단 16안타를 폭죽처럼 터뜨리며 10-4의 완승을 거뒀다. 3회와 4회, 2차례나 타자 일순하며 4점씩을 뽑아내 일찌감치 승세를 굳혔다. 본즈는 역사상 처음으로 월드시리즈 첫 3경기에서 모두 아치를 그리는 진기록을 수립했지만, 팀의 패배로 빛이 바랬다.
자이언츠는 4차전에서도 0-3으로 뒤져 궁지에 몰렸다. 그러나 내셔널리그챔피언십시리즈 최우수선수(MVP) 베니토 산티아고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든 뒤 8회말 데이비드 벨의 결승타에 힘입어 4-3으로 역전승을 거뒀다. 마지막 홈경기였던 5차전에서도 자이언츠는 제프 켄트와 리치 오릴리아의 홈런포 등을 앞세워 16-4의 대승을 거두고 한 발 앞서나갔다.
이틀 뒤 애너하임으로 옮겨 치러진 운명의 6차전. 자이언츠는 월드시리즈 4번째 홈런을 터뜨린 본즈를 앞세워 7회초까지 5-0으로 앞섰다. 아웃카운트 9개를 추가하면 대망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7회초를 마치고 대형 전광판에 ‘랠리 몽키’가 등장하자 4만5000여 에인절스 팬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홈팀의 역전을 간절히 고대하며 열광적 응원을 펼쳤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됐다. 7회말 에인절스 1루수 스콧 스피지오가 우월3점홈런을 터뜨렸다. 추격전은 8회에도 이어졌다. 대런 얼스테드의 솔로홈런과 본즈의 실책성 플레이로 1점차까지 추격한 에인절스는 트로이 글로스의 천금같은 2타점 적시타로 6-5 역전에 성공했다.
기사회생한 에인절스는 7차전에서 1-1로 맞선 4회말 개럿 앤더슨의 주자 일소 2루타에 힘입어 4-1로 앞서나갔다. 마운드에선 루키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존 랙키-브렌던 도넬리-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로 이어지는 루키 3총사가 8회까지 자이언츠 강타선을 1실점으로 틀어막은 것. 그러나 우승은 결코 쉽지 않았다. 마무리 퍼시벌이 제구 난조를 보이며 9회초 1사 1·2루 위기에 몰렸다. 심호홉을 크게 한 퍼시벌은 일본인 최초로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신조 쓰요시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낸 뒤 케니 로프턴을 중견수 플라이로 요리해 팀의 승리를 지켜냈다.
4승3패로 극적인 우승을 차지한 에인절스는 와일드카드로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른 첫 번째 아메리칸리그 팀이 됐다. 이후 에인절스는 포스트시즌에 단골손님처럼 등장했지만, 월드시리즈 진출에 번번이 실패한 반면 자이언츠는 2010년과 2012년 정상에 올라 랠리 몽키의 악몽을 말끔히 씻어냈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