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클리블랜드 최다 337홈런 전설 ‘짐 토미 동상’ 선다

입력 2014-02-0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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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 통산홈런 7위 2018년 명예의 전당 후보 짐 토미

스승 매뉴얼 만나고 평범한 선수서 거포로 변신
2002년 52홈런 개인 최다…장타율도 리그 1위
이듬해 클리블랜드 뿌리치고 필라델피아로 이적
통산 612홈런 기록했지만 우승 못해본 채 은퇴


지난달 27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구단은 팀 내 최다홈런 기록 보유자인 짐 토미(44)의 동상을 프로그레시브필드에 세운다고 발표했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투수 봅 펠러에 이어 프로그레시브필드에 2번째로 세워질 토미의 동상은 8월 3일 공개될 예정이다. 통산 612홈런을 기록한 토미는 그 중 337개를 인디언스 유니폼을 입고 작성했다. 약물복용 시대에 뛰면서도 그 어떤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고 불굴의 노력으로 메이저리그 통산 홈런 7위에 올라있는 토미는 2018년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오르게 된다.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오른손으로 방망이를 쥐고 중견수 쪽을 가리키는 독특한 동작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토미의 파란만장했던 야구인생을 살펴본다.


● 영원한 스승 찰리 매뉴얼

1970년 8월 27일 일리노이주 피오리아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토미는 야구와 농구에 재능을 보였다. 그의 어릴 적 우상은 통산 442홈런을 친 데이브 킹맨. 킹맨이 시카고 컵스에서 활약하던 시절 어린 토미는 그의 사인을 얻고자 리글리필드 라커룸에 잠입할 정도로 열성 팬이었다.

고교 시절 야구와 농구에서 모두 일리노이주 최고의 선수로 뽑혔지만, 키 188cm에 몸무게가 79kg밖에 나가지 않아 스카우트들의 큰 주목을 끌지 못했다. 대학 진학 1년 후인 1989년 실시된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13라운드에 인디언스에 지명됐을 정도로 매우 평범한 선수였다.

마이너리그 첫 해 단 1개의 홈런도 치지 못한 토미의 운명이 바뀐 것은 2013시즌까지 필라델피아 필리스 감독을 역임한 찰리 매뉴얼을 만나고 난 뒤부터다. 당시 인디언스 구단 마이너리그 타격코치를 맡고 있던 매뉴얼은 다른 코칭스태프와는 달리 토미의 재능을 높이 사 집중조련에 나섰다. 엉덩이 회전을 극대화해 타격 시 파워를 싣는 법을 배운 토미는 완전히 다른 타자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또 타석에서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영화 ‘내추럴’에 나오는 주인공 로이 홉스(로버트 레드포드)처럼 방망이를 쭉 뻗어 센터필더 쪽을 가리킨 뒤 투수를 상대하라고 조언한 것도 매뉴얼의 가르침이었다.


● 공포의 타자

토미가 풀타임 메이저리거가 된 것은 1994년. 7시즌 연속 승리보다 패배가 많았던 인디언스는 샌디 알로마 주니어, 케니 로프턴, 카를로스 바에르가, 마크 클라크 등 스타급 선수들을 보강하는 한편 24세의 토미와 그보다 두 살 어린 매니 라미레스를 중용하며 강팀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1995년 0.314로 팀 내 타율 1위를 차지한 토미는 25개의 홈런도 곁들이며 인디언스가 무려 41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인디언스는 월드시리즈에서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존 스몰츠 등 막강 선발진을 앞세운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방패를 뚫지 못하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상대 투수에 따라 5번부터 8번까지 배치됐던 토미는 1996시즌에야 6번타자로 고정될 정도로 인디언스 타선은 막강했다.

1997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활약하던 매트 윌리엄스를 영입하면서 토미는 3루수에서 1루수로 전향했다. 그해 인디언스가 때린 홈런은 무려 220개. 그 중 40개를 책임진 토미는 102타점을 올리며 아메리칸리그 최다인 120개의 볼넷도 얻었다. 그러나 인디언스는 플로리다 말린스와 월드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혈투를 펼쳤지만 팀 역사상 3번째 우승에 또 다시 실패했다.

1999시즌부터 4번타자로 나선 토미는 전형적인 파워히터로 명성을 떨쳤다. 2001년 49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2위에 올랐고, 124타점을 뽑았다. 이듬해에는 볼넷(122개), 장타율(0.677), OPS(1.122)에서 리그 1위를 차지했다. 또 한 시즌 개인 최다인 52홈런을 치면서도 타율 0.304를 기록했다.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인디언스 지휘봉을 잡은 사람은 마이너리그 시절 그의 멘토였던 매뉴얼 감독이었다.


● 저니맨

인디언스의 잔류 제의를 뿌리친 토미는 6년간 8500만달러의 조건에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했다. 2003년 47홈런을 치며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등극한 토미는 이듬해에도 42개의 아치를 그렸다. 양대 리그를 모두 평정하던 그에게 시련이 닥친 것은 2005년으로, 공교롭게도 매뉴얼 감독이 필리스로 부임한 첫 해였다. 부상 탓에 전반기까지 타율 0.207, 7홈런에 그치며 극도의 부진을 보이자 홈팬들의 야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 대신 같은 포지션의 루키 라이언 하워드가 타석에 들어설 때면 엄청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결국 8월 오른쪽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른 토미가 시즌을 일찌감치 마감한 반면 하워드는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거머쥐며 세대교체를 알렸다.

하워드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은 토미는 고향팀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돼 지명타자로 변신했다. 2006시즌 4월에만 구단 기록인 10개의 홈런포를 뿜어내며 42홈런 109타점으로 시즌을 마쳐 ‘올해의 재기상’을 거머쥐었다. 2009년 트레이드 마감일에는 LA 다저스로 둥지를 옮겼다. 트레이드 거부권이 있었지만 우승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다저스행에 동의한 것. 그러나 고질적 허리 부상으로 반쪽짜리 선수가 된 그는 대타로만 출전해 17타수 4안타(0.235)에 홈런 없이 3타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그 후 토미는 미네소타 트윈스(2010∼2011년), 인디언스(2011년), 필리스(2012년), 볼티모어 오리올스(2012년)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통산 타율 0.276, 612홈런, 1699타점을 기록한 그는 늘 학수고대하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는 결국 차지하지 못했다. 토미는 2013년 7월부터 화이트삭스 단장 특별보좌역으로 제2의 야구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스포츠동아 미국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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