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죽기살기로 이기려는 자 vs 마음을 비운 자
어중간한 심리상태는 오히려 경기력 악영향
“마지막경기 부담감에 김연아 고독 느꼈을 것
17년의 값진 경험, 가장 강력한 무기로 작용”
정상에서 물러나는 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실제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떨어질 것 같지 않은 것이 사람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014소치동계올림픽에 나선 김연아(24·올댓스포츠)는 특별하다. 정점을 찍고, 스스로 내려가겠다고 이미 선언했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올림픽 여왕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다 ‘이제 마지막’이라는 압박감까지 등에 업고 연기했다. 그 마음의 지형도를 김병현 전 한국체육과학연구원(KISS) 박사, 한덕현 중앙대 교수, 1984LA올림픽 유도 금메달리스트인 하형주 동아대 교수 등 스포츠심리학자 3인의 눈을 통해 들여다봤다.
● 선수가 이길 때의 마음가짐
김병현 박사는 “선수가 이기려면 극도로 상황이 몰려서 죽기 살기의 심정이 되든지, 아예 초월한 경지에 들어가든지 둘 중 하나의 심리여야 된다. 여자쇼트트랙이 전자의 심리가 작동해서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냈다면, 김연아는 후자의 대표적 사례”라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두 마음 사이에서 어중간할 때 선수는 진다. 생각이 많아져 불안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생각이 단순해질 때 선수는 최대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자쇼트트랙의 경우처럼 결사적인 마음을 갖기란 아주 어렵다. 스포츠심리학은 마음을 비워 상태불안을 없애고, 실전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최상으로 꼽는다. 김연아는 이 점에서 탁월하다.
● 은퇴경기라는 중압감 속에서
스포츠심리학자들도 격찬하는 대목은 김연아가 가장 절박한 상황에서도 초연함을 잃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은퇴경기이기에 실수하면 만회할 기회가 없다. 반대로 꼭 잘 해야 될 이유는 무척 많다. 한덕현 교수는 “김연아는 ‘마지막이 아니라는 생각을 되뇐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의식적으로 그렇게 자기최면을 걸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한 교수와 하형주 교수는 “주위에서 은퇴경기라고 자꾸 말하는 것이 부담을 줬을 것”이라고 봤다. 그렇다고 피겨계가 주목하는 마당에 김연아가 은퇴에 대해 함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하 교수는 “김연아는 누구도 느끼지 못했을 고독함을 감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 17년의 경험이 스승
김병현 박사는 2004아테네올림픽 역도 이배영(35·은퇴)의 일화를 전했다. 경기 직전, 이배영과 김 박사는 아무 말 없이 30분을 같은 공간에 있었다. 극도의 긴장감에 짓눌린 이배영이 불쑥 한마디를 꺼냈다. “선생님,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죠?” 김 박사는 “4년 동안 실수 안 하는 연습만 해왔던 이배영이 라커에서 불안을 느낀 것이다. ‘실수할 수 있다’고 해주자, 그제야 ‘알았다’고 하고 경기장으로 나갔다. 그렇게 은메달을 땄다”고 설명했다. 김연아에게도 ‘실수할 수 있겠죠?’라는 마음속 두려움을 털어놓을 사람이 있었을까. 김연아는 심리트레이너를 따로 두지 않았다. 그러나 김 박사는 “17년의 경험이 김연아의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어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