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신의 영혼 '오로라'
지구에서 볼 수 있는 자연현상 중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현상, '오로라'.
오로라는 태양에서 방출된 전기 입자가 지구 자기장에 이끌려 대기에 진입하면서 공기에 부딪치며 빛을 내는 현상을 일컫는다. 태양은 매일 뜨거운 열기를 폭발해 내는데, 이를 태양열이라 한다. 태양열은 3일이면 지구에 도착한다. 지구에 도달한 태양열의 전기 입자는 마치 자석에 이끌리듯이 지구 자기장에 끌려 들어온다. 이 전기 입자가 공기와 부딪치면 오묘하면서도 신이한 빛이 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오로라다. 그 빛이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북미 지역 원주민들은 오로라를 '신의 영혼'이라 불렀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염원 또는 버킷리스트로 오로라 보기를 꼽지만, 오로라를 관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위도 60도가 넘는 극지방까지 가야 한다. 극지방을 방문했더라도 날씨가 흐리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강한 빛을 내뿜는 것도 이따금이니, 써늘한 바깥 날씨를 견디며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오로라 관찰만큼 오로라를 촬영하기란 더더욱 까다롭다. 오로라는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현상이기에 카메라에 담는 것이 쉽지 않다. 어쩌다 강한 빛이 나타나더라도 순식간에 사라지기에 그 찰나를 담아내기란 매우 어렵다. 게다가 야간 촬영은 기본이요, 혹독한 추위 때문에 배터리 방전 및 빙결을 염려해야 한다.
특명! 스마트폰으로 오로라를 찍어라
그런데… 오로라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한다고?
이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 것은 다름아닌 LG전자. LG전자는 자사의 전략 스마트폰 'G프로2'의 출시를 앞두고 오로라 촬영기에 나섰다. 글쎄, DSLR으로도 오롯이 담아내기 어려운 오로라를 스마트폰으로 생생하게 담아내겠다고? 처음 취재 제안을 받았을 땐 귀를 의심했다.
반신반의. 이와 동시에 LG전자의 OIS 플러스를 떠올려보면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스쳤다. G프로2는 ‘OIS 플러스’ 기능을 탑재했다. OIS 기술은 손이 떨리는 상황이나 어두운 곳에서도 선명하게 사진을 촬영할 수 있도록 한 것으로, LG G2 당시 주목받은 바 있다. 더구나 이번에는 ‘OIS 플러스’로 발전했다. OIS 플러스는 하드웨어적 관점인 기존 OIS에 소프트웨어적 관점의 ‘EIS(Electro Image System)’를 더한 것이다. 사진을 찍는 중에는 OIS로 흔들림을 보정하고, 이후 소프트웨어가 한 차례 더 흔들림을 보정해 사진을 또렷하게 한다. 손이 떨리는 상황이나 어두운 곳에서 선명하게 촬영할 수 있다면, G프로2는 오로라처럼 까다로운 순간도 충분히 포착하는 스마트폰일 것이다.
반신반의를 뒤로 하고,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오로라를 관측하기 좋다는 캐나다 옐로나이프(Yellowknife)를 찾았다. 현장에는 권오철 사진작가가 참여, 김주원 사진작가가 동행해 G프로2로 촬영을 진행했다. 권오철 작가는 천체사진 전문가로 2001년 미국 나사(NASA)의 Astronomy Picture of the Day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됐으며,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이트에 사진을 제공하고 있다. (본 기사는 2월 5일부터 8일까지 사진작가들이 G프로2로 오로라를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본 관찰기임을 밝힌다)
DAY 1. 2014/02/05
여정은 낭만이 아니다, 그리고 의문의 남자
한국에서 옐로나이프에 가는 여정은 순탄치 않다. 직항이 없기 때문에 비행기를 3번은 갈아타야 한다. 필자는 인천공항에서 밴쿠버(10시간), 밴쿠버에서 캘거리(1시간 30분), 캘거리에서 옐로나이프(2시간 30분)에 도착하는 여정에 합류했다. 비행에 소요한 시간은 약 14시간. (이는 비행기가 연착되거나 공항에서 체류한 시간을 제외한 것으로, 실제로는 16시간 이상 소요됐다) 경이로움과 만나는 과정에는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나 보다.
사실, 필자는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정에 합류했다. 설 연휴 직전, 갑작스레 취재 요청을 받았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부터 심한 독감에 시달렸다. 여행 스케줄은 비행기 출발 시간 23시간 전에 나왔고, 심지어 현지 일정은 현장에 도착해야 알 수 있었다. (마치 '무한도전' 멤버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미지의 장소에 찾아가 미션을 수행하는 것과 비슷했다) 허나,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갈 수 있었다. 비행 과정은 다시 떠올리기도 끔찍할 만큼 피곤하고 지루했다. 아아, 내가 왜 간다고 했을까! 어쩐지 강 선배(강일용 기자)가 안 간다고 하더라.
캘거리에서 옐로나이프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한국 사람인데 보기 드문 미남이었다. 누군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공교롭게도 그 남자와는 출발 비행기, 목적지,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 시간까지 모두 일치했다)
옐로나이프 적응하기, 추위와의 싸움
현지시각 2월 5일 밤 10시. 옐로나이프에 도착했다. 옐로나이프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코끝을 훅 찌르는 추위에 움찔했다. 콧구멍 안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던 것. 하지만 이날 스마트폰 위젯으로 확인한 현지 기온은 영하 20도로 비교적 '따뜻'했다. 옐로나이프의 평균 기온은 영하 30~40도이며, 그 이하로 내려갈 때도 있다.
날씨가 워낙 춥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방한복을 빌려준다. 빌려주는 방한복은 캐나다구스로, 극지용 expedition 등급이다. 한국에서 입던 겨울 외투에 캐나다구스를 겹쳐 입었다. 상의, 하의, 장갑, 방한화, 두건까지 모두 착용하고 나니 몸이 둔해져서 굴러다닐 것만 같았다. 내가 옷을 입은 건지, 옷이 나를 입은 건지. 마치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그맨들이 공 모양 의상을 껴입은 듯했다.
오로라를 감상하러, GO!
기나긴 여정의 피로도 잠시, 옷을 갈아입자마자 곧장 오로라빌리지로 향했다. 오로라빌리지란, 오로라를 관측하기 좋은 장소로, 티피(Teepee. 북미 원주민의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원뿔형 천막집) 등이 마련된 곳이다. LG전자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권오철 작가님과 김주원 작가님은 진작부터 촬영을 하고 있다고. 물론 촬영에 사용한 것은 G프로2다.
본격적으로 오로라를 보러 간다고 하니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오로라가 뜰까? 오로라빌리지로 달리는 차 안에서 혹시 오로라가 보이지는 않을지 차창 너머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깜깜한 밤, 식별 가능한 것은 없었다
오로라빌리지는 그야말로 눈밭이었다. 눈 덮인 대지를 뾰족한 침엽수들이 가득 둘러싸고 있었고, 군데군데 티피가 세워져 있었다. 티피에는 난로가 끓고 있어 아늑한 노란색으로 빛이 났다. 많은 관광객들이 오로라를 관찰하고자 따스한 티피를 마다하고 기꺼이 눈밭에 나와 있었다. 두 작가님도 마찬가지였다. 무릎 좀 아래까지 차오르는 눈밭을 헤치고, 눈 한복판에서 작가님들을 만났다. (하지만 사방이 어두운데다 모든 사람들이 모자와 두건으로 얼굴을 잔뜩 감싸고 있어, 누가 누구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오로라를 처음 보러 온 일행들을 위해, 권오철 작가님은 오로라의 등급에 대해 설명했다. 일반인들을 위해 쉽게 설명한다면, 오로라는 크게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레벨1은 흐릿한 오로라, 레벨5는 밝은 오로라다. 하지만 같은 레벨이라 할지라도 밝기의 정도는 수십 배의 차이가 날 수 있다고. 가령 고등학교 우등반을 오로라의 레벨5에 비유할 수 있는데, 같은 우등반에 속해 있더라도 전교 1등과 전교 30등의 차이가 큰 것과 비슷하다.
권: "오로라가 환하게 비치면 땅에 내린 눈이 반사되어 온 사방이 환하게 빛납니다. 그 순간을 맞닥뜨릴 수만 있다면, 촬영은 손쉽게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날 오로라는 희미했다. 초록색으로 빛나지 않고 흰색, 회색으로 관찰됐다(레벨3). 하늘에 구름이 끼어 맑지 않았던 탓이다. 그렇다, 오로라는 하늘이 허락해야만 볼 수 있다. 안타깝게도 오로라는 조금 진해졌다가도 홀연히 사라지고, 다시 희미하게 나타나길 반복했다. 마치 약올리는 것만 같았다.
더욱 야속했던 건, 그나마 진한 오로라는 자꾸만 김주원 작가님 뒤에만 나타났다는 것.
사람들: "뜬다 뜬다. 작가님, 작가님 뒤에 있어요"
김: "왜 아까부터 자꾸 내 뒤에서만 뜨는 거지"
사람들: "자리 옮기면 다시 작가님 뒤에서 뜰 것 같지 않아요?"
김: "왠지 그럴 것 같아서 자리를 못 바꾸겠어요"
가끔 오로라가 짙어지는 때도 있었다. 불빛을 그 쪽에 비춰보는 것은 어떨까.
권: "불 비추는 건 안 돼요. 다른 관광객들도 사진 촬영할 텐데, 그건 민폐지"
오로라빌리지에는 암묵적인 규칙들이 있다. 첫째, 플래시를 비롯해 각종 불빛을 사용하지 말 것. 다른 사진 촬영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오로라가 비칠 때는 다른 사람의 카메라 앞을 지나가지 않도록 주의할 것. 밤하늘의 오로라를 담으려면 카메라 노출을 길게 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움직인다면 사진이 흔들려서 나오기 때문이다.
여신은 광휘를 비춰주지 않았다
어둑어둑한 밤. 빛을 비출 수 없기에 누가 누구인지 분간도 가지 않았다. 누가 누구인지도 알아보지 못한 채(식별 가능한 것은 오직 목소리 뿐)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시시각각 변하는 오로라를 좇아 조금씩 조금씩 발걸음을 옮기고, 카메라(G프로2)를 고정하고 하늘을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모두가 바라는 건 하나, 레벨5의 밝은 오로라였다. 다들 "터져라 터져라" 간절하게 외쳤으나, 강력한 ‘한 방’은 끝내 오지 않았다.
권: "오늘은 안 돼. 안될 것 같아요"
결국 이날 촬영은 새벽 2시 30분에 종료됐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숙소로 향했다. 옐로나이프에 도착하기 전에는, 일단 가기만 하면 화려한 오로라를 볼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렇지만 쉽지 않았다. 아쉽지만 오늘은 맛보기라 치자.
물론, 처음 오로라를 본 필자 입장에서는 흐릿한 오로라마저 오묘하고 아름다웠다. 하얀 빛이 조용히 나부끼는 장관이 마치 천상에 사는 선녀의 옷자락이 산들바람에 흔들리는 것만 같았다. 무언가에 비유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답답하지만, 현실에서 비유할 수 있는 어떠한 존재도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실제로 '오로라'라는 명칭은 로마 신화에서 아폴로 신의 여동생이자 새벽의 여신인 오로라의 이름을 딴 것이니, 오로라를 묘사할 때는 신에 빗대는 표현만이 적절한 셈이다.
권 작가님은 '간장 선생'
촬영을 접으면서 작가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나: "혹시 스마트폰으로 오로라를 촬영해 보신 적, 그 전에도 있으셨나요?"
권: "아니요. 저는 2G폰 써요. 스마트폰 사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나: "작가님은 어떻게 천체 사진 전문가가 되셨어요? 원래는 다른 일을 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권: "원래는 다른 일을 했죠. 하지만 직장 생활을 할 때도 천체 사진가로 활동했어요. 낮에는 직장인이지만 밤에는 사진작가로 변신하는 생활을 했던 거죠. 그러다가 2009년 12월, 캐논 측에서 오로라 촬영을 강의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어요. 12월은 회사에서 가장 바쁜 달이지만, 너무나 좋은 기회잖아요. 결국 바득바득 우겨서 휴가를 갔어요. 그렇게 오로라를 만나고... 일주일 뒤 사표를 냈죠. 다시 돌아온 회사와 오로라를 보았던 현장은 너무나 달랐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때부터는 전업으로 천체 사진가로 활동했죠"
김: "권 작가님 일본 영화에 나오는 '간장 선생'과 비슷해요"
나: "그게 뭐예요?"
김: "한 번 찾아보세요. 행동하는 게… 아주 비슷해요"
권: "음… 야동 마니아인가?(웃음)"
로밍 불가, 원시인이 되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김주원 작가님이 말한 '간장 선생'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스마트폰을 꺼냈다. 헌데 여기… 로밍이 안 되더라. 현지에 있는 다른 이동통신사를 잡아보는 등 온갖 조작을 다 해봤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처음에는 필자가 이용하는 이동통신사의 문제인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동통신 3사 모두 먹통이었다. SK텔레콤은 간간히 신호가 잡히는 정도였고, KT와 LG유플러스는 전혀 로밍이 되지 않았다.
옐로나이프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숙소에서 지원하는 와이파이뿐이었다. 그마저도 연결이 불안정해 뚝뚝 끊어지기 일쑤였다. 그렇다, 여기는 온전히 자연이 지배하는 영역이었다. 한국에서는 틈만 나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던 필자 입장에서는 암담하기만 했다. 원시인이 된 기분이었다. 과연 여기서 무사히 보낼 수 있을까?
신의 영혼 '오로라'. G프로2 촬영기 (2) 기사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글 / 캐나다 옐로나이프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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