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혼 '오로라', G프로2 촬영기 (2)

입력 2014-02-28 18:5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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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혼 ‘오로라’, G프로2 촬영기 (1) - http://it.donga.com/17372/

DAY 2. 2014/02/06

카메라 일병 구하기

둘째 날, 이날 기온은 영하 23도 가량이었으며 체감 온도는 훨씬 더 떨어졌다. 그러나 오로라를 촬영하러 온 이상 중요한 것은 체감 온도가 아니었다. ‘카메라의 체감 온도’가 더 중요했다. 기온이 낮은 곳에서 노트북, 카메라,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사용하면 배터리 방전 현상이 일어난다. 실제로 이날 낮에도 일행들의 노트북과 휴대폰이 방전되는 일이 심심찮게 벌어졌다. 간밤에는 카메라를 고정하는 삼각대 다리가 얼어붙은 나머지 깨져버렸다.


방전 외에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었다. 바로 온도 차. 야외에서 촬영을 하다가 따뜻한 티피 안에 들어오면 카메라에 물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다시 추운 야외로 나간다면 카메라에 있던 물이 얼어붙어 결정이 된다. 물이 얼면 부피가 커지는데, 카메라에 낀 물이 얼어붙으면 얼음 결정이 카메라 부품을 밀어내 카메라가 망가질 수 있다. 그래서 야외에 있을 때는 카메라를 품 속에 넣어 따뜻하게 해 주고, 티피 안에 들어올 때는 지퍼백 등에 넣어 천천히 녹이는 등 온도 차를 줄여야 한다. 또한 물이 생기지 않도록 카메라를 닦아주는 것이 좋다.

이에 두 작가님들이 G프로2로 촬영을 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다양한 구도에서 오로라를 포착하고자 G프로2를 여러 대 설치했다. 둘째, 반드시 삼각대를 사용했다. 오로라를 촬영하려면 카메라 노출을 길게 해야 하는데, 장노출 시 삼각대를 이용하지 않으면 사진이 흔들려서 나오기 때문이다. 셋째, 특정 구도에서 사진을 50~100장 가량 찍은 뒤, 방전을 대비해 사용했던 스마트폰은 품 속에 넣어두고 나중에 다시 사용했다.


물론, 이는 전문 사진작가들이 택한 방식이다. 일반인이라면 스마트폰을 품 속에 넣어두었다가 오로라가 짙어질 무렵 스마트폰을 고정하고 사진을 찍으면 된다. 혹여 삼각대를 이용할 수 없더라도 G프로2의 OIS 플러스를 기대해볼 수 있다. 필자도 미러리스 카메라를 이런 방식으로 사용했으니, 스마트폰이 여러 대 필요한 것이냐고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현장에서 지켜보았지만, 야외 촬영을 감행하는 G프로2가 방전되는 경우도 다른 기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오로라빌리지 티피에서는 일행들이 G프로2를 장갑으로 문지르는 장관이 펼쳐졌다. 겉보기엔 성에가 사라진 것 같아도 날씨가 워낙 추워 성에가 다시 살아나기도 했다. 이에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문지르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추운 날씨에 웅크리고 앉아 장갑으로 스마트폰을 문지르는 광경, 처량하고 쓸쓸했다. 모자와 두건으로 감싸 얼굴을 알아보기 힘든 누군가가 그랬다.

“장갑으로 문지르다니… 우리 너무 없어 보이는 것 아냐?(웃음)”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얼면 무조건 녹여야 해요. 사람이랑 똑같아요”


굳이 스마트폰으로 극한의 상황을 포착하는 이유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는 G프로2로 오로라를 촬영하는 것에 의문을 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일반인이 오로라를 보러 극지방까지 가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오로라를 촬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스마트폰으로 오로라를 찍는 극한의 상황마저 소화할 수 있다면, 일상에서 중요한 순간을 생생하게 포착하는 일은 더욱 수월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물의 우수성으로 따지자면 DSLR이 압도적이겠지만, 항상 DSLR을 지니고 다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DSLR이 없는 사람들도 많고, DSLR을 다루기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 스마트폰은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으며 다루기도 쉽다. 물론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스마트폰 화질에 만족하지 못할 수 있겠지만, 그렇기에 이번 프로젝트는 더더욱 의미 있다. OIS 플러스를 시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G프로2로 찍은 사진이 DSLR 부럽지 않을 만큼 잘 나온다면 스마트폰 화질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의문점도 있을 것이다. ‘전문 사진작가니까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결과물이 좋겠지’. 꼭 그렇지는 않다. 권오철 작가님은 2G폰 사용자로 스마트폰을 처음 사용한다고 했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이 DSLR처럼 복잡한 것도 아니니, 노출을 올리고 고정을 잘 해놓는다면 누구나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다.

오로라가 뜨면? 무조건 달려간다!

밤 11시. 오로라는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도 맑고 달도 떴는데… 어째 어제보다 오로라가 더 안 보였다. 일행들은 막간을 이용해 LG전자 메이킹 영상에 넣을 권오철 작가님 인터뷰를 진행하기로 했다.

주변을 정리하고 이제 막 한 컷을 찍으려던 참이었다. 누군가가 외쳤다. “오로라 떴어요!”

순식간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티피 밖으로 달려나갔다. 작가님은 어디 가셨지? 한밤중에 모두 똑같은 외투를 입고 얼굴을 감싸고 있고, 플래시를 켤 수도 연락을 할 수도 없으니, 작가님이 어디 있는지 살펴보기란 쉽지 않았다.


체험! 삶의 현장

‘한양에서 김서방 찾기’ 하듯이 사방을 헤맨 끝에 권 작가님을 발견했다. 방해가 될까, 조금 떨어져서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데 권 작가님이 터치펜을 건넸다. 김 작가님을 찾으러 나섰던 것. “스마트폰에서 찰칵 소리가 날 때마다 촬영 버튼을 눌러주세요. 금방 올게요. 추우니까 장갑 끼고 하세요”

얼떨결에 ‘체험! 삶의 현장’의 기회를 얻었다. 긴장이 흘렀다. 혹시라도 실수할까 꼼짝도 못하고 연신 버튼만 쳐다봤다. 찰칵 소리는 15초마다 났다. 알고 보니, 15초마다 사진을 찍었던 이유는 타임 랩스(Time lapse) 영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타임 랩스는 일정 간격으로 움직임을 촬영해 동영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타임 랩스는 일출이나 구름이 이동하는 과정 등을 짤막하게 표현하기 좋다.


권: “수고하셨어요. 어땠어요, ‘체험 삶의 현장’ 소감이”

동태가 될 것 같은 날씨에 15초마다 버튼을 눌러야만 한다니. 기가 질릴 노릇이었다. 아. 프로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구나.

오로라가 사그라들자 우리는 다시 티피로 들어갔다. 얼마나 뛰어다닌 건지, 권 작가님의 두건이 삐뚤었다.

권: “나, 이 상태로 인터뷰해야 하나? (웃음)”

아. 그러고 보니 인터뷰 찍다 말았었지. 결국 이날 인터뷰는 무산됐다.


여신을 찬미하다

새벽 1시 반, 관광객들이 술렁였다. 바깥으로 나가보니 하늘은 더욱 맑게 개었다. 그리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오로라. 처음에는 하얗게 빛나던 오로라는 하늘을 한 바퀴 크게 휘감더니, 초록빛으로 짙어지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을 때가 됐구나’ 생각한 찰나… 카메라를 놓쳐버렸다. 실수가 아니었다. 놓아버릴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환호성을 지르던 관광객들도 금세 숨죽였다. 아예 눈밭에 드러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음악에 비유한다면, ‘비바치시모(vivacissimo, 화려하고 매우 빠르게)’.
초록빛은 점점 강렬해졌고, 이내 오로라의 끝부분이 밝은 핑크빛으로 환하게 타올랐다. 강렬해진 빛만큼 움직임도 빨라졌다. 이윽고 핑크빛이 빙글빙글 하늘을 유영하기 시작했다. 반짝임을 머금은 요정이 발레리나 춤을 추는 것일까, 순진무구한 어린 용이 호수를 헤엄치는 것일까, 새벽 공기에 머리를 감고 나온 여신이 찰랑이는 머릿결을 자랑하는 것일까. 찬란하게 빛나던 핑크빛은 문득 고개를 돌리더니 해맑은 금빛 점을 남기고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약 20초.
세상에, 이 여신은 왜 이리도 부끄러움이 많은 건지. 더 이상 가까이 영접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번에 만난 오로라는 레벨5. 권 작가님의 평에 따르면 100점 만점에 55점이다. 눈 덮인 땅이 빛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 오로라를 볼 수 있었던 것도 운 좋은 편에 속한다.

찰나의 경이로움과 마주쳤을 때 인간은 한없이 무력해진다. 아쉽지만 이날 만난 핑크빛 오로라를 카메라에 담은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독자 여러분께 죄송합니다)

그 대신, 작가님들이 다른 날 G프로2로 촬영한 오로라 사진 몇 컷을 공개한다.






오로라도 작가님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핑크빛 오로라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지만 티피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간간히 나타나는 연초록빛 오로라를 관측하고자 모두 바깥에 머물러 있던 것. 작가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가 “김 작가님은 버팔로 언덕에 있어요”라고 귀띔해줬지만, 한참을 헤매도 찾을 수 없었다. 이제서야 하는 말이지만, 필자는 오로라를 찾는 것보다 작가님들을 찾는 것이 더 힘들었다.

뜬 눈으로 지새우는 밤

권 작가님이 촬영한 수천 장의 오로라 사진 중, 하늘이 까맣게만 나온 사진이 3장 발견됐다. 다만, 현장에서 사용한 G프로2는 출시 2주 전의 미출시 기기임을 밝힌다. 해당 사진은 LG연구소에 즉시 보고됐다. 신제품 출시를 앞둔 만큼 연구진들이 모든 오류를 밝혀내고자 고군분투하는 상황. 집에 가거나 잠을 자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옐로나이프에 있는 사람들만 밤을 새는 줄 알았는데, 한국에 있는 연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간장 선생을 떠올리다

오로라가 약간 더 밝아졌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권 작가님은 다시 뛰어나갔다. 따라가려다가 맥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녹초가 되어버렸다. 아, 어떻게 저리 뛰어 다니시는지… 문득 어제 김 작가님에게 들었던 ‘간장 선생’이 떠올랐다.

간장 선생. 2001년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만든 일본 영화다. 주인공 아카기 박사는 ‘발로 뛰는 의사’라는 사명감을 가졌다. 환자들을 진료하고자 항상 동분서주한다. 그의 병원에는 이런 액자가 걸려 있다.

“개업의는 달려야 한다. 오른쪽 다리가 다치면 왼쪽 다리로 달리고, 왼쪽 다리가 다치면 오른쪽 다리로 달려야 한다. 두 다리가 없으면 손으로도 달려야 한다”


살아 있는데 죽을 것 같아요

숙소까지 가는 길이 지옥 같았다. 체온 유지를 위해 몸에서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지, 몸이 덜덜 떨렸다. 공복감이 심하고 식은땀이 흘렀다. 머리는 어지러웠고 가슴은 두근거렸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저혈당 증세였다. 한국에서 걸려온 독감 기운에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캐나다구스가 너무 무거워 온 몸이 짓눌리는 것도 고통스러웠지만, 날씨 때문에 차마 벗어버릴 수도 없었다.

도착하자마자 바닥에 쓰러졌다. 겹겹이 입은 옷들을 차례차례 벗어내는 것도 일이었다. 뜨거운 물을 담그고 30분을 넘게 있었더니 약간 진정됐지만, 저혈당 증세 때문에 당장 뭔가 먹지 않으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겠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티피에서 치킨버거와 콜라를 가져온 것이 다행이었다. 전자레인지에 돌릴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욕조 속에 몸을 담근 채 천천히 음식을 뜯어먹었다.

향후 오로라 여행을 할 독자들이라면 초콜릿을 충분히 준비하길 바란다. 기온이 너무 낮은데다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니, 체력이 약한 사람이라면 필자와 같은 증상을 겪을 수도 있다. 물론 잠을 푹 자고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면 괜찮지만, 시차증에 시달리면 그마저도 어렵다. 필자도 이틀 가량 시차증을 겪었다. 에너지원을 항시 휴대해야 하는 이유다.

신의 영혼 '오로라'. G프로2 촬영기 (3) 기사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글 / 캐나다 옐로나이프 IT동아 안수영(syahn@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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