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복 경남FC 사장(오른쪽)이 2004년 인천 창단 당시 대구FC의 선수들을 데려가면서 박종환 당시 대구 감독과 악연을 맺었다. 박 감독이 성남으로 복귀하며 8년 만에 안 사장과 또다시 만나게 됐다. 사진제공| 성남FC·스포츠동아DB
1. 성남FC 박종환 감독
2014시즌 K리그클래식(1부) 개막(3월8일)이 5일 앞으로 다가왔다. 12개 팀이 참가하는 가운데 우승을 놓고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 스포츠동아는 개막을 앞두고 <너만은 넘는다>는 시리즈를 준비했다. 선수와 감독, 프런트, 팀끼리의 라이벌 열전을 펼쳐본다.
안 단장, 2003년 박 감독이 키운 선수 빼가
박 감독 ‘인천에겐 질 수 없다’…3년간 무패
성남 감독 vs 경남 사장으로 ‘복수 2라운드’
올 시즌 개막전부터 격돌…8년 만에 맞대결
성남FC 박종환(78) 감독은 예전 대구FC 사령탑(2003∼2006년) 시절 독특한 기록이 하나 있었다. 그는 대구 감독 2년째인 2004년부터 2006년 물러날 때까지 3년 동안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정규리그와 리그 컵을 통틀어 9번 싸워 3승6무의 압도적인 우세였다. K리그에서 이런 천적관계는 종종 있다. 색다른 재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박 감독의 경우 인천에 유독 강했던 이유가 뚜렷하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당시 인천의 초대 단장이었고 지금은 경남FC의 총책임자인 안종복(58) 사장이 바로 박 감독의 승부욕을 자극했던 장본인이다.
● 박종환의 분노
대구는 인천보다 1년 먼저 창단해 2003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했다. 초대 사령탑은 박종환 감독이었다. 쪼들리는 재정 탓에 박 감독은 각 팀에서 방출되다시피 한 선수들을 모아 어렵게 팀을 꾸렸다. 첫 해는 리그 11위로 꼴찌는 면했다. 이듬해인 2004시즌을 앞두고 박 감독은 자신이 있었다. 1년 간 조련한 선수들의 기량이 발전해 해볼만하다는 기대가 컸다.
사건은 대구가 터키로 겨울전지훈련을 떠나기 직전 벌어졌다. 출국 당일 대구의 주축 수비수인 L과 K가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 깜짝 놀라 확인해보니 두 선수가 인천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인천은 창단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안종복 초대 단장이 수완을 발휘해 시민주로 100억원이 넘는 창단준비금을 마련했다. 이 돈을 바탕으로 우수선수를 영입하고 있었고, 그 레이더망에 L과 K가 잡혔다. 좋은 조건으로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박 감독 나름 화가날만한 이유가 있었다. 당시 대구에 있던 관계자는 “L과 K 모두 갈 데 없던 상황에서 박 감독이 창단멤버로 영입해 공들여 키워 놓았다. 터키로 가기 전 연봉협상에서도 구단과 선수의 의견 차이가 크지 않았다. 구단은 무난하게 사인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터키로 떠나기 전날 선수들이 갑자기 안 가겠다고 했다. 알고 보니 인천 안 단장님이 접근 했더라”고 기억했다. 박 감독은 안 단장이 대구의 열악한 사정을 뻔히 알고도 손을 뻗쳤다는 게 못마땅했다. 무엇보다 감독도 모르게 팀이 해외전훈을 떠나기 직전 선수를 가로챘다는 점에 분노했다. L과 K는 결국 인천으로 이적했다. 박 감독은 그 때 마음속으로 인천에 전쟁을 선포했다. ‘앞으로 다른 팀에는 다 져도 절대 인천에는 무릎을 꿇지 않겠다.’
● 3년 동안 인천에 무패
박 감독의 선전포고는 2004시즌 시작과 함께 바로 위력을 발휘했다. 대구는 안방에서 열린 시즌 4번째 경기에서 5골을 때려 넣어 인천을 묵사발로 만들었다. 당시 인천은 개막 후 첫 두 경기에서 전북(0-0), 포항(1-2)을 상대로 1무1패에 그친 뒤 세 번째 경기에서 성남에 1-0으로 이겨 데뷔 첫 승을 따낸 직후였다. 박 감독은 인천의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날 대구는 인천을 잡으며 시즌 초반 리그 2위까지 뛰어올랐고, 박 감독의 ‘벌떼축구’는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박 감독의 승부욕은 대단했다. 이후 대구는 박 감독 재임기간 인천과 8번 더 싸워 2승6무를 기록했다. 박 감독은 대구 지휘봉을 잡고 인천과 마지막으로 맞섰던 2006년 10월15일 홈경기에서도 승리했다. 대구가 초반 3골을 먼저 넣으며 앞서갔고 인천이 나중에 2골로 맹추격했지만 경기는 3-2로 끝났다. 인천은 후기리그 선두를 위해 1승이 절실했던 때인데 대구가 제대로 고춧가루를 뿌렸다. 대구와 인천은 1년 차이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창단했기에 두 팀 맞대결에는 시민구단의 자존심도 걸려 있었다. 박 감독에게 3년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것은 안 단장에게 뼈아픈 상처였다.
2006시즌이 끝나 박 감독이 물러나고 변병주 감독이 새로 대구에 온 뒤 비로소 인천은 기를 펴기 시작한다. 인천은 2007시즌 대구와 5번 만나 5번 모두 이겼다(FA컵 포함). 천적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모 축구인은 “인천이 박종환 감독에게 뺨을 세차게 얻어맞고 변병주 감독에게 화풀이한 셈이다”고 비유했다.
● 8년만의 재회
대구가 인천에 유독 강했던 원동력은 철저한 사전 준비였다. 박 감독의 회고다.
“인천하고 경기하기 전에는 사흘 밤을 새면서 상대 비디오를 봤어. 우리 팀 선수들한테는 마크맨의 습관, 버릇까지 다 알려줬단 말이야. 그대로만 하면 돼. 인천이 당할 재간이 있나.”
운명은 묘하다. 박종환과 안종복, 두 사람은 8년이 지난 2014시즌 재회를 앞두고 있다. 박 감독은 올 시즌 시민구단으로 새로 창단한 성남FC 초대 사령탑으로 컴백했다. 3월8일 창원축구센터에서 벌어지는 성남의 개막전 상대가 안 사장이 있는 경남이다. 박 감독과 안 사장은 이미 한 차례 조우했다. 성남과 경남 모두 올 겨울 터키 안탈리아에서 전지훈련을 했다. 두 팀 캠프는 차로 30여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안 사장이 먼저 와서 박 감독에게 인사한 뒤 성남 연습경기를 보고 갔다. 박 감독도 얼마 후 경남 캠프를 방문했다. 박 감독은 검은색 선팅이 짙게 된 밴을 타고 가서 경남 관계자들도 모르게 연습경기 전반만 살짝 보고 왔다. 박 감독의 창끝은 이제 경남을 겨눌 것인가. 경남-성남의 개막전이 한층 더 흥미롭게 됐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Bergkamp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