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예솔, 그녀의 연기는 ‘느림의 미학’

입력 2014-03-0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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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는 책의 제목처럼 연기자 강예솔은 느리지만 꿈을 향한 발걸음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진정성이 묻어나는 연기자로 성장 중이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 KBS 1TV ‘정도전’ · 2TV ‘TV소설-순금의 땅’ 강예솔

‘정도전’서 혁명의 불씨 지피는 천민역
시청자에 짧지만 깊은 인상 남기고 하차
서른 넘기고서야 주연급으로 자리매김
배움은 느리지만 채움은 견고한 연기자

“롤모델? 나의 열정을 깨우쳐주는 사람”


서른을 넘기고 이제 막 주연급으로 성장하기 시작한 강예솔(31)은 ‘느림보’에 가까운 연기자다. KBS 1TV 대하사극 ‘정도전’과 2TV TV소설 ‘순금의 땅’을 통해 ‘느린’ 것은 결코 노력이 부족하거나 도태됨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연기로 보여주고 있다.

강예솔은 ‘정도전’에서 주인공 정도전(조재현)이 혁명을 본격적으로 꿈꾸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천민 양지 역으로 짧지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월16일 방송된 14회에서 억울한 죽음을 맞으며 하차했지만 캐릭터가 강예솔에게 남긴 여운은 깊고 오래갔다.

양지를 연기하는 내내 현장에서 거울 한 번 보지 않고 온전히 캐릭터에 녹아들고 싶었다는 그는 “극중에서도 의미 있는 죽음이어서 부담이 컸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순간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됐다. 그저 조재현 선배의 눈을 보고 그 기운만 받으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욕심을 부리지 말고 내려놓자 다짐했던 강예솔의 진심은 양지를 통해 고스란히 시청자에게 전해졌고, 스스로 “데뷔 이후 7년의 시간보다 ‘정도전’ 한 편을 통해 얻은 것이 훨씬 많다”고 말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 성장 무대를 ‘순금의 땅’으로 옮겨가면서 강예솔은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드라마에서 억척스럽지만 밝은 성격의 여주인공 정순금 역을 연기 중인 그는 매번 자신의 한계와 부딪히며 그릇을 키워 나가고 있다.

“‘정도전’에서 배운 건 너무 많은데 ‘순금의 땅’에 다 쏟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일일극은 마라톤이다. 150회가 끝나는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짜 승리하는 것이다’는 한 선배의 조언을 듣고 조급함과 욕심을 버렸다.”

강예솔은 순금을 연기하면서 늘 엄마를 떠올린다. 아버지에 대한 효심이 지극한 순금을 보면 외할아버지의 힘든 병 수발을 견디고, 임종까지 지킨 엄마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고 했다.

“녹화 전에 집에서 엄마가 내 대사를 맞춰주곤 한다. 이상하게 그 앞에서 대사를 읊조리면 엄마의 옛날 얘기를 대신 하는 것 같아 가슴이 짠하다. 내가 더 깊이 순금이에게 빠져들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엄마다. 정말 진심으로 연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생각한다. 어쩌면 엄마의 과거이고, 또 누군가의 과거일 테니까 말이다.”

강예솔은 스스로를 ‘느린 배우’라고 정의했다. 연기적인 면에서 배움이 느려 20대에는 속상할 때가 많았다. 이렇게 가다 30대가 되면 연기를 못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한 번 배우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은 타고 났다. 그렇게 스스로 ‘늦음’을 인정하면서 강예솔은 부족함을 채워가고 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진정성은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나온다. 강예솔은 데뷔 후 7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쓰고 있다. 촬영에 관련된 것은 물론이고 그 날 만난 사람과 먹은 것까지 기록할 만큼 꼼꼼하다.

그 속에는 자신만의 ‘연기론’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에게 연기는 곧 사람이다. 사람이 먼저고, 사람을 얻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한다.

“연기라는 것은 수백명의 사람들과 부딪치는 작업이다. 사람에게서 배움과 깨달음을 얻는 일만큼 즐거운 일이 없다. 인생에는 롤모델이 따로 필요가 없다. 현장이 롤모델이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라도 내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을 어떻게 롤모델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현장에서 만나는 단역배우라도 내가 잊고 지냈던 열정을 깨우쳐준다면 그가 바로 내 롤모델이다.”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icky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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