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과 감독은 딴별에서 산다

입력 2014-04-09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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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감독과 베테랑 선수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이방인들일까. 최근 불거진 SK 이만수 감독(오른쪽)과 베테랑 포수 조인성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감독과 베테랑 선수와의 관계가 다시 조명 받고 있다. 감독은 팀과 미래를 먼저 생각하고, 베테랑 선수는 그간의 헌신과 공로를 인정받고 싶어 한다. 둘 모두 이길 수 있는 교차점은 없는 걸까. 스포츠동아DB

■ SK 포수 조인성 트레이드 요구설로 본 감독과의 신경전

● 베테랑 마음

오랜기간 팀에 공헌…보상 기대심리
주전 밀리면 인정하기보다 분노 폭발


● 감독의 생각
선수는 많지만 주전은 아홉자리 뿐
젊은선수에게 기회 주며 미래 준비


● 공존의 열쇠
염경엽 감독, 선수와 1대1 대화
소모적인 전쟁보다 소통이 중요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시즌 초반 잘 달리고 있는 SK가 시끄럽다. 뜨거운 감자는 SK 포수 조인성(39)이다. 갑자기 불거진 트레이드설 때문이다.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돌연 선수교체다. 주전 포수 조인성은 출장 횟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SK 이만수(56) 감독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듯 했다. 물론 조인성에 대해 좋은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이 2일 LG전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났다. 6회말 무사 1·3루 위기서 이 감독은 볼카운트 3B-2S 풀카운트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포수 조인성을 교체했다. 상식선에서 이해하긴 힘든 부분이다. 공 한 개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만수 감독의 포수 교체는 둘 사이에 있는 감정의 골을 대중에게 공개해버린 꼴이 됐다.

변수는 또 하나 있다. 공교롭게도 요즘 포수 기근이다. 우승반지 6개를 낀 삼성 진갑용은 팔꿈치 수술 예정으로 사실상 개점휴업이다. 롯데 포수 장성우는 ‘개인사정’으로 경기출장이 어렵다. 삼성, 한화, KIA, 넥센 등 포수가 필요한 팀은 많다. 신생팀 kt도 포수를 원한다. 이런 상황에서 돌발변수가 터졌다. 경제논리로 보면 포수 수요가 넘치는 반면 공급은 제한돼 있다. 당연히 몸값 혹은 ‘잠재적 몸값에 대한 기대치’가 오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조인성의 마음을 자극시킬 수도 있음직하다.

어쨌든 묘한 상황에서 ‘조인성 트레이드설’이 터졌다. 물론 진위는 곧 밝혀질 것이다. 또 SK와 이만수 감독, 조인성이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는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감독과 베테랑 선수의 알력이다. 사실 감독과 베테랑 선수와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감독과 베테랑 선수는 서로 다른 길을 갈까. 이 둘은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이방인들일까.


● 감독과 베테랑 선수는 다른 별에서 왔을까

감독과 선수는 항상 신경전을 벌인다. 선수는 많고 감독이 줄 수 있는 자리는 그보다 적다. 야수의 주전은 아홉 자리밖에 없다. 1군 엔트리의 모두에게 원하는 만큼 뛰게 해줄 방법이 없다. 그래서 선수와 감독은 서로에게 불만이 있다. 베테랑 선수는 더하다. 이들은 오랜 기간 팀을 위해 공헌했다. 이제는 내심 그 보상을 원한다. 힘이 떨어질 때 더 그렇다. ‘내가 이렇게 팀을 위해 헌신해 왔는데’하는 기대심리가 있다.

그러나 감독의 입장은 다르다. 미래를 봐야 한다.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내일을 볼 수밖에 없다. 베테랑 선수가 오래 한 자리를 차지하면 많은 유망주가 좌절하게 마련이다. SK 민경삼 단장도 MBC∼LG 시절 김재박 때문에 유격수 주전을 차지해보지 못하고 유니폼을 벗었다. 큰 나무의 그늘은 그렇게 크고 오래간다. 베테랑 선수는 주전으로 뛰지 못하면 불만이 쌓인다. 이들은 팀 분위기를 좌지우지한다. 후배들이 눈치를 본다. 훈련 때나 경기 때 불만에 쌓인 베테랑이 엇박자로 나가면 팀 화합은 남의 나라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베테랑 선수는 ‘내가 팀을 위해 이렇게 했는데 나한테 이럴 수 있냐?’라는 심리가 있고 감독은 ‘미래를 위해선 좀 더 값싸고 괜찮은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어 키우고 싶다’는 것이다. 둘의 사고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넥센 염경엽 감독이 들려준 경험담이다. 현대 시절 2할2푼 대의 평범한 유격수였던 염 감독은 고졸신인 박진만 때문에 주전에서 밀려났다. 김재박 감독은 박진만이 1996년 입단하자마자 직접 펑고를 치며 수비를 가르쳐 주전자리를 줬다. “개막전 때 덕아웃에 앉아 있는 나 자신을 보자 저절로 입에서 욕이 나왔다”고 했다. 어떤 선수도 자신의 기량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주전에서 밀려나면 인정하기보다는 분노가 앞서기 마련이다. 게다가 포수는 특수 포지션이다. 주전, 비주전이 확연히 구분된다. 자리를 나눌 수도 없고 그렇게 하지도 않는다. 필요 없다면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할 수 있지만 포수는 팀의 영업비밀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결론을 정리하면 이렇다. 감독과 베테랑 선수와는 서로 다른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런 과정에서 ‘조인성 사건’이 터진 것이다.


● 아날로그 시절의 베테랑과 감독의 알력 해결방법은

그럼 감독과 베테랑 선수와의 갈등은 한국 프로야구만의 문제일까. 아니다. 감독과 베테랑이 다툰 대표적인 사례는 1935년 뉴욕 양키스의 베이브 루스와 밀러 히긴스 감독이었다. 지금의 메이저리그를 있게 한 대스타 루스도 현역시절이 저물어 가던 때였다. 루스는 평소 생활태도가 올바르지 않았다. 루스는 내심 감독자리를 원했다.

하늘에 태양이 둘이 있을 수는 없다. 누가 팀의 대장이냐를 놓고 다툼이 벌어졌다. 구단주는 감독의 편을 들었다. 루스는 보스턴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됐다.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제 아무리 빼어난 스타도 결국 팀이라는 존재 앞에는 무릎을 꿇어야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는 이유다.

우리 프로야구도 사례는 많다. 이만수 감독도 삼성 시절 주전에 밀려나면서 팀과 갈등을 빚었다. 해태 시절 이순철은 하와이 전지훈련 때 항명사건을 일으킨 주범으로 찍혀 그해 포스트시즌 엔트리에서 빠졌다. 김응룡 감독은 불만에 찬 선참을 덕아웃에 데리고 있는 것보다는 눈에 안 띄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고 결국 삼성으로 트레이드 했다.

선동열 삼성 감독 시절 양준혁의 은퇴, 지난 시즌 SK 박경완의 은퇴 모두가 비슷한 사례로 들 수 있다. 두산 김동주도 조용히 잊혀져가고 있다. 베테랑과 감독의 전쟁은 항상 벌어진다. 그것이 대중에 알려지느냐 마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 소통은 마음에 품은 칼도 녹슬게 한다

예전에는 감독과 베테랑이 다투면 대부분 감독이 이겼다. 감독은 갑이었기 때문이다. 2군에 방치해두거나 강제로 은퇴를 시켰다.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선수의 부가가치가 높아졌다. 그냥 두기에는 지나치게 몸값이 비싸다. 장기계약의 영향 탓에 2군에 떨어져도 베테랑들은 아쉬울 것이 별로 없다. 감독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넥센 염경엽 감독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선수와 대화를 하는 대표적인 감독이다. 왜 주전 자리에서 밀려났는지를 1대1로 만나 설명한다고 했다. 소통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정리하는 것이다. 21세기의 화두는 소통이다. 이해와 설득. 야구판에서도 필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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