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발매소 현장을 가다] 지정좌석제가 가져온 변화…“경마가 이렇게 고급 레저였어?”

입력 2014-08-05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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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외발매소가 운영하는 문화센터 프로그램은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중랑 장외발매소의 기타교실(왼쪽)과 꽃꽂이 교실. 사진제공|한국마사회

1. 중랑 장외발매소

전국 최초 지정좌석제 도입 후 쾌적한 환경
지사장 “매출 20% 줄었지만 이미지 개선”
중랑지사 기부금 장학금 등 지역발전 기여
경기 없는 날은 꽃꽂이 등 문화센터 변신

한 국마사회의 용산 장외발매소(렛츠런CCC)가 임시 개장 한달이 지났지만 좀처럼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법원으로부터 ‘시범운영을 통해 문제점을 파악하라’는 화해권고 판결이 나왔지만 반대측은 지역 슬럼화 등의 이유를 들어 ‘무조건 영업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마사회는 “지방세 납부, 고용 창출, 문화센터 운영 등을 통해 장외발매소가 지역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며 순기능에 주목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에 스포츠동아는 장외발매소 운영실태를 점검하는 ‘장외발매소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티켓이 매진돼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지난달 27일 기자가 서울 망우동의 중랑 장외발매소를 방문했을 때 입구에서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일요일을 맞아 경마를 하러 왔던 중년여성이 입장이 저지되자 한국마사회 PA(Park Assistant · 경마 운영요원)에게 항의를 했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그 여성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취재 목적을 밝히고 장외발매소 내부로 들어서자,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넓은 공간이 나왔다. 고객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정보를 분석하거나, 줄을 지어 마권을 구매하고 있었다. 혼잡, 소음, 무질서, 담배연기로 상징되던 장외발매소의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전국 장외발매소 최초로 도입한 지정좌석제 덕분이다.


● 지정좌석제 도입 이후 달라진 경마 문화

중랑 장외발매소는 불과 6년 전만해도 열악한 환경으로 경마 고객과 인근 주민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2009년 건물을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리모델링 해 전면 지정좌석제(1305석)로 운영하면서 확 달라졌다.

“중랑 지사는 마사회가 지향하는 장외발매소의 미래형 모델이다. 처음 방문한 주민들은 ‘경마가 이렇게 고급스러운 레저였나’라며 깜짝 놀란다. 지정좌석제로 고객 숫자를 제한하면서 매출은 20%정도 줄었지만, 경마 이미지 개선이라는 더 큰 성과를 얻었다.”

김종필 중랑 지사장이 장외발매소의 변신 배경을 설명했다. 중랑지사는 시설과 서비스에 따라 5단계로 좌석을 구분해 운영한다. 고객의 요청으로 6월 도입한 프리미엄 좌석 ‘페가수스실’의 입장료는 3만1000원으로 일반 장외발매소 입장료 2000원에 비해 15배 이상 비싸다.

하지만 고객의 만족도는 높았다. 페가수스실에서 만난 박준배(45·중랑구 상봉동)씨는 “안락한 소파와 쾌적한 환경에서 경마에 집중할 수 있어 매번 이곳을 찾는다. 고급 도시락과 간식, 음료, 정보지가 제공되기 때문에 누구도 입장료가 비싸다고 불만을 갖지 않는다. 다만 30석 한정이라 경쟁률이 치열하다”고 밝혔다.

중랑지사의 고급화 노력은 지정좌석제뿐만이 아니다. 고객들의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건물 곳곳에 ‘호출벨’을 설치했다. 벨이 울리면 상황실로 전달돼 직원이 곧바로 출동해 불편사항을 개선한다. 또 체성분, 혈압, 혈당, 성인병 검진이 가능한 고객건강관리 센터를 설치해 운영중이다. 이와 함께 사고예방을 위해 음주 측정을 실시, 만취고객은 돌려보낸다. 과다노출 고객도 들어갈 수 없다. 흡연도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김 지사장은 “장외발매소의 시설과 서비스가 업그레이드되면서 경마 고객들도 이제 품격을 생각한다. 화장실이나 계단에서 누군가 몰래 흡연을 하면 고객이 먼저 신고한다”며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쾌적한 환경은 건물 밖에서도 확인됐다. 건물 미화직원들의 노력으로 지사 및 건물 주변이 쓰레기 없는 거리가 됐다.


● 기부금·문화센터·일자리 등 ‘지역상생 모델’

중랑지사는 한국마사회 장외발매소의 대표적인 지역상생 모델이다. 우선 주목되는 것이 일자리 창출 노력. 중랑지사는 PA 150여 명을 중랑구민으로 우선 채용하고 있다. 이와 함께 관내 저소득층 가정과 복지시설을 돕기 위해 매년 1억 원 이상을 기부하고 있다. 중랑구 주민생활지원과 김윤희 복지자원관리팀장은 “중랑지사의 기부금은 재정이 열악한 중랑구 복지사업의 젖줄이나 다름없다. 특히 학생들에게 주는 장학금은 지역의 인재 양성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고 고마워했다. 중랑지사는 지난해 약 6000만원을 중랑구 교육복지사업 기금으로 지원한 데 이어 올해도 비슷한 금액을 지원할 계획이다.

주민들의 중랑 장외발매소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데는 경마가 열리지 않는 월∼목요일에 운영되는 문화센터가 큰 기여를 했다. 요가, 노래, 피트니스, 라인댄스, 한국무용, 기타, 꽃꽂이 등 10개 프로그램을 운영중인데, 지난해 5만6878명이 이용했다.

기타교실을 수강중인 이암이(54·중랑구 망우동)씨는 “처음에는 도박시설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거부감이 있었는데, 막상 와서 보니 시설과 강의의 질이 정말 뛰어났다. 무엇보다 학원이나 개인교습으로 기타를 배우려면 14만∼17만원의 비용이 드는 데 여기서는 무료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거기다 강사의 실력이 뛰어나고 세심하게 잘 가르쳐 줘서, 배운지 3년 만에 연주 봉사를 다니게 됐다”고 말했다.

중랑지사만의 특화된 문화교실은 한글교실. 다문화 가정 주민과 문맹의 노년층을 위해 지난해부터 개설했는데 호응이 높다. 중랑지사는 지역 상권 살리기에도 나선다. 8월부터 지역 재래시장 등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쿠폰을 발행해 고객에게 제공한다. 이밖에 전문 경영 컨설팅 업체에 위탁해 주변 상인들에 대한 무료 컨설팅도 해주고 있다.

김재학 기자 ajap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ajap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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