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통신원의 네버엔딩스토리] 암을 이긴 사나이, 오클랜드 WS 우승 꿈 이뤄줄까?

입력 2014-08-07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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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클랜드서 새 둥지 존 레스터

데뷔 첫 해 림프종 진단…11개월만에 복귀
4년 연속 15승 따내며 보스턴 에이스 우뚝
작년 WS 1·5차전 웨인라이트에 모두 승리

오클랜드 24년 만의 WS 진출 이룰지 주목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는 월드시리즈 우승을 9차례나 달성한 명문 구단이다. 아메리칸리그에서 뉴욕 양키스(27회)에 이어 두 번째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많이 차지했다. 하지만 FA(프리에이전트)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돼 1990년 이후로는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스몰마켓 팀이지만 빌리 빈 단장이 이끄는 어슬레틱스는 플레이오프에 단골로 진출하며 ‘머니볼’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가 1998년 단장으로 부임한 이래 지난 시즌까지 어슬레틱스는 7차례 플레이오프에 나섰다. 그 중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에 진출한 것은 2006년이 유일할 뿐 나머지 6차례는 모두 디비전시리즈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줄곧 스타급 선수들을 다른 구단에 넘기고 유망주를 받아들여 팀을 유지했던 어슬레틱스가 올해 트레이드 마감일(현지시간 7월 31일)에는 ‘셀러’가 아닌 ‘바이어’의 입장으로 변신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올스타전 홈런왕 더비에서 2년 연속 우승을 차지한 요에니스 세스페데스를 보스턴 레드삭스에 내주는 대신 최고의 좌완투수 중 한 명인 존 레스터를 영입해 에이스 역할을 부여한 것. 과연 빈 단장의 기대대로 레스터가 25년간 이어져 온 어슬레틱스의 우승 갈증을 해소시킬 수 있을지 비상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승승장구

1984년 1월 7일 시애틀 인근 타코마에서 태어난 레스터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워싱턴주를 평정한 최고의 유망주였다. 특히 2000년에는 게토레이드가 선정한 워싱턴주 최우수 선수(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초 기대와는 달리 2002 신인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을 받지 못했다. 2라운드에서 전체 57번째로 그를 지명한 보스턴은 사이닝보너스(계약금)로 100만 달러를 베팅했다. 2라운드 지명 선수에게 100만 달러를 지급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 그만큼 레스터에 거는 기대가 컸다는 방증이다.

마이너리그에서 서서히 기량을 연마한 레스터는 2005년 더블A에서 11승5패에 방어율(2.61)과 탈삼진(163) 부문에서 2관왕을 차지해 레드삭스 마이너리그 최우수투수로 선정됐다. 레드삭스 팜 시스템에 괴물 투수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지자 다른 구단의 트레이드 공세가 밀려왔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는 텍사스 레인저스였는데 “레스터를 주면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보내겠다”는 제의를 할 정도였다. 2006년에는 당시 최고의 기량을 뽐내던 조시 베켓의 트레이드 대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빅리그에 오르기도 전 이미 최고의 유망주 대접을 받은 그의 앞날은 탄탄대로처럼 여겨졌다.


● 암을 이겨내다

2006년 6월 11일 마침내 빅리그 데뷔전을 치른 레스터는 보스턴 구단 기록인 5연승을 달리며 기량을 뽐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는 말처럼 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8월말 오클랜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서 검진을 받던 중 뜻하지 않게 림프종 진단을 받은 것. 그나마 조기에 발견돼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치료를 받다 시애틀에 있는 프레드 허친슨 암센터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투수 출신으로 감독을 역임했던 허친슨은 암으로 인해 1964년 45세를 일기로 운명을 달리했던 인물이다. 그해 말 CT 촬영에서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서를 받아든 레스터는 2007년 스프링캠프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시즌을 시작한 곳은 싱글A였다. 4월말에는 곧장 트리플A로 승격됐고, 7월 24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빅리그 복귀전에 나섰다. 11개월 만에 암을 극복하고 마운드에 우뚝 선 그에게 팬들은 아낌없는 성원을 보냈다.


● 월드시리즈 우승과 노히트노런

4승무패(방어율 4.57)로 정규시즌을 마친 그는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 선발로 등판했다. 포스트시즌에서 부진을 보인 팀 웨이크필드를 대신해 마운드에 올라 5.2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해 승리투수가 됐다. 포스트시즌 첫 등판에서 팀의 우승을 확정 지은 세 번째 투수로 이름을 올린 것. 레드삭스의 주축 투수로 자리매김을 한 그는 2008년 5월 20일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상대로 생애 첫 노히트노런을 달성하며 팀의 7-0 승리를 이끌었다. 130개의 공을 던져 볼넷 2개만 허용했을 뿐 삼진 9개를 잡아내는 역투를 펼쳤다. 2008년부터 4년 연속 15승 이상을 따내며 보스턴의 에이스로 우뚝 선 그는 2012년 9승에 그치며 잠시 주춤거렸지만 이듬해 다시 15승 투수로 복귀했다.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 레스터는 탬파베이 레이스와의 디비전시리즈,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와의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까지 모두 1차전 선발로 출격했다. 특히 월드시리즈 1차전과 5차전에서 카디널스의 에이스 애덤 웨인라이트와 펼친 두 차례 맞대결을 모두 승리로 장식해 보스턴 통산 8번째 우승의 견인차가 됐다.

● 새로운 출발

올 시즌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에서 줄곧 하위권을 면치 못하며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보스턴은 주축 선수들을 트레이드시켜 내년 시즌에 대비하는 체제에 돌입했다. 레스터와 조니 곰스가 오클랜드로 보내졌고, 우완 투수 존 래키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둥지를 옮겼다. 특히 월드시리즈 우승 경험 2차례에 최근 8차례 등판에서 4승무패(방어율 1.07)로 상승세를 타고 있던 레스터의 합류는 플레이오프에 약하다는 징크스에 시달리고 있는 오클랜드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 됐다. 지난 2일 어슬레틱스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오른 레스터의 첫 상대는 3년 전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던 로열스였다. 레스터는 6.2이닝 동안 9안타 1볼넷 3탈삼진 3실점으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하며 시즌 11승째를 수확했다. 세스페데스가 빠졌지만 오클랜드 타선이 레스터의 이적 후 첫 승을 도왔다. 0-1로 리드당한 5회말 대거 8점을 쓸어 담아 레스터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었다. 특히 보스턴에서 함께 이적해온 곰스가 2안타 2타점으로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현재 아메리칸리그 최강으로는 디트로이트가 꼽힌다. 승률은 오클랜드가 더 뛰어나지만 디트로이트도 트레이드를 통해 좌완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영입해 우승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드러냈다. 오클랜드는 플레이오프에서 최근 3차례 연속 디트로이트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암을 극복한 사나이’ 레스터가 24년 만의 월드시리즈 진출이라는 오클랜드의 염원을 이뤄낼지 궁금하다.

스포츠동아 미국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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