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 타자들, 우린 치열함으로 산다

입력 2014-08-13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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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이호준-홍성흔-조인성(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 사진|스포츠동아DB·스포츠코리아

■ 이승엽·이호준·홍성흔·조인성…베테랑타자들이 사는법

이승엽 25호…역대 최고령 30홈런 눈앞
홍성흔 15홈런·조인성 후반기 3할 타율
철저한 자기관리…타격폼 찾기 등 성실


영화로도 제작된 마이클 루이스의 논픽션 ‘머니볼’의 주인공 오클랜드 빌리 빈 단장은 데이비드 저스티스를 트레이드해온다. 저스티스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퇴물 취급을 받고 있었다. 빈 단장도 현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주목한 것이 달랐다. 저스티스의 스윙 스피드나 주력 같은 육체적 능력이 아니라 공을 보는 눈을 믿고 데려온 것이다. 선구안은 ‘나이가 들어도 쇠퇴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믿음에서 ‘늙은 타자’를 영입한 것이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한물 간 선수 취급하거나 케미스트리에 악영향을 끼칠까 백안시하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우리 구단들이 음미할 대목이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는 상식이다. 나이가 들면 ‘상품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이를 먹는 속도와 가치가 떨어지는 속도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틈새에서 숨은 가치가 발견된다. ‘늙은 선수 중에서 비용 대비 효율성 좋은 가치주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 ‘해가 지지 않는’ 올드보이 전성시대

삼성 이승엽(38), NC 이호준(38), 두산 홍성흔(38), 한화 조인성(39). 불혹을 코앞에 둔 타자들의 방망이가 불을 뿜고 있다. 가히 ‘올드보이 타자’들의 전성시대다. 밟는 길이 곧 전설이 되는 이승엽은 11일 목동 넥센전에서 시즌 25호 홈런을 터뜨렸다. 5개의 홈런을 보태면 종전 펠릭스 호세(36세·2001년 36홈런)를 넘어서 프로야구 역대 최고령 30홈런 타자로 올라선다. 또 11일까지 결승타를 15개나 쳐내 전체 1위다. 이호준은 NC의 4번타자이자 정신적 리더다. 2년 연속 20홈런에 1개만을 남겨두고 있다. 최근 4년간 OPS(출루율+장타율)가 모두 0.830을 넘는다.

홍성흔 역시 건실한 성적을 내며 두산 클럽하우스 분위기메이커를 자임하고 있다. 3할 타율에 15홈런으로 용병타자 호르헤 칸투(18홈런) 다음으로 팀 내 홈런이 많다. SK에서 트레이드된 조인성은 한화 후반기 반전의 선봉장이다. 투수리드는 물론, 결정적일 때 터지는 클러치 능력으로 빛난다. 11일까지 후반기 타율은 0.355에 달한다.


● ‘올드보이 타자’들의 승승장구,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올드보이 타자’들은 체력의 열세를 잘 알고 있다. 그 약점을 경험이라는 지혜로 극복하는 방책을 안다. 무작정 훈련이 아니라 자기 몸을 알고 그에 맞춰 단련한다. 감독들에게 신뢰를 얻고 있기에 ‘마이 페이스’가 가능하다. 몸 상태에 따라 훈련시간을 조정하고, 배트 무게를 바꿔주는 등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알기에, 안 될 때 자기를 다스릴 절제능력이 있다.

오래 야구한 선수답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성실함도 있다. 이승엽, 이호준 등은 최적 타격폼을 찾는데 지금도 열중한다. 이승엽은 전성기 외다리 타법을 버리고, 새 타법을 몸에 익히는 치열함을 보여줬다. 이호준 역시 자기 타법에 응용할 수 있을까 해서 후배타자의 타격폼까지 챙겨본다. 체력 유지를 위한 홍성흔의 웨이트 삼매경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조인성은 아직도 포수라는 힘든 포지션에 애착을 갖고 있다.

프로야구에 새로운 스타가 안 나온다고 한탄한다. 이런 선수들처럼 치열한 자기관리를 하는 선수가 왜 없는지부터 성찰해야 될 것임을 ‘올드보이 타자 전성시대’는 시사하고 있다. 베테랑 선수는 여러 모로 구단에 부담스런 존재겠지만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만큼 값어치 있는 재목도 없다.

사직|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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