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남자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판곤 감독은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이변을 꿈꾸고 있다. 홍콩은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강호 우즈베키스탄과 1-1로 비겨 16강 진출 꿈을 부풀리고 있다. 8강 길목에서 한국과 마주칠 가능성도 높아졌다. 홍콩에 ‘축구판 한류’를 심고 있는 김 감독의 행보가 주목된다. 인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홍콩 선수들 정식 프로도 아닌 세미 프로 구성
매주 2∼3일 출퇴근 훈련…체력·조직력 강화
B조 2위로 한국과 16강서 만날 가능성 높아
김 감독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기대
꿈이 현실로 다가온다. 아시아의 변방 홍콩축구가 ‘작은 기적’을 연출해 화제다.
홍콩은 15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과의 2014인천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조별리그 B조 1차전에서 1-1 무승부를 거뒀다. 내용 면에선 우즈벡이 압도했지만, 스코어는 공평(?)하지 않았다. 16차례의 슛 중 골문을 향한 것은 3개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홍콩 수비진의 육탄방어에 걸렸다. 반면 홍콩은 유효 슛 1개를 기록했는데, 이게 골망을 흔들었다. 우즈벡은 인천아시안게임 메달권 진입을 노리는 다크호스다. 한국 ‘이광종호’도 상당한 경계심을 표출해왔다.
그 어느 때보다 값졌고, 소중한 승점 1이었다. 홍콩 취재진도 연거푸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따로 건넬 정도로 이슈가 됐다. 벤치의 힘이 컸다. 홍콩축구에 ‘한류붐’을 일으켜온 김판곤(45)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이번 대회 남자축구 출전국 가운데 국내 지도자가 사령탑을 맡고 있는 곳은 한국과 홍콩뿐이다.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도 겸임 중인 김 감독의 부임 이후 홍콩은 뚜렷한 족적을 새겨왔다. B레벨의 한계를 딛고 2009년 동아시안게임(SEA) 금메달을 땄고, 이번 인천아시안게임에선 토너먼트 라운드(16강) 진입 가능성을 높였다. 당당한 걸음을 뗀 김 감독을 만나봤다.
● 조직력과 체력의 성과
홍콩남자축구는 1990년 베이징대회부터 꾸준히 아시안게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물론 강한 전력을 보여주진 못했다. 번번이 예선에서 탈락했고, 4년 전 광저우대회에선 어렵사리 조별리그를 통과했지만 오만에 패해 16강에서 여정을 마쳤다. 그러나 인천대회에서 홍콩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김판곤 감독은 고국에서 홍콩의 가능성을 확실히 각인시킬 참이다. 내색하진 않지만 16강을 넘어, 그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조별리그를 통과해 16강 진출에 성공하는 건 우리에게 정말 높은 목표지만 일찍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곳(인천)에서 최대한 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솔직히 준비시간은 길지 않았다. 홍콩선수들 대부분은 마음 편히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갖고 있지 못하다. 정식 프로도 아닌, 세미프로다. 김 감독은 이를 고려해 짧은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체력과 조직력에 초점을 맞췄다. 매주 2∼3일씩 출퇴근 형식의 강화훈련을 통해 손발을 맞췄다. 인천에 여장을 푼 것도 첫 경기 사흘 전인 12일 밤이었다. 13일 수원대와 연습경기를 치르고 이틀 뒤 우즈벡과 격돌했다.
그래도 큰 문제는 보이지 않았다. 강호와 만나 밀집수비를 펼친 다른 약체들처럼 홍콩도 비슷한 패턴의 플레이를 구사했지만, 끝까지 체력을 유지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집중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김 감독은 “우즈벡과는 객관적 전력에서부터 차이가 크다. 우즈벡은 우승권이지만, 우린 아니다. 다음(조별리그) 2경기에 승부를 걸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기대이상의 성과를 냈다. 우리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자긍심과 긍지를 느낄 만하다”며 밝게 웃었다.
● 인천발 ‘홍콩의 기적’을 꿈꾸며!
홍콩의 선전이 흥미로운 까닭은 또 있다. 1986년 서울대회 이후 28년만의 아시안게임 정상 등극을 노리는 한국과 홍콩의 격돌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 A조에서 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조 1위 후보다. B조 홍콩이 이어질 아프가니스탄전(18일·안산)과 방글라데시전전(22일·화성)을 잘 마무리할 경우 양국은 8강 길목에서 자웅을 겨룬다.
물론 김판곤 감독도 내심 한국과의 승부를 기다리고 있다. 부담도 적다. 오히려 압박감은 한국이 느낄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우즈벡처럼 객관적 전력에선 한국이 훨씬 앞서지만, 이번 인천아시안게임 조별리그 진행 상황을 보면 ‘공은 둥글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김 감독은 “실점이 최대 관건이다. ‘제로(0)’ 게임이 이뤄져야 역습을 기대할 수 있다. 주도권은 내줘도 볼을 얻었을 때 최대한 길게 소유해야 한다. 예선 통과에 집중하더라도 16강부터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상하지 못 한다”며 다가올 밝은 내일을 기대했다.
인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