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판 ‘우생순’ 꿈꾸는 태극낭자들 “무조건 1승”

입력 2014-09-29 06:4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무조건 1승!” 어려운 환경 속에서 1승을 꿈꾸고 있다. 여자럭비대표팀이 2014인천아시안게임에서 대회 출전 사상 첫 승을 노리고 있다. 왼쪽부터 최민정, 서미지, 최예슬, 김동리. 인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트위터 @yoshike3

대학생·예비 사회인 등 외인부대 12명
동호인 클럽 2개가 전부…인프라 부족
내일부터 3일간 열전…AG 첫 승 목표

7인제 여자럭비는 2014인천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이다. 우리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목표는 소박하게도 1승이다. 이를 위해 여자럭비대표팀은 4월부터 치열하게 달려왔고, 28일부터 아시아드선수촌에서 결전에 대비하고 있다.

여자럭비대표선수 12명은 진정한 ‘외인부대’다. 대부분 대학생, 예비 사회인이다. 여자럭비대표팀을 둘러싼 환경은 첫 출전이었던 4년 전 광저우대회 때와 비교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실업팀 하나 없는, 동호인 클럽 2개가 전부인 인프라는 여전히 초라하기만 하다. 럭비를 계속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렇듯 선수층 자체가 ‘사실상 전무’하다보니 대표선수도 공개 테스트로 뽑는다. 어쩌다 대표선수로 발탁되더라도 중도에 포기하는 일이 자주 벌어진다. 당연히 태극마크를 달게 된 사연도 제각각이다.

주장 서미지(23·삼육대)는 “선발전에 대신 나가보라”는 학교 선배의 권유를 받아들였다가 덜컥(?) 합격했다. 부주장 김동리(22·원광대)는 휴학을 반복하다 현재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여간 고된 생활이 아닐 수 없다. 모교 남자럭비팀 감독의 추천으로 테스트를 받은 결과다. 까무잡잡하고 서구적인 외모 덕분에 외국인으로 종종 오해받는 최민정(23·성신여대)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이채로운 경력의 럭비동호회 회원 출신이다.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최예슬(23·취업준비생)은 대학(체육전공) 졸업 후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일단 럭비에 매진하고 있다.

그래도 푸릇푸릇한 20대 초반의 그녀들은 활짝 웃는다. 돈벌이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어도 그냥 럭비가 좋기에, 향긋한 향수가 아닌 서로의 시큼한 땀내를 맡으며 열심히 뛴다. 유니폼조차 남자선수들에게 지급되고 남은 재고품이고, 훈련장이 없어 5개월여에 걸친 소집훈련 기간 중 5개 도시(수원·경산·강진·영천·청도)를 누볐어도 스스로가 부끄러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호된 훈련에 온 몸이 쿡쿡 쑤시고, 멍과 핏자국이 사라지지 않지만 외모 걱정 대신 “제대로 운동했다”는 생각에 희열부터 느낀다. 천상 국가대표다.

혹독한 훈련을 통해 키운 것은 마음뿐이 아니다. 실력도 자랐다. 특히 일본여자실업팀과 함께한 5일간의 전남 강진 합동훈련에서 희망을 품게 됐다. “남자 중학생들이 아닌, 여자선수들끼리 직접 몸을 부딪혀본 건 그 때가 처음이다. 여자럭비의 분위기를 알 수 있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번 아시안게임 예선 A조에 편성된 한국여자럭비는 일본-중국-싱가포르-우즈베키스탄과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3일간 열전을 펼치는데, A·B조 1∼2위는 준결승, 나머지는 순위 결정전으로 향한다. 전패를 기록했던 광저우대회와 달리 안방에선 1승을 노리고 있다.

국제 경험도 쌓였다. 2011년 인도, 2013년 태국 세븐스 대회에서 라오스를 내리 꺾으면서 자신감을 갖게 됐다. 향상된 팀워크, 기량과 함께 용환명(43·대한럭비협회) 감독의 통 큰 약속도 한 몫 했다. 싱가포르를 이기면 ‘금연’, 일본을 누르면 ‘금주’다. “선생님 건강을 위해서라도 꼭 이기겠다”는 게 어여쁜 제자들의 각오다. “1승은 무조건이다. 한국여자의 위대함을, 여자럭비의 가능성을 입증하고 싶다”는 ‘1세대’ 럭비 태극낭자들의 당당한 외침이 현실이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인천|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yoshike3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