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리그 엿보기] 새끼손가락 모양·위치가 ‘블로킹 방향’ 결정한다

입력 2014-12-16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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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화재 레오. 스포츠동아DB

■ 블로킹의 모든 것

점프 타이밍·손 모양·손목에 따라 성패
공을 감싸안는 손 모양 만드는 것이 중요

현대캐피탈, 블로킹 살아나니 성적도↑
한국전력도 베테랑 센터 제역할 상위권

어느 배구인은 블로킹을 ‘손가락 한마디의 전쟁’이라고 했다.

“블로커의 손 위로 지나가는 공격은 막을 수 없다. 삼성화재의 레오가 무서운 이유다. 손가락 끝에 걸려도 대부분은 코트 밖으로 튕겨 나간다. 수비하는 팀으로서는 가장 대책이 없다. 대신 손바닥은 블로커의 영역이다. 블로킹 때 점프 타이밍과 손 모양, 손목을 집어넣는 순간에 따라 잡아낼 수 있다. 그래서 손가락의 전쟁이다”라고 했다.


● 블로킹에 따라 팀 성적이 움직이던 현대캐피탈과 OK저축은행

이번 시즌 현대캐피탈이 초반 부진을 거듭했던 이유도, 잘 나가던 OK저축은행이 주춤했던 이유도 블로킹 때문이었다.

현대캐피탈은 팀의 자랑이었던 ‘높이의 팀, 블로킹의 팀’이라는 팀 색깔이 있었다. 10시즌동안 세트 평균 3.067개의 블로킹을 했다. 어느 팀도 따라오지 못하는 수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색이 바랬다. 아가메즈가 부상으로 부진하던 때였다. 다행히 케빈으로 교체한 뒤로 블로킹이 다시 살아났다. 11월27일 케빈의 V리그 데뷔전 이후 팀이 3승1패의 호성적을 거둔 것도 블로킹 상승세와 연관이 크다. 아가메즈 이전과 비교하면 팀 블로킹 득점 비율이 56%나 늘었다. 2라운드 첫 경기인 11월12일 우리카드전(3-1 승)에서 12개의 블로킹을 기록한 뒤 이후 3경기에서 4∼4∼5개의 팀 블로킹을 했다. 케빈이 등장한 4경기에서는 팀 블로킹이 12∼12∼12∼17개로 꾸준히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있다.

OK저축은행은 반대였다. 세계최고의 미들블로커를 보유했지만 시몬은 자신의 자리가 아닌 라이트에서 뛴다. 결국 김규민과 한상길이 중앙을 책임져야 하는데 여기서 높이의 약점이 드러났다. 상대 공격을 잘 막아내지 못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김세진 감독은 신장 198cm의 루키 박원빈을 긴급 투입하며 대책마련에 나섰다.


● 기대하지 않았던 부상병의 귀환에 힘이 난 팀들

대한항공의 김종민 감독은 지난 시즌 뒤 진상헌이 군에 입대하자 센터진 보강에 심혈을 기울였다. 오랜 동안 공백이 있었던 김형우가 살아나 희망을 가졌지만 1라운드 첫 경기만을 치른 뒤 다시 부상으로 이탈하자 한 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LIG손해보험에서 설자리가 없던 김철홍을 데려왔는데 여기서 대박이 났다. 높이는 낮아도 베테랑의 관록으로 정확한 타이밍에서 상대 블로킹을 잡아내면서 버텨내고 있다. 대한항공은 블로킹 순위에서 꼴찌다. 129개를 성공시켰고 세트 평균은 2.150개다.

한국전력은 날개 공격수로 쥬리치∼전광인∼서재덕의 ‘쥬광덕’트리오를 보유해 다른 팀의 부러움을 받지만 정작 신영철 감독을 기쁘게 한 것은 안정된 센터진이다. 후인정∼방신봉∼하경민 등 나이 합계 111세인 베테랑 센터들이 블로킹과 속공에서 아직까지는 제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 시즌이 뒤로 갈수록 체력부담을 걱정했지만 최근 최석기가 혜성처럼 등장해 한시름 놨다. 최석기는 3일 OK저축은행전에서 무려 8개의 블로킹을 했다. 시몬을 상대로만 7개를 기록했다. 3년간 부상과 힘든 재활로 한때 배구를 포기할 뻔했던 사연까지 겹쳐 인간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8일 현대캐피탈과의 풀세트 접전 때도 5세트 중요한 블로킹 하나로 팀에 승점 2를 안겼다.


● 모두들 라이트를 걱정하지만 운명은 센터와 블로킹에 달린 삼성화재

삼성화재도 박철우가 떠난 이후 라이트의 공백을 메우느라 정신이 없지만 사실 승리의 키는 이선규와 지태환이 쥐고 있다. 이들이 속공과 블로킹으로 두 자릿수 득점을 해주는 날은 쉽게 이겼다. 어차피 레오에게 가는 공격의 비중은 높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가운데가 중심을 잡고 속공으로 상대의 블로킹을 따돌려주느냐가 중요했다. 유효블로킹으로 상대의 공격을 1차로 막아주기만 한다면 장기인 2단 연결을 통해 레오의 확률 높은 득점으로 반격한다는 것이 삼성화재 배구의 기본전략이다. 그래서 블로킹과 센터가 중요하다.

15일 현재 V리그 남자부의 블로킹 순위를 보면 LIG손해보험이 1위다. 150개로 횟수도 1위, 세트평균도 2.727개로 1위다. 블로킹을 잘 하고도 하위권에 처진 것이 아이러니 하지만 스포츠는 하나의 수치가 모든 것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블로킹 2위는 한국전력. 144개를 성공시켰고 세트평균 2.618개다. 이어 현대캐피탈∼삼성화재 순이다. 배구 이론가인 한국전력 신영철 감독은 “블로킹은 높이도 중요하지만 손 모양과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어떤 손 모양을 말하느냐고 묻자 “공을 감싸 안는 것처럼 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새끼손가락이다. 그 모양과 위치에 따라 공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했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kimjongk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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