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섭. 사진제공|KIA타이거즈
반성이나 기대가 담긴 ‘백지위임’과 달라
올해 은퇴까지 고려…마지막 기회 ‘절박’
“유니폼 다시 입는 것에 만족” 운동 전념
백지위임 아닌 백지 계약서에 먼저 한 사인.
2015시즌 부활에 도전하고 있는 KIA 최희섭(35)이 15일 내년 연봉 계약을 마쳤다. 사인까지 걸린 시간은 단 몇 분, 담당자와 인사를 나눈 것을 제외하면 수초에 불과했다. 연봉 계약을 마쳤지만 금액은 아직 모른다. 프로야구 선수 중 가장 신기한 계약이다. 그러나 깊은 뜻이 담겨진 사인이었다.
최희섭은 “사실 올해 중반 은퇴하려고 했다. 그러나 김기태 감독께서 마무리 훈련 기회를 주셨고 구단도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자’고 힘을 줬다. 부상으로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는데 모두 믿음을 줬다. 유니폼을 다시 입는 것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며 “연봉 협상하는 자리에서 빈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실무자께 드렸다. 마음이 후련하다”고 말했다.
프로야구에서 선수가 먼저 구단에 연봉을 백지위임하는 사례는 종종 있다. 볼티모어 마이너리그 팀에 있는 윤석민도 KIA에서 뛰었던 2010년, 경기에 패한 분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라커를 내리치다 골절 부상을 당했고 시즌 종료 후 연봉을 백지위임했다. 사죄의 뜻이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롯데 강민호는 2013년 1월, 프리에이전트(FA)자격 획득을 한 시즌 앞두고 구단에 연봉을 백지위임했다. 2013시즌 두산 야수 연봉고과 1위 김현수도 “알아서 주십시오”라며 맡겼다. 신뢰와 기대가 담긴 통 큰 결정이었다. 최희섭은 2012시즌을 앞두고도 성적 부진 등에 책임을 지고 연봉을 백지위임한 적이 있다. 4억원이었던 연봉은 1억7000만원으로 반 토막 났다.
이번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반성 혹은 기대가 아닌 마지막 기회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선택이다.
최희섭은 “앞으로 야구를 얼마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모든 것이 편안하고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한 경기 한 경기, 매 순간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며 뛰겠다”고 말했다.
일본 미야자키에서 마무리 훈련을 정상적으로 소화한 최희섭은 타격기술훈련까지 마쳤다. 최근에는 배드민턴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스프링캠프를 위한 개인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최희섭은 한국인 최초 메이저리그 야수였고 리그 정상급 연봉을 받는 선수였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많이 것이 바뀌었다. 그동안은 여러 어려움 속에서 갈등과 고심이 컸지만 모든 것을 잊고 야구와 운동에만 전념하고 있다.
KIA는 조만간 최희섭의 연봉을 결정해 계약서 빈 칸을 채울 예정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ushl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