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아이 러브 스테이지] 우리말로 듣는 “오겡키데스카” 또다른 감동

입력 2014-12-18 06: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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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부부, 연인이 함께 보면 딱 좋은 뮤지컬 러브레터. 국내 개봉돼 영화 팬들의 가슴을 감동으로 적셨던 동명의 일본영화를 뮤지컬로 만들었다. 죽은 연인을 잊지 못하는 히로코(오른쪽·김지현 분)와 히로코를 사랑하는 아키바(박호산 분). 사진제공|PAC코리아

■ 뮤지컬 ‘러브레터’

동명의 일본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무비컬’
현재와 과거 오가는 빠른 전개…흥미진진
변정주 연출, 시공간 분할로 무대 한계 극복


“오겡키데스카∼!”

뮤지컬 러브레터는 동명의 일본영화를 뮤지컬로 만든 ‘무비컬’이다. 무비컬은 양날의 칼과 같다. 히트친 영화의 명성을 바닥에 깔고 있으니 흥행이 절로 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오히려 영화의 잔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관객에게 “영화만 못 하네”라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영화 덕에 홍보가 수월하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역시 “다 아는 내용인데 또 봐야 하나”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와이 괴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는 1999년에 개봉했다. 국내에서 개봉된 일본영화 중에서는 처음으로 140만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다. 후지이 이츠키 역을 맡은 여배우 나카야마 미호가 설원에서 얼굴을 하늘로 향한 채 “오겡키데스카∼!”하고 외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요즘도 이 장면을 패러디한 TV 광고가 방영되고 있을 정도니 명장면은 명장면인 모양이다.

영화를 압축해 무대로 고스란히 옮겨놓았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다면 뮤지컬 러브레터는 당신의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스크린과 무대는 엄연히 다른 장소다. 무엇보다 변정주 연출가가 그리 호락호락, 설렁설렁 작품을 만들 사람이 아니다.

일단 전개가 빠르다.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속도가 빠르고 잦아 방심하다가는 흐름을 놓칠지 모른다.

1막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2막에 터지는 두 방의 ‘감성펀치’는 관객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눈이 날려 푹푹 쌓인 밤. 구급차가 오기 힘들다는 연락을 받은 할아버지는 열이 펄펄 끓는 손녀 후지이 이츠키를 업고 병원에 가겠다고 하지만 “언제 걸어서 가겠느냐. 죽은 애 아빠처럼 만들 수 없다”며 며느리가 막아선다. 이때 비장한 얼굴을 한 할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말한다. “걸어가지 않는다. 뛸 거다.”

예의 ‘오겡키데스카’의 명장면도 대단하다.

영화와 달리 무대에서는 얼굴 클로즈업이 불가능하다. 변정주 연출은 시공간의 분할로 무대의 한계를 극복해 보인다. “잘 지내고 있나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가 몇 번이고 어두운 무대에 메아리칠 때, 객석 곳곳에서는 숨죽여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인적으로 원작의 ‘오겡키데스카’를 어떻게 우리말로 옮겨 놓았을 지가 궁금했다. ‘건강하십니까(이건 물론 아니라고 생각했다)’, ‘잘 지내십니까’, ‘안녕하신가요’, ‘밥은 먹고 다니나요(물론 이것도 무리다)’ 등등을 생각해 보았는데, 무대에서는 결국 ‘잘 지내고 있나요’를 들을 수 있었다.

추운 겨울날, 조개탄을 땐 난로 앞에서 옛날 편지를 한 장씩 꺼내보는 듯한 뮤지컬이다. 그때 그 사람은 ‘오겡키데스카’. 저는 이렇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만.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ranbi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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