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굴 대신하던 예전의 김다원 아니다”

입력 2015-04-16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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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김다원은 2008년 한화 육성선수 신분으로 가까스로 프로에 입문했지만, 올 시즌 초반 꽃을 피우며 인생역전에 성공하고 있다. 김다원은 “다치지 않고 계속 야구를 잘하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육성선수서 주축선수 된 KIA 김다원

한화→KIA 트레이드·경찰청 입대 전환점
올시즌 초반 3할중반대 화끈한 타격 자랑
“절실한 마음으로 매경기 독기 품고 나선다”

KIA 김다원(30)은 올 시즌 새로운 야구인생을 열고 있다. 한화 육성선수에서 KIA의 주축 타자가 되기까지 먼 길을 돌아왔지만, 야구만 알고 묵묵히 걸어온 세월을 그라운드에서 보상받고 있다. 이제는 ‘누구의 대신’이 아닌 자신의 이름 석자로 뛰고 싶다는 그를 만났다.


● 육성선수 등록 후 트레이드

김다원은 성균관대를 졸업하고 2008년 한화 육성선수로 프로에 입단했다. 2010년 6월 꿈에 그리던 1군 무대를 밟았지만, 곧바로 3대3 트레이드 명단(KIA 장성호·이동현·김경언↔한화 안영명·박성호·김다원)에 이름을 올려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KIA는 김다원의 장타력과 빠른 발을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는 어찌 보면 기회였다. 스스로도 트레이드가 야구인생의 전환점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2010년 45경기에서 타율 0.143, 2홈런, 2타점이라는 저조한 성적에 그쳤다. 2011년에는 개막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고도 9경기에 나간 것이 전부였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차에 군 입대를 결심했다.

김다원 경찰청에서 조금씩 잠재력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경기에 계속 나가다보니 성적이 났고, 자신감을 갖게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2014년 KIA로 복귀하면서 예전의 김다원은 잊었다. 가장 큰 무기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는 “이전까지는 경기에 나가면 위축됐다. 트레이드된 것도 육성선수로 있다가 1군 등록된 지 며칠 만에 이뤄진 일이었다. 2군에서만 뛰다가 1군 무대에서 뛰려니 힘들었다”고 말했지만, “경찰청을 다녀오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그게 가장 크게 달라진 부분이다”고 밝혔다.


● 누구의 대신이 아닌 김다원으로!

김다원은 “올해는 누구 대신이 아니라 예전보다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부상을 당한 신종길, 김원섭의 ‘대신’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으로 당당히 경기에 나서겠다는 일종의 각오이기도 했다.

물론 쉽다면 거짓말이다. 김다원은 3∼5일 kt와의 수원 3연전에서 10타수 6안타로 활약하다가 7∼9일 홈구장에서 만난 NC 투수들에게 무안타로 고전했다. 곧바로 삼성(10∼12일)을 상대로 11타수 5안타를 치면서 살아났지만, ‘혹시 시즌 초반 반짝하는 게 아닐까’, ‘이대로 슬럼프가 길어질까’ 등 맘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김다원은 “슬럼프를 탈출하는 특별한 방법은 없다. 절실한 마음뿐”이라며 “스프링캠프에서도 이번에 기회를 못 잡으면 언제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독기를 품고 노력했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그렇게 흘린 땀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시즌 초반 KIA 타자들 가운데 가장 페이스가 좋다. 그는 “(김기태) 감독님의 조언에 따라 다운스윙으로 바꾸면서 좋은 성적이 나고 있다”며 “앞으로도 다치지 않고 계속 야구를 잘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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