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여행⑥] 동병상련 식민지의 아픔 간직한 포트 산티아고 투어

입력 2015-05-05 21: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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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안의 작은 스페인, 인트라무로스의 이국적인 풍경과 유럽풍 건물 양식을 즐기고 나면 이들이 겪은 식민지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유적지가 나온다. 인트라무로스의 끝자락에 있는 포트 산티아고가 바로 그런 장소다.

포트 산티아고는 스페인에서 필리핀으로 이주해 온 식민 통치 세력들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된 거대한 요새다. 이 요새는 지금에야 공원이 돼 마닐라 시민들의 안식처가 되었지만 벽 곳곳에 포탄의 흔적이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이 요새는 1571년에 처음 착공돼 필리핀인들의 강제 노역으로 인해 150여년만에 세워졌다. 이 요새를 중심으로 지금은 카사 마닐라 박물관이 된 스페인 귀족들의 저택과 성 아구스틴 대성당과 마닐라 대성당이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마닐라를 지키는 군사적 요충지였던만큼 다소 살벌한 일화도 남아있다. 포트 산티아고의 지하 감옥에 죄인을 가두면 밀물이 밀려와 하룻밤 사이에 이들이 모두 익사하고 썰물에 의해 다시 쓸려나가 시체들이 바다로 떠내려 갔다는 것. 즉, 포트 산티아고 지하 감옥에 갇힌다면 절대 살아나올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잔혹한 식민지의 상징인 포트 산티아고지만 현재 이 곳은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항거한 호세 리잘의 기념관이 마련돼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호세 리잘은 스페인 마드리드 대학에서 의학을 배운 인물로 필리핀 민중의 독립의식을 고취시켰다. 또한 필리핀 내 또다른 독립운동 노선인 무장투쟁과 달리 비폭력 노선을 택해 필리핀 시민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포트 산티아고 내 마련된 호세 리잘 기념관에는 그가 생전에 사용됐던 수술 도구는 물론 그의 필체가 적힌 편지들과 생전의 행적들을 볼 수 있다. 필리핀을 단순한 관광지로 즐기는 것이 아닌 이들의 문화와 사상을 엿보고자 하는 여행객들에겐 필수 코스다.

그러나 가장 인상 깊은 곳은 포트 산티아고의 성벽을 따라 걷는 코스다. 눈에 선명한 포탄의 흔적은 물론 이 요새 한 켠에 마련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즐기는 이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독특한 대조가 여행객들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불러 일으킬 것이다.

포트 산티아고를 둘러본 후 다시 인트라무로스의 거리에 안기면 처음에는 눈이 휘둥그래지던 광경들이 새롭게 보인다. 예쁘기만한 건물들도 이 나라를 식민지배하던 스페인 사람들의 저택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리고 스페인에 이어 일본, 미국 등 격변하는 시대 속에 줄곧 피해자의 입장에서 살았던 필리핀 사람들의 애환이 그제서야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인트라무로스 관광을 마치고 나면 이제 진짜 마닐라의 모습을 만나야 할 때다. 바쁜 일상을 보낸 후 마닐라 시민들이 모이는 곳은 결국 바다의 품이다.

인트라무로스에서 택시로 30분 정도 걸리는 마닐라 베이는 다양한 시민들과 노점상들이 즐비한 곳이다. 이 곳에서 연인들은 서로에게 기대어 사랑을 속삭이고 누군가는 생활을 위해 관광객들의 발 마사지를 해주기도 한다.

다소 긴 산책로지만 저녁 시간대 마닐라 베이의 노을은 절경이다. 바다에서 부는 바람을 맞으며 노을 하나로 여행객과 마닐라 시민 모두가 하나가 되고 만족감을 느끼는 경험은 특별하다. 인트라무로스의 웅장한 대성당도 포트 산티아고 내 포탄의 흔적도 마닐라 베이의 넓은 바다와 노을의 콜라보레이션으로 만들어 낸 풍경은 이기지 못한다.

비록 마닐라의 치안이 국내보다 위험하다지만 각별한 주의만 기울인다면 마닐라 베이를 만나는 시간은 초저녁이 제일 적당하다. 여행 기간 동안 마닐라의 교통 체증에 진절머리가 났다면 반드시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마닐라 베이로 정하기를 추천한다.

동아닷컴 곽현수 기자 abro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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