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스포츠동아DB
12일 대한야구협회(KBA) 제22대 수장으로 선출된 박상희(64) 신임 회장은 당선 인사말을 하는 자리에서 정치판에서나 쓰는 ‘패거리’라는 단어를 수차례 내던져 파문을 일으켰다. 19표 중 과반수를 겨우 넘은 10표를 얻어 회장에 당선된 그다.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9명을 ‘패거리’로 본다면, 자신을 지지한 10명도 또 다른 ‘패거리’라는 뜻일까.
우리가 스포츠를 즐기는 것은 규칙에 따라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승부가 나면 승자는 패자를 격려하고,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다. 한동안 정치에 깊숙이 몸담아 ‘여당’ 아니면 ‘야당’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 있는지, 야구계의 통합을 위해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수장에 당선되자마자 편 가르기부터 하고 있으니 많은 야구인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또 하나 걱정스러운 것은 한국야구위원회(KBO)를 적대시하는, 현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상황인식이다. 그는 “KBO가 대단한 단체는 아니다. 우리가 꿀릴 것 없다. KBO가 엄청나게 지원해주지도 않는다. KBO는 지금 3억원만 지원하고 있다. 이 돈도 모두 심판비용으로 나간다. 앞으로 KBO와 KBA는 통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KBO와 KBA는 야구발전이라는 같은 목표를 추구하지만, 프로와 아마추어라는 전혀 다른 목적지를 향해 다른 배를 타고 있다. 무엇을 어떻게 통합하겠다는 뜻일까. 상생하고 협력해야 할 KBO와 대립각을 세우고 적대시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정몽윤 회장을 몰아낸 뒤 사고단체로 전락한 KBA가 산소호흡기를 꽂고 연명할 때 KBO가 지원하지 않았으면 생존마저 불가능했다. 재무제표상에서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금액이 3억원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동안 KBO가 지원해온 금액과 노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듯하다.
KBO는 2012년부터 KBOP 수익금의 10%와 포스트시즌 이익금의 15%, 그리고 NC와 kt 구단의 야구발전기금으로 아마팀 창단 지원을 위한 재원을 마련한 뒤 약 35억원을 지원해왔다. 또 전국 고교팀에 지도자 인건비 명목으로 21억2000만원을 지원하는 등 현재까지 총 56억2000만원을 지원했다. 또 프로야구선수 출신 육성위원들을 전국 초·중·고팀에 순회코치로 파견해오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 3년간 총 33개교에서 새롭게 야구팀을 창단했다. 그동안 KBA가 응당 해야 할 일을 KBO가 해온 것이다. 당장 KBO가 지원금을 끊는다면 KBA가 살아갈 수 있을까.
2013년 2월 국회부의장이던 이병석 전임 회장이 KBA 수장으로 부임한 뒤 박 신임 회장은 KBA 부회장을 맡았지만, 그동안 크고 작은 야구행사에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아마야구계의 아픔과 문제점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이나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KBA 회장은 봉사하는 자리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다. 자신의 스펙을 쌓는 도구가 돼선 안 된다. 정치판에서 배운 편 가르기부터 시도할 것이 아니라 1만1000명의 학생야구선수들과 학부모들의 고민과 아픔, 그리고 아마야구가 나아갈 방향부터 깊이 모색하기를 바란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