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원 시프트’의 시작이었던 바로 그 순간. 1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벌어진 kt-KIA전 9회초 2사 2·3루 kt 김상현 타석 때 KIA 김기태 감독(오른쪽)이 3루수 이범호에게 포수 뒤쪽으로 수비 위치를 옮기라고 지시하고 있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경기장 안에선 순간 판단하기 쉽지 않아”
1990년엔 이닝교대 시간 담배 핀 선수도
좌익수 빈자리 심판도 모른채 경기 진행
13일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서 나왔던 ‘4차원 시프트’의 프롤로그일 수 있겠다. 이날 해프닝을 보면서 가장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람들은 심판이다. KIA 김기태 감독의 ‘창의적’ 생각이 현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아서였다. 문승훈 3루심이 즉각 문제점을 지적해 인플레이되지 않았다. 어느 심판은 “크게 망신당할 뻔했다”며 “만일 그렇게 했으면 크리켓이다.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쉽게 보일지 몰라도, 그라운드 안에 있으면 순간적 상황에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문 3루심이 적시에 올바른 판단을 내렸던 배경도 있었다. 도상훈 KBO 심판위원장이 후배 심판들에게 들려준 해프닝들 중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그 말을 잘 기억하고 있던 심판들이 유사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도 위원장이 후배들에게 구전처럼 전해준 해프닝은 2군 경기가 처음 벌어졌던 1990년 목동구장의 삼성-LG전이었다. LG 김동수 2군 감독의 사촌으로 알려진 김성일이 주인공이다. 당시 LG 좌익수로 출전했던 김성일은 이닝교대시간에 그라운드 밖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담배를 피웠다. 아직 자기 팀 공격이 한참 남아 있었기에 담배 한대는 필 여유가 있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공격은 예상외로 일찍 끝났다.
LG 선수들이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에 들어갔지만 좌익수 자리만 비었다. 그 누구도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 같은 팀 동료들은 물론 벤치의 고 박현식 감독과 코칭스태프도 김성일이 좌익수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상대팀 선수들과 심판진까지도 좌익수 자리가 비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경기가 진행됐다.
‘야구공에는 눈이 달려서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간다’는 말이 있다. 하필이면 이닝 선두타자로 나온 삼성 선수가 친 타구가 3루수를 넘어 그 빈곳으로 향했다. 그때서야 김성일이 없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았다. 박 감독이 즉시 “수비수가 안 나왔는데 경기가 벌어졌기 때문에 노플레이 상황”이라고 어필했다. “안타는 인정되더라도 2루타는 억울하다”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야구규칙 4.03항 ‘경기 시작 때 또는 경기 중 볼 인플레이가 될 때 포수를 제외한 모든 야수는 페어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룰에 어긋난 채 페어지역에 수비수 7명(포수 제외)만 있는 가운데 이미 경기는 속개됐다. 김성일은 프로 3년간 1군 162경기에 출전해 210타수 36안타(타율 0.171) 1홈런 9타점만을 기록한 채 유니폼을 벗었다.
그 해프닝 때문에 해당 경기의 심판진 전원은 징계를 받았다. 당시 도 위원장은 2군 책임자였다. 그 누구보다 이 해프닝을 잘 아는 도 위원장은 심판들에게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교훈으로 이 해프닝을 얘기해줬다. “플레이볼을 선언하기 전에 항상 레프트 폴에서 라이트 폴까지 수비수가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문승훈 심판도 그 얘기를 귀담아 들었기에 비슷한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역시 야구는 실패를 통해 뭔가를 배운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