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리의 여기는 칸] 영화 ‘마돈나’ 신수원 감독을 만나다

입력 2015-05-20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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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 받은 신수원 감독이 칸 해변에서 카메라 앞에 섰다. 2012년 ‘순환선’부터 ‘명왕성’ 등 전작도 모두 칸을 비롯한 유럽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됐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 ‘루저’를 사랑한 영화감독 (실직한 중년 남성 ‘순환선’ / 입시 지옥 갇힌 학생 ‘명왕성’ / 의식불명 여인 ‘마돈나’)

칸·베를린 영화제 수상 주목받는 연출자
소설 쓰려고 10년 교직 접고 한예종 입학

‘마돈나’ 서영희에게 “살 빼 달라” 주문
“배우들에게 공짜 없다 해보자 꼬드겼다”


적어도 ‘현재’ 기준으로만 본다면 신수원(48) 감독은 칸부터 베를린까지 손꼽히는 영화제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여성연출자다. 특히 유럽의 두터운 신뢰를 증명하듯 영화 ‘마돈나’(제작 준필름)로 제68회 칸 국제영화제(주목할 만한 시선)에 다시 왔다.

18일(한국시간) 신수원 감독은 “이 곳에선 내 영화를 ‘스트롱하다’고 평가한다”고 말했다. 2012년 ‘순환선’으로 칸에서 카날 플뤼스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명왕성’으로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수정곰상을 받은 원동력은 그 ‘강함’에서 나온다.

그는 10년 동안 서울 구로구의 한 중학교에서 사회 과목을 가르치던 교사였다. 24살에 시작해 34살에 되던 해 휴직했다. “학교도 직장이다보니 권태기가 왔다”고 했다. “차마 사표는 못 내고 불순한 의도로 휴직만 했다”는 그는 소설이 쓰고 싶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단편영화를 촬영하는데 와! 정말 재미있었다. 안되겠다, 결정하자, 싶어 사표를 냈다. 돌아보면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일은 매혹적이다. 하하!”

10년간 만난 학생은 어림잡아 3000명. “감독으로 늦게 출발했지만 교사로 일한 10년은 사라진 시간은 아니다”고 했다.

“늘 잠재의식 속에 있다. 루저의 세계에 계속 관심을 갖는 이유도 그 덕분이다. 그때만 해도 구로동, 고척동 일대가 공단이었다. 아이들의 상황도 좋지 않았다. 나 역시 어린 시절 가난하게 자랐다. 그래서인지 루저에 관심이 더 간다.”

감독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고도 정작 첫 번째 영화 ‘레인보우’를 내놓기까지 10년이 더 걸렸다. 신 감독은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없는 일은 아니라고 믿었다”고 했다.

실직한 중년 남성이 주인공인 ‘순환선’, 입시 지옥에 갇힌 학생에 주목한 ‘명왕성’에 이어 이번 ‘마돈나’에서도 그는 비슷한 시선을 유지한다. 의식불명에 빠진 한 여인의 과거를 추적하는 이야기 ‘마돈나’를 통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저 한 귀퉁이에 놓인 사람에 공감하길 바란다”며 “주인공이 왜 세상 밖으로 내팽개쳐졌을까, 한 번쯤 돌아봤으면 한다”고 신 감독은 말했다.

‘마돈나’는 제작비 4억원의 영화다. 예산 탓에 마음껏 촬영도 못했다. 배우 캐스팅 과정도 간단치 않았다. 성녀와 창녀를 뜻하는 중의적 의미가 담긴 ‘마돈나’에는 서영희와 신인 권소현이 주연으로 참여했다. 이들에게 신 감독은 ‘극단적’일 수도 있는 주문을 거침없이 했다. 피폐한 이미지이길 바랐던 서영희에게는 “뼈만 남을 정도로 살을 빼 달라”고 했다. 어깨와 등을 덮고 있던 긴 머리카락도 짧게 자르라고 요구했다.

권소현은 ‘발굴’부터 쉽지 않았다. 폭식증에 시달리는 인물 설정상 체구 있는 여배우를 원했고 그에 부합하는 인물을 찾기 위해 신 감독은 단편영화를 섭렵했다. 그렇게 찾아낸 ‘통통한’ 권소현에게 “3kg를 더 찌워 달라”고 했다. 그동안 뮤지컬 무대에만 섰던 권소현은 결국 데뷔작으로 칸 국제영화제로 직행한 행운의 주인공이 됐다.

“배우들에게도 공짜로 얻어지는 건 없다고 했다. 해보자고, 잘 꼬드겼다.(웃음) 한국에도 이렇게 다양한 모습의 배우들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칸(프랑스)|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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