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괜찮은 여자’ 호란이 들려주는 ‘괜찮은 음악들’

입력 2015-06-08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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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란, 사진|플럭서스뮤직

호란이 매력적인 여성 싱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람맏 느끼는 매력의포인트는 제각각 이겠지만 기자의 경우에는 이 세상 것이 아닌 것 같은 몽환적이고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좋아한다.

세련된 듯 서정적이고, 차가운 듯 따뜻하고, 쓸쓸한 듯 유쾌한 그녀의 독특한 음악 분위기는 클래지콰이와는 또 다른 세계로, 마치 SF와 판타지가 혼재된 기묘한 영화를 보는 느낌을 주곤 한다.

최근 호란이 발표한 ‘괜찮은 여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몽환적인 호란의 목소리로 세련된 프렌치 팝음악을 들려주는 듯 싶더니 서정적인 어쿠스틱이 흘러나오고, 펑크와 일렉트로닉이 이어진다. 언뜻 언밸런스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이들은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이번 앨범에 대해 호란은 “클래지콰이와 다른 식으로 만들려고 일부러 노력한건 아니고, 내가 클래지콰이가 아니기 때문에 클래지콰이와 다른 음악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며 “어쿠스틱 작법에 일렉트로닉 편곡을 더한 음악들에 흥미를 갖고 있었고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작업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마음이 잘 맞는 친구이자 프로듀서를 만났고,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취향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을 1년 가까이 가졌다. 서로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얘기할 수 있었던 시간이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모든 수록곡을 정하고 곡이 다 나온 상태에서 녹음을 시작해 막상 앨범을 제작하는 데는 거의 한 달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그렇게 긴 가치관과 취향의 공유를 통해 나온 ‘괜찮은 여자’의 타이틀곡 ‘괜찮은 여자’는 호란에 따르면 일명 ‘뽕짝’이라고도 불리는 트로트 장르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다.

호란은 “작곡자가 아까 말한 지쿠라는 친구인데, 시작은 그 친구에게 뽕짝을 써달라고 했다. 그 친구도 굉장히 오래 음악을 했고, 밴드와 어쿠스틱 음악을 해왔는데 트로트 장르를 만들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 궁금해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한 말이었다”며 “그렇게 만들어온 곡이 ‘괜찮은 여자’였는데 어떻게 들으면 7~80년대 프렌치 팝 느낌도 있고, 어떻게 들으면 트로트 느낌도 있었다. 그러면서 떠오른 이미지가 뻔뻔하게 ‘난 괜찮아’ 하면서 걸어가는 여자의 모습이었고, 그러면서 지은 제목인 ‘괜찮은 여자’도 트로트 같은 느낌이 있고, 그렇게 만들어졌다”라고 곡의 탄생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혔다.

더불어 호란은 “가끔 사람들이 ‘괜찮은 여자’라는 제목을 듣고 ‘트로트 노래 제목 같다’라고 말하면서도 곧 ‘아니다’라면서 미안해하는데, 왜 미안해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너스레를 떨어 웃음을 자아냈다.

이와 같은 앨범의 기발하고 환상적인 분위기는 가사에서 방점을 찍는다. ‘괜찮은 여자’의 수록곡 6곡에 실린 가사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철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중 타이틀곡 ‘괜찮은 여자’의 경우 뮤직비디오 내용 등으로 SNS로 인한 이중적인 모습을 비판한 내용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지만 정작 호란은 “나는 SNS에 대한 이야기를 의도하고 쓴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과거부터 꾸준히 SNS를 소통의 수단으로 이용해 왔던 호란은 “SNS도 하나의 소통하는 도구이다. 사람들이 서로가 그리워서 만들어낸 시스템이 SNS인데, 이것을 ‘사회적 해악이고 현실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 보는 건 아니라고 본다. 그냥 또 하나의 채널이 만들어졌다고 받아들이면 된다. 나는 SNS에 대한 시선이 싫고, SNS에 있는 관계도 인간관계이다. (‘괜찮은 여자’가)SNS를 비판하는 식으로 읽힌다면, 그건 내가 원하는 바는 아니다”

이어 “물론 ‘괜찮은 여자’에 대한 스토리 라인과 주제는 확실히 있다. 하지만 듣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굉장히 다양하게 있더라. 이별을 하고 괜찮은 척 담담하게 하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하거나 우리 시대 정말 괜찮은 여자에 대한 찬사라라고 해석하는 것도 봤다. 나는 이런 여러 가지 해석과 이야기들을 맞다 틀리다 정정하고 싶지 않다. 내가 ‘이건 이런 내용으로 썼어요’라고 하는 순간 그 노래는 정말로 딱 그 이야기 밖에 안 된다. 노래를 들을 때 굳이 그렇게 들을 필요가 있나 싶다”라고 ‘열린 결말’로 남아있기를 바랐다.

호란, 사진|플럭서스뮤직


‘괜찮은 여자’가 열린 결말의 드라마라면 두 번째 트랙 ‘연예인’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은 느낌이다.

‘연예인’을 두고 이번 앨범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래전에 만들어 놓은 곡이라고 밝힌 호란은 “원래 제목은 요정이라는 뜻의 ‘픽시’였고, 가사도 영어였다. 가사 내용은 통조림 안에 담겨 마트에 진열된 요정의 이야기로, ‘나 가격이 얼마에요? 살만 해요? 아직 내가 날아다니던 공기의 향이 기억나는데, 혹시 나중에 나같은 존재를 보면 인사라도 해주세요’라고 듣는 이에게 말하는 이야기이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남에게)비춰지는 존재로서 나와 캐릭터로서 호란의 괴리가 일어나는 걸 느끼면서 겪은 감정을 쓴 가사였다. 원래 내용은 약간 동화적으로 들릴 수 있는데, 남들에게 완전히 대상화가 되는 존재에 대해 우화적으로 쓴 거였다. 나중에 한글로 가사를 다시 쓸 때는 이를 그대로 가져오기 힘들 것 같아, 제목은 ‘픽시’로 그대로 두고 그냥 들었을 땐 약간 짝사랑하는 여자의 이야기처럼 쓰자고 해서 지금의 가사가 나왔다”라고 애초에 ‘연예인’을 드러내려 했던 것은 아니었음을 밝혔다.

하지만 ‘픽시’가 ‘연예인’이 된 이유는 굉장히 단순했다. 앨범의 제작 직전에 소속사 사장님은 ‘픽시’라는 제목이 너무 어렵다는 의견을 제기했고, 다른 제목을 생각해 보자는 말에 호란은 바로 “그럼 연예인이요”라고 해서 지금의 제목이 결정됐다.

호란은 “솔직히 연예인이 아닌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관심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 같이 들려야 공감하고 좋아 하지 않나. 혹시 거부반응을 느끼지 않을까 하기도 했는데, 자기 이야기 같다고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아서 기분이 묘했다.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슬픔을 삼키고 공유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라고 덧붙였다.

‘괜찮은 여자’와 ‘연예인’ 외에 ‘댄싱쓰루’, ‘Insomnia’, ‘Favorite Nightmare’, ‘꽃가루’ 등도 마찬가지로 각각의 사연이 담긴 가사와 내용들로 채워졌지만 이중 ‘Favorite Nightmare’는 또 다른 이유로 관심을 끄는 트랙이다.

바로 영화 ‘간신’과 뮤직비디오 콜라보레이션이 진행된 곡이기 때문으로, 호란 스스로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라고 만족감을 숨기지 않았다.

호란은 “정말 마스터링 까지 넘어가고 앨범이 나오기 직전에 제안이 들어왔었다. 심지어 어떤 노래로 할지 정해진 것도 아니고, ‘같이 해보자’라는 제안이었다. 그래서 ‘뭘 넣지?’라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다”며 “‘Favorite Nightmare’의 분위기나 가사가 영화와 제일 어울리기는 했는데 내 안에서 이 곡은 제목도 영어고 굉장히 미국적인 노래여서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도 결국 선택했는데 인트로의 ‘따~랑’하는 소리가 국악기 같은 느낌도 주고 갑자기 되게 잘 어울려서 되게 신기했다”라고 즐거워했다.

더욱이 그녀는 “클래지콰이와 이바디에서도 영화와 콜라보레이션을 하거나 영화 음악을 만든 적이 있는데 그 모든 작업물을 통틀어 이번 ‘간신’과 콜라보레이션이 제일 ‘짱’인 것 같다. 더 절묘한 것은 한복을 입고 뮤직비디오를 찍는 게 오랜 꿈이었고 그걸 시도했는데, ‘간신’에서 정말 아름다운 한복이 나오지 않나. 나를 위한 응원 같고 정말 행복하다”라고 큰 만족감과 즐거움을 숨기지 않았다.

호란의 작사법에서 또 한 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하나의 노래에 영어와 한글 가사 두 가지를 모두를 쓰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호란은 “가사와 멜로디를 한꺼번에 만들어가는 방식을 좋아하는데, 영어가사가 먼저 완성돼 있는 노래들이 많다. 또 영어가사와 한글가사 둘 모두 있는 것을 좋아해서 나중에 다시 한글가사를 붙이기도 하고 그런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른 가사 버전도 유튜브 등에 공개하면 좋겠다고 생각 하고 있다”며 “그런데 이번 앨범에서 ‘Insomnia’는 클래지콰이로 데뷔하기도 전에 써놓은 곡이고, 정말 어떻게 해도 한글로는 그 분위기를 못 옮기겠더라. 마찬가지로 ‘괜찮은 여자’와 ‘꽃가루’는 처음부터 한글로 쭉쭉 써내려간 가사라 또 영어로 옮기기가 어렵더라”라고 독특한 작사 방식을 밝혀, 영어가사로 된 노래가 종종 등장하는 궁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솔로 활동에 나선 호란은 순위 프로그램 등은 지양하고 라디오와 같은 라이브를 할 수 있는 방송과 공연을 위주로 활동할 계획이다.

호란은 “일단 7월에 홍대 공연이 예정돼 있다. 방송은 ‘올댓뮤직’과 같은 라이브 위주 방송에 나설 것 같다”라며 “활동 시작하면서는 어떻게 되든 마음을 내려놓았다. 전전긍긍하기도 싫고 그렇게 해서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그녀다운 시크함을 보여주었다.

더불어 호란은 “앨범의 방향을 내가 생각하는 걸로 할 수 있어 정말 즐겁다. 내가 취향이 독특해서 예전부터 무대에서 한복입고 기타들고 노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다. 또 지금 벌써 다음 정규앨범이 나오면 모티브와 재킷이미지와 뮤직비디오 콘셉트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앨범은 만든 것은 끝난 것 아니냐”라고 다음 작업물의 구상도 이미 들어갔음을 알려 웃음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인터뷰가 끝나고 다음 일정을 묻자 호란은 “(공연 때 입을)한복을 제작할 원단을 사러가야 한다. 원단을 사서 직접 제작해 입는다”라며 즐거워하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매력으로 가득한 ‘괜찮은 여자’임을 재차 알렸다.

호란, 사진|플럭서스뮤직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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