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愛] 니퍼트 통역 남현 씨 “니퍼트가 경기서 활약할 땐 어깨가 으쓱”

입력 2015-06-12 05:45: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두산 남현 통역은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행복하다. 더스틴 니퍼트의 꾸준한 활약에서 알 수 있듯 통역도 팀 전력의 일부다. 김민성 기자 marineboy@donga.com

■ 두산 니퍼트 통역 남현 씨

“경기부터 생활까지 전반적으로 관리
니퍼트는 이제 통역도 필요없는 수준
외국인선수들 떠날 때 가장 힘들어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두산 베어스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채용공고 일정을 물었는데, “당분간 계획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대안으로 마침 통역을 뽑던 SK에 2009년 11월 입사했다. 외국인선수 통역을 시작했다. 2011년 말에는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SK 정대현(현 롯데)을 도와 볼티모어에 가려고 했지만 무산됐다. 야구와의 연이 끊기고 진로를 고민하던 때, 두산에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스카우트 제의였다. 어렸을 때부터 동경해 마지않았던 ‘베어스’ 유니폼을 그렇게 입었다. 두산 더스틴 니퍼트의 통역으로 일하고 있는 남현(35) 사원의 이야기다.


● 통역으로 사는 법

야구단에서 통역은 고달픈 직업이다. 외국인선수와 코칭스태프, 선수간의 대화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선수들의 일거수일거족을 챙기는 ‘로드매니저’와 비슷하다. 남현 씨는 2010시즌부터 6년째 통역 일을 하고 있다. SK 시절 게리 글로버와 짐 매그레인, 브라이언 고든의 통역을 맡았고, 두산에선 니퍼트와 스캇 프록터를 책임졌다. 남 씨는 “가장 기본적인 경기 내적인 일부터 선수계약과 공항 픽업, 대중교통 이용방법, 식사까지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을 관리한다. 2∼3개월 집중적인 관리가 이어진다. 한국문화와 한국야구를 설명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전담하는 외국인선수가 잘하면 큰 보람을 느낀다. 그는 “유네스키 마야가 노히트노런을 했을 때는 스페인통역의 어깨가 올라갔다. 잭 루츠 담당은 기가 죽어 다니기 일쑤였다. 니퍼트는 알아서 다 하고, 통역도 필요 없는 수준”이라며 웃었다.


● 내 친구 니퍼트

니퍼트는 2011년부터 KBO리그에서 5년을 뛴 터줏대감이다. 남현 씨는 2012년 두산 입사 이후 3년 넘게 니퍼트의 전담 통역으로 일했다. 이젠 공적인 관계를 넘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됐다. 새벽녘 영화를 보러 갈 때도, 늦은 밤 맥주 한잔이 그리울 때도 서로를 찾는 끈끈한 사이다. 그는 “늘 티격태격하지만 니퍼트는 인성도 좋고, 배울 게 많은 친구”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남 씨는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선수단 미팅 때의 일이다. 두산 선수들이 우천취소가 되고 다들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니퍼트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취소된 경기만큼 잔여경기를 소화하는데, 시즌 말미일수록 부상선수가 발생해서 더욱 힘든 경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프로선수라면 일희일비하지 말고, 나중에 몸 상태를 최상으로 유지하는 데 그만큼 어려움이 따르는 것도 생각하라’는 뼈있는 일침이었다”고 밝혔다.


● ‘거짓말’만큼 아픈 직업

통역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외국인선수에게 정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떠날지 모르는 외국인선수에게 정을 주면 헤어지기가 쉽지 않다. 남현 씨는 “정을 안 주려고 하는 편인데, 사람인지라 그게 쉽지 않다”고 담담히 말했다. 선수단에게 잘했던 프록터나 크리스 볼스테드가 떠날 때 특히 마음이 아팠다. 외국인선수들은 항상 방출의 부담을 안고 있다. 통역에게 방출 얘기가 없냐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는 “선수들이 느낌으로 안다. 통역이 방출 소식을 알고 있어도 절대 미리 알려줄 수 없다. 그럴 때마다 거짓말을 하는 것도 힘들다”고 귀띔했다. “SK 시절 첫 외국인선수였던 매그레인이 시즌 중반 방출됐다. 어렵게 방출 통보를 전했는데 정말 미안했다. 매그레인이 떠나기 전, 선수단 미팅에서 감사인사를 하는데 눈물이 흘러 이야기를 전하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야구단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통역과 용품관리, 스카우트에도 관여하며 새 일을 배우는 재미에 빠졌다. 그는 “하나씩 배우면서 선수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웃었다.

박상준 기자 spark4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