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 Clean 캠페인] “자살골 넣어라”“퇴장 당해라” 조폭 동원 협박·폭행

입력 2015-06-23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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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국은 2011년 K리그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 팬들의 실망을 샀다. 최성국 사건의 경우, 브로커 등이 1차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집요하게 2차 계획의 실행을 강요했다. 스포츠동아DB

6. 실제 사례로 본 축구 승부조작

특정 선수 포섭 후 선후배 선수까지 매수
제2·제3 승부조작 강요…불이행시 폭행
불법 반복되는 조폭 연계 검은돈 커넥션
K리그 승부조작 브로커 결국엔 실형 선고


“그런 게(승부조작) 있다면 여기에 올 수 없다. 계속 듣고 있으니 지친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소문을 낸다.”(2011년 5월 31일 K리그 워크숍) 국가대표 출신 최성국(32)은 처음에 결백을 주장했다. 많은 이들이 이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그러나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 달여 만에 진실이 드러났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 자신의 승부조작 관여 사실을 자진신고한 뒤 검찰을 찾았다.

그해 7월 7일 K리그 승부조작을 집중 수사한 창원지검은 “최성국이 광주상무(현 상주) 시절인 2010년 6월 2일 성남일화(현 성남FC)전과 6월 6일 울산현대전 등 2차례 승부조작에 가담하고 400만원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또 동료들을 포섭하는 브로커 역할까지 수행했음도 입증했다. 최성국은 2011년 6월 28일부터 29일까지 검찰 수사를 받기에 앞서 소속팀(수원삼성) 관계자에게 “승부조작 모의 자리에는 참석했지만, 불법 행위에는 가담하지 않았다. 돈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거짓말로 밝혀졌다.


● 인연은 악연을 낳고…

창원지방법원 황중연 판사(형사3단독)는 올해 5월 21일 최성국과 얽힌 K리그 승부조작 브로커 이모 씨에게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협박) 등의 혐의로 실형 1년 2월을 선고했다. 스포츠동아가 최근 입수한 이번 판결문에는 최성국이 승부조작에 어떻게, 또 어떤 경로로 연루됐는지가 상세히 나와있다. 물론 4년 전 검찰 발표 내용과 크게 다르진 않다.

최성국은 2010년 5월 무렵, 그해 6월 2일 광주-성남전을 앞두고 전주(錢主) A와 함께한 브로커 이 씨를 통해 포섭됐고, 이후 국가대표 출신의 또 다른 후배 선수 김모(31)를 섭외했다. 전주는 김모에게 2000만원을 교부해 최성국, 김모가 함께 팀 내 다른 선수들을 매수하도록 했다. 그러나 광주가 패하는 것으로 승부조작을 시도한 경기가 결국 무승부로 끝나면서 돈을 돌려받은 전주와 브로커는 6월 6일 광주-울산전 승부조작을 기획하며 또 다시 둘을 섭외했다. 매수자금은 종전과 같은 2000만원으로, 가담 선수들의 아주 지능적(?) 플레이로 결국 광주가 0-2로 패해 승부조작이 성공했다.

승부조작이 이뤄진 다른 종목도 대부분의 경우 이와 비슷한 패턴이다. 한 편의 ‘각본 있는’ 스포츠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선 전주·브로커·선수 등 3자의 역할과 행동이 척척 맞아떨어져야 한다. 브로커 이 씨는 중국 내 알선조직원들과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고, 캄보디아·라오스·태국 등 동남아시아 세력과도 연결돼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지금도 한국인 스포츠 승부조작 브로커가 중국 등지에 머물다 국내 검·경찰과 인터폴의 공동 수사로 현지에서 체포됐다는 소식이 간혹 들려온다. 중국, 동남아가 여전히 승부조작의 중심지라는 주장도 나온다.


● 악연은 폭력을 낳고…

더욱 무서운 것은 가담 선수들에 대한 직·간접적 협박 및 폭력 행위다. 최성국 사건의 경우, 브로커 이 씨 등은 1차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집요하게 2차 계획의 실행을 강요했다. 이 씨는 2010년 6월 2일 승부조작이 실패하자 최성국에게 수차례 전화번호를 바꿔가며 연락하며 “돈을 잃었으니 모두 다 갚아내라”고 한 뒤 6월 6일 울산 원정길에 나선 상무 선수단이 시내의 한 호텔에 숙박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직접 같은 호텔 내 다른 객실을 잡아 최성국을 불러냈다. 이 자리에는 K리그를 승부조작의 대상으로 삼아 그 결과에 의거해 복표를 구입하거나 사설 토토에 베팅해 거액의 배당금을 챙긴 중국인(신원미상)도 함께 했다.

판결문에는 “작업경기를 너무 못 한다. 똑바로 못하겠느냐”, “잃은 돈을 만회하려면 다음 경기는 꼭 (승부조작이) 성공해야 하니 자살골이라도 넣어라. 안 되면 퇴장이라도 당해라”, “내가 네 대학 선배다” 등등 브로커 이 씨가 했다는 말이 그대로 적시돼 있다.

최성국이 직접 조직폭력배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와 함께 범행을 저지른 후배 선수 김모의 경우, 브로커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조직폭력배에게 어딘가로 끌려가 얻어맞고 숙소로 복귀한 적이 있다고 알려진다.

사실 조직폭력배들과 운동선수들의 연계와 관련해선 오래 전부터 많은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유흥가에 기생하는 조직폭력배가 체육대회나 단합대회 등 자신들의 행사를 열 때마다 유명 선수들이 참여했다는 소문 등이다. 당연히 어두운 세력과는 끝까지 좋은 관계가 이어질 수 없다. 좋을 때나 형님, 동생이다. 불법 행위와 그로 비롯된 검은 돈 등 암흑세계 커넥션의 끝이 좋을 리는 없다. 역시 폭력으로 되풀이된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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