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김준수·홍광호, ‘미친 성대’들의 격렬한 부딪힘…뮤지컬 ‘데스노트’

입력 2015-06-2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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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일본어와 중국어가 들려오고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사진을 찍고 기대에 찬 모습에 두 눈을 반짝였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때문에 한국 주요관광지가 한적해졌지만 뮤지컬 ‘데스노트’가 공연되는 성남아트센터만은 예외였다. 초록색, 노란색 등 김준수의 머리색을 따라 염색을 한 팬들도 드문드문 보였고 관객이 너무 많아 극장 직원들은 극장을 돌아다니며 표를 받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위협적인 ‘메르스’도 이들을 보러 서울을 넘고, 국경을 넘어 온 팬들에 대한 애정까지는 억누를 수 없었다.

일본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데스노트’(제작자 백창주․연출 쿠리야마 타미야)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살인을 할 수 있는 ‘데스노트’를 우연히 발견해 범죄자를 처벌하려는 천재소년 ‘라이토’와 그에 맞서는 명탐정 ‘엘’과의 흥미진진한 대결을 그린다. 씨제스 컬쳐의 첫 작품이기도 한 뮤지컬 ‘데스노트’는 한국에 무사히 안착했다. 김준수와 홍광호를 필두로 정선아, 박혜나, 강홍석 등 월등한 실력의 배우들과 흥미로운 소재와 매력적인 캐릭터로 국내 관객에게 화제가 되고 있다.



●말해서 무엇 하리, 김준수․홍광호 명불허전 실력

가창력이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김준수와 홍광호는 발군의 모습을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두 사람의 섬세한 캐릭터 표현력이다. 오케피까지 나온 무대로 나오는 김준수와 홍광호가 서로를 쳐다보며 표현하는 눈빛 연기와 격정스런 소리의 부딪힘은 소름이 돋는다.

풍성한 성량의 홍광호와 송곳같이 파고드는 목소리의 김준수의 가창력과 그에 걸맞는 연기력은 극의 쫀쫀한 재미를 더한다.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미스 사이공’을 마치고 돌아온 홍광호는 감정 연기에 물이 오른 듯 했다. ‘데스노트’로 사회를 바로잡겠다며 정의감을 불살랐던 모습을 시작으로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말투와 표정 연기 그리고 음색까지 섬세하게 캐릭터를 변화시킨다.

김준수는 이번 ‘데스노트’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똑똑한 배우인지 증명해냈다. ‘영악하다’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 정도로 그는 자신이 어떤 역할을 잘할 수 있는지 제대로 알고 있었다. 명탐정 ‘엘’을 연기한 모습만 봐도 그가 얼마나 캐릭터를 철저하게 분석했는지 알 수 있다.

외모적인 스타일링은 두말할 것도 없고 캐릭터의 특유의 디테일함을 놓치지 않았다. 또한 그의 강렬한 창법은 ‘데스노트’에서도 빛을 발하는데 기어코 ‘키라’를 잡겠다는 결단의 의지의 노래를 부르는 김준수의 쏘아붙일 듯한 표정과 내뱉는 가사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보태자면, 뮤지컬 ‘디셈버’때 보다 연기도 많이 향상됐다.



●김준수․홍광호만 있다? 정선아․박혜나․강홍석 놓치면 안 되지

김준수와 홍광호의 강렬한 두뇌 대결만 보면 안 된다. 정선아와 박혜나의 헌신적인 사랑 그리고 강홍석의 재치 넘치는 연기는 또 다른 볼거리다. ‘라이토’의 여자친구이자 아이돌 탤런트 ‘아마네 미사’ 역을 맡은 정선아는 탁월한 가창력으로 폭발적인 무대를 선사한다. ‘위키드’에서 초록마녀 ‘엘파바’를 분장했던 박혜나는 이번엔 하얀 사신 ‘렘’이 됐다. 미사를 헌신적으로 보호하는 ‘렘’의 모습을 보여주는 박혜나는 ‘위키드’에서 보여줬던 우렁찬 목소리와 연기 대신 가슴 뭉클한 목소리로 수호자의 모습을 여실히 드러낸다.

‘뜨는 별’ 강홍석의 모습도 빼놓을 수 없다. ‘킹키 부츠’에서 빨간 킬힐을 신고 무대를 그야말로 삼켜버렸던 그가 ‘데스노트’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사신 ‘류크’ 역을 맡았다는 소식을 듣고 김준수와 홍광호 사이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우려가 컸지만 무대에 선 그는 걱정을 달아나게 했다. 그의 무대 장악력은 실로 대단했다. 전반적으로 능글능글한 모습을 보이며 재미를 주던 ‘류크’가 돌연 미소를 감추고 잔인함을 드러낸 반전의 모습은 관객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심리전 아닌 사회 현상에 중점…줄어든 쫄깃함은 아쉬워

우선 단조로운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이층의 철재구조물과 원형 회전무대, 그리고 여섯 대의 스크린으로 꾸며진 무대는 보기에 심심할 수 있지만 쿠리야마 타미야의 연출 방식이 잘 녹아있는 효율적인 공간 배치다. 일본 공연에서와 같이 깔끔한 무대가 인상적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아쉽다. ‘데스노트’는 서로의 심리를 읽으며 살인을 행하는 ‘라이토’와 문제를 해결하는 ‘엘’의 긴장감 넘치는 관계가 보는 재미 중 하나이다. 특히 테니스 대결을 펼치며 심리전을 펼치는 장면은 심리전의 절정이기도 한데 연출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드러났다.

연출가는 일본 기자회견 당시 “‘심리’보다는 ‘사회 현상’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다. 두 사람이 죽을힘을 다해 테니스 경기를 펼치는 동안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무책임한 모습을 보여주며 사회의 부조리를 어느 정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연출가의 의도는 알겠으나 심장이 쫄깃해지고 소름 돋는 두 사람의 팽팽한 관계를 보지 못한 것이 마음 한편에 남는다. 8월 15일까지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문의 1577-3363.

총평 김준수․홍광호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

동아닷컴 조유경 기자 polaris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제공|씨제스컬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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