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크로 만나는 유라시아&아프리카①] 안녕 대한민국, 쁘리벳 블라디보스톡

입력 2015-06-26 10: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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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데는 특별한 이유도 목적도 재능도 필요없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만 필요할 뿐이다.

<<‘멀쩡하게 직장을 다니던 30대가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바이크 세계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에서 이에 대한 반응은 대부분 '미쳤다'와 '멋있다'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그게 미친 것이든 멋진 것이든 간에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를 실행에 옮기는 데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조금 더 많은 용기와 결단이 필요할 뿐이다. '푸른 늑대를 찾아서'라는 이름하에 유라시아 횡단 및 아프리카 종단 바이크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송인근(35) 씨 역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30대 남성이다. 거창한 목표를 지닌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떠난 여행도 아니지만 그가 지나가고 지나갈 50000Km의 여정은 마찬가지로 조금 더 용기를 발휘할 예비 모험가들에게 하나의 참고서가 될 만하다. 이에 동아닷컴에서는 송인근 씨의 9개월에 걸친 여행기를 10회에 걸쳐 연재하고자 한다>>


●이유 모를 눈물

믿거나 말거나 나는 바이크를 즐겨 타지 않는다. 여행을 자주하는 편도 아니고, 현실에 불만이 있거나 커다란 뜻이 있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직장인이었고, 다만 바이크를 타고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을 뿐이다.

물론 그동안 떠나지 못한 이유는 남들과 마찬가지로 직장을 그만 두고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점과 여행이 끝났을 때 마주한 현실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을 떠나겠다는 결심은 찰나였고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여행이고 지금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은가. 가지 않을 이유는 아직 닥치지 않은 두려움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이는 생각이 아니라 곧 현실이 됐다.

평소 좋아했던 이재무 시인의 '푸른 늑대를 찾아서'라는 타이틀로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곧 9개월간 나와 함께 할 바이크를 구입했다. 여행에 필요한 장비를 하나둘씩 모으며 주변을 정리해 나갔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자 어느새 나는 강원도 동해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고 있었다.

안녕 대한민국, 쁘리벳 블라디보스톡 


나의 여행은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시작된다. 처음 떠날 때의 마음은 혼란 그 자체였다. 내가 원해서 떠나는 여행인데 왜 즐겁지가 않을까.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무엇 때문에 여행을 떠나는지 모르겠다. 설레고 신나고 싶은데 이곳과 내 상황이 당황스럽고 낯설기만 했다. 그동안 직장을 그만두고 여행에 대한 준비를 하느라 바쁘기만 했었는데 정작 떠나는 이 순간이 되고 나니 이유도 모른 체 모든 게 혼란스러울 뿐이다. 이 같은 혼란은 나도 모르게 눈물로 바뀌어 흘러내렸다.

뒤숭숭한 마음에 억지로 눈을 붙이고 나니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던 질문의 답도 내려졌다. 난 무엇을 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나홀로 하고 싶었던 여행을 하는 것다. 어떠한 이유와 목적도 없다.


●바이크가 맺어준 ‘쁘라땅니’

바이크 통관 기간이 3일정도 소요되는 덕에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 약간의 여유를 얻은 나는 한국에서 출발할 당시의 뒤숭숭한 마음을 다소 추스르고 내가 ‘여행자'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짧지만 소중한 시간을 제공한 블라디보스톡을 뒤로 하고 첫 목적지로 정한 곳을 블라디보스톡에서 300km 가량 떨어진 스파스크달니이다. 블라디보스톡을 지나 주간선도로에 진입하기 전 바이크를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하자 두 대의 바이크가 지나가며 경적을 울렸다. 아, 그들은 내게 인사를 한 것이다.

단순히 내가 바이크를 탄다는 이유만으로 동질감이 형성됐고, 한국과 러시아라는 국경을 넘어 친구가 된 셈이다. 이런 바이크가 이어준 인연은 스파스크달니를 떠나기 전 더욱 극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우연은 인연을 만들고 우린 쁘라땅이 되었다


스파스크달니에서 나와 간선도로로 진입하려는 순간 한 명의 러시아 라이더를 볼 수 있었고, 지나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일면식도 없던 '기마'라는 이 라이더는 대뜸 “Let’s ride!”를 외쳤고, 그 때부터 스파스크달니에서 하바로프스크까지의 여정은 러시안 라이더 기마와 그 친구인 디니스와 함께 하게 됐다.

하바로프스크에 숙소예약조차 하지 않았던 나는 기마와 디니스의 또 다른 친구집에서 묵게 됐고, 그날은 당연히 밤새도록 음주 파티가 이어졌다. 코가 삐뚤어지도록 마신 우리는 곧 “쁘라땅니(형제들)”가 됐다. 도원결의가 아니라 하바로프스크결의였다.

정말 놀랐던 일은 기마와 디니스가 “난 어제 길가에 멈춰 있는 너를 봤었다”고 말했을 때였다. 블라디보스톡을 떠날 때 내게 가장 먼저 경적을 울리며 인사를 한 라이더가 바로 기마와 디니스였던 것이다.

그 순간 전율이 흘렀다. 나를 라이더로 만들어 주었던 이들이 다시 형제가 된 셈이다. 우연이 인연을 만들었다.


●또 한 번의 깨우침

새로운 '형제'와 작별하고 본격적인 라이딩의 시간이 다가왔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치타까지의 거리는 약 3000km로, 이 구간을 지나기위해 4일을 홀로 달려야 했다.

하바로프스크에서 치타까지, 다시 올란우데까지 홀로 달리고 또 달렸다. 쓸쓸할 것만 같았던 4일간의 라이딩이었지만 어느 때부터인가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추고, 달리고 싶을 때 달리고, 이 시간과 공간은 온전히 나 자신의 것이었다.

라이딩은도로와 비도로를 가리지 않았다


누구도 나를 구속하지 않고, 누구도 나에게 지시하고 명령하지 않는다. 나를 달리게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내 자신이다. 자연스럽게 즐겁고 신이 났다. 여기에 나를 더욱 즐겁게 한 것은 바로 '러시아의 손'이다.

드물게 만난 라이더들은 반드시라도 좋을 정도로 손인사를 건네며 지나갔고, 가끔 지나가는 승용차와 트럭도 경적을 울리며 흥미로움과 반가움을 표했다. 장담컨대 내가 지난 4일 본 이들의 손은 어떤 누구 본 것보다 가장 활기차고 밝은 '러시아의 손'이었다.

물론 4일간의 라이드가 순탄치만은 않았다. 여행객을 노린 강도가 많다는 현지인들의 당부(실제 최근에 어느 여행객이 강도 상해를 당했다고 한다)도 종종 들었고, 실제 불길한 기운을 풀풀 풍기며 접근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했다.

운이 좋은 건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의 불미스러운 일은 피하며 지나왔지만 문제는 사람과 바이크 사이에서 발생했다. 바이크의 리어 타이어가 마모돼 교체를 해야 했지만 울란우데에서는 맞는 타이어를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 책임감 넘치고 친절한 카센터 아저씨를 만나 바이칼 호수 위쪽의 대도시 이르쿠츠크에서 타이어를 공수해오긴 했지만, 그 덕분에 올란우데에서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지지부진한 타이어 교체작업은 잠시 카센터에 맡겨 두고 러시아 라이더 아저씨가 추천한 올란우데의 명소 '이볼진스키 닷싼'이란 불교사찰을 찾았다. 울란우데에서 30~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사찰이었는데 첫 인상은 '실망감'이었다. 건물도 작고 정비도 잘 안 돼 있어 유서 깊은 사찰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나의 어리석음이었다. 유난히 경건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고, 사찰에 대해 검색해보니 이곳이 러시아 최초의 불교 사찰이란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러시아 불교계의 수장이었던 다시 도르조의 이티겔로프의 시신이 부패되지 않은 채 미라로 발견된 것으로 유명했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미라는 앉아있었고 피부는 부패되지 않아 보였다.

사찰의 외형에만 집중한 나의 무지와 선입견을 반성하게 됐다. 규모가 작고 화려하지 않다고 하여 그 곳이 의미 없는 곳은 아니다. 즉 나는 외형적인 모습과 스펙의 함정에 빠져 '이볼진스키 닷싼'을 본 것이다. 결국 나를 바라보는 내 모습도 그 정도 수준이었나 보다. 여행을 통해 내 자신을 바라본다. 매일매일이 그러하다.

깨우침을 선사한 이볼진스키 닷싼



●따뜻했던 러시아

이볼진스키 닷싼에서의 깨우침을 안고 다시 바이칼 호수로 떠났다. 바이칼 호수에서 캠핑으로 하루를 보내고 올혼섬에 갈 계획이었지만, 여행은 언제나 계획대로 따라가 주는 녀석이 아니었다.

올혼섬에 도착하기 2~30km 전 비포장도로가 나를 반겼고, 헬멧을 떨어트리거나 경음기가 날아가 버리기도 했다. 늦지 않게 선착장에는 도착했지만 내리자마자 다시 비포장도로가 펼쳐졌고, 결국 이번 여행의 가장 핵심인 바이크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진동 때문인지 넘어진 것 때문인지 속도를 올리면 RPM이 급격히 상승하고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 계속해서 발생했고, 정상적인 주행이 불가능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찌어찌 숙소까진 도착했지만 이상 징후가 가져다준 걱정은 작은 것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올혼섬에서의 여정은 편안했고 또 즐거웠다는 것으로, 아마도 이것이 불안감을 감소시켰는지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올혼섬에서 다시 이르쿠츠크를 향했고, 작은 진동에도 시동이 꺼지는 바이크를 억지로 끌고 가며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넘어지고 또 넘어졌다


'오프로드만 지나가면 이제 달릴 수 있을 거다'라는 나의 의지에 바이크는 시동조차 걸리지 않는 극단적인 태도로 화답했고, 이때는 정말 한국을 떠난 지 처음으로 “여행을 못하고 돌아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시동은 다시 걸렸지만 시동이 꺼지는 문제는 그대로였고, 어떻게 온 지도 모르게 도로까지 나오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200km도 멀리 떨어진 이르쿠츠크까지 가는건 불가능한 일이었고, 노숙을 해야하나 고민하고 있던 찰나 멀리 몇 개의 농가가 눈에 들어왔다.

마당에서 텐트라도 치게 해달라고 부탁할 마음으로 불 켜진 집 창에 “쯔뜨라스 부이젯(안녕하세요)”를 외쳤고, 낯선 이방인의 꾀죄죄한 몰골 때문이었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나를 집안으로 초대했다.

한밤중의 불청객이란 생각에 미안한 표정으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음식을 내어줬고, 그녀의 풍요로운 마음 씀씀이에 긴장이 풀린 나는 염치도 잊은 채 배터지게 먹기 시작했다.

러시아에서 만난 시골 할머니의 따뜻한 환대는 한국에 있을 어머니와 할머니를 잠시 떠올리게 했고, 그 탓인지 정말 잘 먹고 잘 잤다. 심지어 꿈까지 한국에 있는 꿈을 꿨다.

아침에 일어나서 깜짝 놀랄 정도로 생생했던 꿈에서 벗어나니 말 그대로 러시아의 시골 농가였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예기치 못한 바이크 고장으로 러시아 시골 인심을 체험하게 된 나는 인연의 소중함에 거듭 감사했고, 한국에 돌아가서 작은 선물이라도 보내줄 요량으로 받은 할머니의 주소와 잘 가라는 배웅을 안고 길을 나섰다.

러시아를 따뜻하게 해준 아주머니와 할머니 



●정말 예쁜 러시아 미녀

따뜻한 시골인심에 밤은 잘 넘길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바이크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한참동안 바이크를 붙잡고 실랑이를 하던 중 경찰서 앞에 도착했고 인터넷이 연결되자 메신저를 통해 한국에 있는 정비사에게 증상을 문의했다. 실제로 보지 못하고 글로만 해결책을 찾으려니 다소 어려운 점도 있었지만 정비사의 진단은 정확했다.

“간단한 센서오류 등은 밧데리 +극을 뻈다가 잠시 후에 다시 연결하면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라는 말에 바로 밧데리를 확인했고, –극 전선 일부가 손상된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절연테이프를 이용해 간단히 전선을 수리하고 나니 바이크는 다시 쌩쌩하던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밖에 생각나지 않는 순간이었다.

시련과 좌절, 용기와 교훈을 동시에 안겨준 올혼섬을 기억 속에 담아두고 이르쿠츠크의 호스텔에 도착하자 간만에 샤워를 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개운한 모습으로 거실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자 호스트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폴리나라는 이름에 24살의 미녀 아가씨.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볍게 맥주를 함께 마시게 됐고, 폴리나는 곧 살짝 상기된 모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여행과 고향인 이르쿠츠크를 좋아한 폴리나는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는 호스텔을 차리게 됐고, 호스텔 운영에 많은 열정을 보였다. 24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정하고 또 열정을 지니고 있는 모습은 (원래도 예뻤지만) 더욱 그녀를 빛나게 했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내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정말 예쁜 폴리나



●여행의 묘미

이후 몽골을 거쳐 다시 러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넘어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다시 한 번 장비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바이크와 카메라 등을 수리를 하려다보니 현지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통하지도 않는 말을 섞어가며 여러 사람에게 상가와 바이크샵 위치를 물어야했고, 걱정했던 것보다 이들은 대부분 친절하게 나의 질문에 최선을 다해 응답해 주었다.

그렇게 세 시간이 걸려 찾아간 전자매장에서는 5분만에 카메라의 수리를 끝내주었고, 나는 기분 좋게 수리비를 주고 매장에서 나올 수 있었다.

여행이라는 게 이런 것 같다. 쉽게 풀 걸 어렵게 풀고, 부딪혀서 해결해야 하고, 상황에 대한 판단력과는 다르게 의사결정에 따른 효율성은 또 굉장히 떨어진다.

특히 가장 큰 제약은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이다. 다른 언어를 쓴다는 것은 나의 의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방법을 원천적으로 차단한다는 뜻이고, 이는 굉장한 제약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니 그래서 여행은 더 재미있는 것이다. 여행을 하는 도중에는 대부분의 문제에 직접 부딪쳐야 되며 회사와 집을 오가는 일상에서는 알 수 없는 사회를, 세상을 새로 알아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매일 매일 새로운 환경 속에서 먹는 것, 자는 것, 쉬는 것, 가는 것 모든 일상생활이 크고 작은 문제로 다가오고 그런 경험은 불편이 아니라 소중하고 행복한 경험이 된다.

그렇게 여행의 묘미를 알려준 러시아에게 첫 번째 작별인사를 남기고 몽골로 바이크를 향했다.

이제 몽골이다


※보다 자세한 여행기는 송인근 씨의 블로그 (http://songig0831.blog.me)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사진 송인근 / 감수 동아닷컴 최현정 기자 gagnrad@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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