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토피아] 머클 ‘본헤드 플레이’ 감싸준 맥그로 감독의 제자 사랑

입력 2015-07-20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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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머클은 1908년 메이저리그에 ‘본헤드 플레이’라는 단어를 탄생시킨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당시 뉴욕 자이언츠 소속이던 머클은 존 맥그로 감독이 보호해준 덕분에 그 후 16년간 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고, 3번이나 월드시리즈 무대를 누볐다.

■ 1908년 ML 머클 사건과 2015년 김광현 빈글러브 태그

뉴욕-시카고 최종전, 브리드웰 끝내기 안타
1루주자 머클, 2루 밟지 않고 클럽하우스행
시카고 포스아웃 주장에 경기 무승부 종료
맥그로 감독, 매스컴 비난에 맞서 머클 두둔



SK, ‘김광현 해프닝’ 침묵으로 일관 아쉬움

SK 김광현이 12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모든 선수들이 참가하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 올스타전에도 결장했다. 지난 9일 ‘빈글러브 태그’사건 이후여서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만하다. 누군가는 “왼 팔꿈치가 아픈 것이 아니라 마음이 더 아플 것”이라고 했다. 물론 SK는 손사래를 친다.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한 외줄타기를 하던 상황에서 그럴 여유가 없다고 했다. 이번 해프닝을 보면서 떠오른 사람이 있다. 프레드 머클과 존 맥그로다. 메이저리그 초창기인 1908년 일어났던 사건. ‘본헤드 플레이’라는 말을 탄생시킨 그 사건과 그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 여러 가지를 생각나게 한다.


● 본헤드 플레이의 탄생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스포츠기자 레너드 코페트가 쓴 ‘덕아웃의 사람’(The Man in the Dugout, 고(故) 이종남 기자가 ‘야구에는 민주주의가 없다’로 번역)에 당시 상황이 잘 나온다.

1908년 존 맥그로 감독이 이끈 뉴욕 자이언츠는 9월 23일 시카고 컵스와 뉴욕 폴로그라운드에서 시즌 마지막 경기를 했다. 그해 내셔널리그는 자이언츠와 컵스, 피츠버그 3개 팀이 흥미진진한 선두경쟁을 벌였다.

1-1로 팽팽하던 9회말 2사 1루서 자이언츠 신인 1루수 프레드 머클이 안타를 때려 1·3루가 됐다. 후속 엘 브리드웰이 중전 적시타를 날려 3루주자는 홈으로 들어왔다. 끝내기 결승타였다. 순간 관중들이 그라운드로 몰려왔다. 1루주자 머클은 몰려드는 관중들로부터 성가신 일을 당하는 것을 피하려고 했는지 1루에서 2루로 뛰어가다 3루주자가 홈을 밟은 뒤에 센터펜스 쪽에 있는 클럽하우스로 방향을 돌려버렸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게 했다. 관행이었다. 규칙으로 보자면 머클이 2루를 밟지 않아 공을 가진 컵스의 수비수가 2루를 밟으면 포스아웃이 된다. 포스아웃이 3번째 아웃이 되면 득점은 인정되지 않는다. 그라운드가 난장판이 된 상황에서 머클의 베이스러닝을 유심히 지켜본 컵스는 사라져버린 공을 찾아와서(그 공이었는지는 누구도 모름) 2루를 밟은 다음 포스아웃이라고 주장했다. 심판 2명(당시는 2명이 경기를 진행)은 이미 경기장에서 철수한 뒤였지만 컵스가 심판실에 쳐들어와서 우기자 2번째 득점은 무효라고 최종판정을 내렸다. 자이언츠는 뒤늦게 상황을 알고 “그것이 왜 아웃이냐”며 항의했지만 판정이 번복되지 않았다. 논란이 벌어졌다.

내셔널리그 사무국은 무승부로 끝낸 이 경기가 페넌트레이스 우승의 중요한 변수가 된다면 재경기를 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하필이면 자이언츠와 컵스는 10월 7일 시즌 종료까지 98승55패로 동률이었다. 피츠버그는 98승56패였다. 10월 8일 폴로그라운드에서 두 팀의 사상 첫 우승 결정전이 벌어졌는데 컵스가 4-2로 이겼다.


● 뉴욕 매스컴 19살 어린 선수 집중 비난

자이언츠가 ‘운명의 대결’에서 패하자 뉴욕 매스컴에서 난리가 났다. 즉시 희생양을 찾았다. 9회 베이스러닝 실수를 한 머클이 공격의 대상이었다. ‘멘탈 실책’을 상징하는 ‘본헤드 플레이’란 단어가 그때 처음 등장했다. 공개적으로 야구 룰도 모르는 바보라고 비난했다. 위스콘신의 작은 마을 출신의 19살 어린 선수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앞날이 창창한 선수가 그 실수 하나로 시즌을 망치고 야구도 전혀 모르는 ‘공공의 적으’로 취급받자 동료들이 더 걱정했다. 선수로서의 장래를 심각하게 걱정한 브리드웰은 “차라리 내가 그때 삼진을 당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탄했다고 전한다. 이런 생각이 진정한 동료애다.

1908년의 뉴욕은, 화풀이 대상을 찾으면 초토화시키겠다는 듯 나쁜 기사와 악플 폭탄을 투하하는 요즘의 우리와 많이 닮았다. 어떤 일이 생기면 누구의 잘잘못부터 따지는 매스컴의 속성은 100년이 지났지만 변함이 없다. 매스컴에서 계기를 만들면 그 다음은 인터넷의 바다에서 숨어 있던 피라냐 떼의 시간이다. 이성이 없다. 분노와 욕설만 있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푸는 감정의 분출구로 희생양을 매도하고 물어뜯는다.


● 머클을 구해준 것은 감독 존 맥그로였다

많은 사람들이 ‘본헤드 플레이’와 프레드 머클은 알지만 1908년 그 사건 이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대충 머클이 그 행동 때문에 일찍 선수생활을 끝마쳤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아니다. 스토리의 반전이 있다. 머클은 이후로도 16년간 더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했다. 자이언츠에서 7년간 뛰면서 3차례나 월드시리즈에도 출전했다. 맥그로 감독의 보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요즘의 김성근 감독처럼 당시 뉴욕 매스컴에 많은 영향력을 가졌던 맥그로는 머클을 향한 매스미디어의 비판에 앞장서서 싸웠다. 공개적으로 머클을 두둔했다.

“나이 어린 선수가 선배들의 행동을 따라서 한 것뿐이다. 자이언츠의 우승이 강탈당한 것은 우유부단한 심판들 때문이다. 머클의 책임이 아니다. 컵스가 결승타를 쳤던 공을 제대로 찾아와서 2루를 찍었는지 어느 누구도 보지 못했다. 심판이 그것을 확인하지도 않고 심판실에서 명백한 득점을 번복한 것은 잘못된 판정이다. 또 만일 그렇다하더라도 심판이 해야 할 일은 1-1에서 9회말이 끝났기 때문에 관중을 그라운드 밖으로 내보내고 연장전을 계속해야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김광현의 행동을 놓고 심판진에서 “선수가 사과해야한다”는 말들을 하는 모양이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며 심판도 징계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왜 사과라는 말이 나오는지 궁금하다. 사과가 꼭 필요하다면 심판이 해야 맞다.


● 2008년 윤길현과 2015년 김광현

맥그로는 감독생활 33년간 메이저리그 통산 2763승을 거둔 명장이다. 1937년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고 그가 확립한 선수장악 방법과 경기운영 노하우 등은 후대 감독들의 교본처럼 내려온다. 그의 야구인생과 덕아웃에서의 행동을 보면 김성근 감독과 여러모로 닮았다. 선호도에 따라 평가는 엇갈리지만 머클 사건 뒤처리에서 보여주듯 자기 휘하의 선수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앞서서 싸웠고 보호하려고 노력했다.

이번 김광현 해프닝과 관련해 많은 의견과 주장들이 나오는 동안 SK 프런트도 많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내부회의를 통해 이 문제를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모양이다. SK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냄비처럼 쉽게 뜨거워졌다가 또 쉽게 식어버리는 요즘 세태를 감안한다면 나쁜 대처방법은 아니지만 조금 아쉽다. 최소한 SK에서 어느 누구라도 한 사람은 나서서 김광현을 위한 항변을 해줄 수는 있었겠지만 침묵했다.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군가 위로해주고 앞장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혹은 조직에 대한 충성심은 달라질 것이다.

SK는 그것을 보여줄 기회가 있었는데 아쉽게 타이밍을 놓쳤다. SK는 2008년 윤길현의 욕설파문이 났을 때도 누가 사과를 하느냐를 놓고 내부갈등이 벌어졌다. 그것이 결국 김성근 감독과 프런트가 서로를 등진 도화선이 됐다. 앞으로 SK와 김광현의 행보가 궁금하다.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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