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헌 만루홈런, 싹쓸이 2루타로 번복

입력 2015-08-2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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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민병헌. 스포츠동아DB

■ ‘양키스 소년 글러브’ 떠올린 두산-kt전

글러브 내밀던 관중과 겹쳐 비디오판독 애매
심판 민병헌에 ‘3타점 인정 2루타’ 이색 판정

23일 수원구장. 7회초 두산의 공격 도중 경기가 중단됐다. 1-6으로 뒤지던 두산이 빅이닝을 만들었다. 1사 후 2명의 주자가 나가며 기회를 잡은 두산은 로메로의 우전적시타로 추격을 시작했다. 최주환이 3점홈런을 날려 1점차까지 따라붙었다.

kt는 김재윤에 이어 장시환을 투입해 불을 끄려고 했지만, 뜨거워진 두산의 방망이는 식지 않았다. 2사 후 정수빈의 4구와 허경민의 우전안타, 대타 양의지의 4구로 만루. 여기서 민병헌(사진)은 수원구장 왼쪽 담장 철망 윗부분을 때리는 큰 타구를 날렸다. 2사 후라 3명의 주자가 모두 홈까지 내달렸다.

민병헌이 2루를 도는 동안 2루심은 홈런을 선언했다. 당연히 kt에선 비디오판독을 요청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다. 화면 상태가 좋지 못했던 데다, 공이 떨어지는 지점에서 글러브를 내밀던 관중까지 겹쳐서 판독이 어려웠다. 민병헌의 타구가 관중의 글러브를 맞고 떨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듯도 했다. 이 경우 떠오르는 유명한 장면이 있다. 관중이 내빈 글러브가 월드시리즈 우승을 가져다준 사건이다.

1996년 10월 9일(현지시간) 볼티모어-뉴욕 양키스의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1차전. 양키스가 3-4로 뒤지던 8회말 1사 후 데릭 지터가 오른쪽으로 큰 타구를 날렸다. 볼티모어 우익수 토니 타라스코가 잘 따라가 잡으려고 했지만, 13세의 소년 마이어가 타라스코의 머리 위로 글러브를 내밀었다. 타구는 소년의 글러브를 맞고 펜스를 넘어갔다. 볼티모어는 관중의 수비방해로 아웃이거나 펜스를 맞고 나오는 2루타라고 주장했지만, 우익선심 리치 가르시아는 관중의 방해가 없었다면 홈런이었다고 판정했다. 비디오 판독제도가 도입되기 전이었다. 볼티모어는 억울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양키스는 소년의 도움 덕분에 기사회생했다. 연장 11회 혈투 끝에 5-4로 이겼고, 월드시리즈 우승도 차지했다. 1978년 이후 첫 우승이었다. 마이어는 양키스를 살린 행운의 주인공으로 뉴욕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마이어가 그날 사용했던 글러브는 훗날 경매에도 나와 2500만원에 팔렸다.

23일 수원구장에서도 비슷한 스토리가 탄생할 뻔했지만, 심판은 비디오 판독 후 2루타로 정정했다. 그 대신 3명의 주자는 모두 홈에 들어온 것으로 판정했다. kt는 1루주자까지 홈에 들어온 것은 문제가 있다고 어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원 l 김종건 전문기자 marc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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