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로 기자의 여기는 에비앙] 코치형부터 풀 서비스형까지…에비앙 접수한 골프 대디들

입력 2015-09-14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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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에비앙 르뱅의 에비앙 골프장 전경.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플레이 조언은 물론 집밥 해 먹이기까지
컷 탈락 결정되자 언성 높이며 화내기도
한국선수 부모들 유별난 뒷바라지 눈길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로 펼쳐진 에비앙챔피언십. 우승을 위해 많은 선수들이 일찍부터 프랑스로 이동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상금랭킹 1위 전인지(21)는 국내에서 열리는 큰 대회 출전도 포기한 채 일찍 에비앙에 도착해 우승담금질을 시작했다. 선수가 대회를 준비하듯 부모도 같은 마음이다. 그런데 부모마다 선수를 뒷바라지하는 방식이 다르다. 에비앙챔피언십에서 만난 부모의 모습을 훔쳐봤다.


● 코치형

A선수의 부모는 딸의 행동 하나하나를 주의 깊게 관찰한다. 이런 행동은 연습그린에서 드라이빙 레인지 그리고 경기를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분석능력은 전문가 수준이다. 경기가 끝나면 18홀 동안 일어났던 일들을 돌아보면서 모니터링을 한다. 대개는 잘된 것보다 잘못된 플레이에 대한 반성이 많다. 가령 “8번홀에서 세컨드 샷을 할 때는 6번 아이언으로 칠 게 아니라 7번 아이언으로 세게 쳐서 탄도를 높여 그린에 세웠어야 했는데, 6번 아이언으로 치니까 공이 그린에 떨어진 뒤 많이 굴러갔다. 내일은 7번 아이언으로 쳐봐라”는 식이다. 부모가 즉 코치인 셈. 가끔은 안타까운 장면도 연출된다. 컷 탈락이 결정되자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속이 상한 마음은 십분 이해 되지만 그 순간 누구보다 힘든 건 선수다.


● 갤러리형

B선수의 부모는 단단히 준비하고 골프장에 온다. 손에는 접이식 간이의자가 들려 있고,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나타난다. 어깨에는 작은 가방을 메고 있다. 그 안에는 김밥부터 과일, 빵, 음료와 물 심지어는 비옷까지 담겨 있다. 18홀 동안 경기를 보면서 필요한 물품과 날씨의 변화까지 대비한 철저한 준비다. 갤러리형 부모는 다시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조용하게 경기를 관전하는 과묵형과 버디가 터질 때마다 목청 높여 응원하는 저돌형이 있다. 갤러리인척 하지만 누가 봐도 선수 가족임을 알 수 있다.


● 게릴라형

C선수의 부모는 경기가 시작되면 빠르게 걷는다. 갤러리형과 달리 잘 보이지 않게 숨어 다닌다. 선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행동이다. 게릴라형의 특징은 선수보다 한 템포 빠르게 이동하면서 경기를 관전한다. 예를 들어 1번홀에서 티샷을 하고 있을 때 부모는 공이 떨어지는 페어웨이 중간에서 기다리고 있다. 딸의 티샷 거리 등을 잘 알고 있는 부모는 정확하게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 간혹 공이 해저드나 OB구역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볼 때는 탄식을 하면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그러나 예상한대로 정확하게 공이 떨어지면 표정이 밝아진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다시 그린으로 이동한다.


● 풀 서비스형

가장 바쁘게 움직이는 부모들이다. 경기 이외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선수에게 줄 음식. 따라서 숙소를 선택할 때 호텔보다는 주방이 딸려 있는 레지던스나 홈스테이를 선호한다. 해야 할 일이 많기에 선수보다 바쁘다. 아침에는 보통 30분에서 1시간 먼저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경기가 끝나면 먼저 숙소로 이동해 먹을 것을 챙긴다. 선수가 경기하고 있는 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 무관심형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고 부모는 그저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해주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물론 이런 부모는 많지 않다. 이 정도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어느 정도 성적이 보장되어야만 가능하다. 투어에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루키 선수 부모 중에선 거의 없다. 보통 4∼5년 이상 투어 경험이 있고 수시로 톱10에 이름을 올리는 선수들의 부모가 이런 유형에 속한다. D선수의 부모는 골프장에 도착하면 매니저에게 모든 일을 맡기고 본인은 쉴 공간부터 찾는다. 경기에 따라 나가는 건 극히 드물다. 어차피 경기는 선수가 하는 것이지 부모가 코스에 따라 나가봐야 달라질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내는 그렇지 않다. 선수가 경기를 시작하면 성적이 잘 보이는 스코어보드 앞을 서성이거나 TV 혹은 휴대폰을 보면서 계속해서 성적을 확인한다.

에비앙(프랑스) |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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