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 “전쟁 무관한 B급 코미디 향기 매력적”

입력 2015-09-24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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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의 변신과 도전에는 끝이 없다. 그는 그런 끊임없는 시도를 즐기고 있다. 김진환 기자 kwangshin00@donga.com

■ 주연 영화 ‘서부전선’ 오늘 개봉


집에 갈 생각밖에 없는 병사이야기
일반 전쟁영화였다면 거부했을 것

시나리오 보고 바로 떠오른 여진구
촬영 현장에선 적…그냥 무시했다


“나이 먹을수록 배우는 소모되는 직업이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별 짓 다 해야 한다.”

설경구(46)는 보폭 넓은 배우다. 실력을 의심하기 어려운 연기는 물론이고, 한때 자유자재로 줄이고 늘린 몸무게까지 화제였다. 최근에는 장르를 넘나든다. 24일 개봉한 ‘서부전선’(제작 하리마오픽쳐스)에서는 전쟁이란 비극 아래 지극히 순진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펼쳤다. 10월 중순 시작하는 새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을 앞두고는 체중을 10kg 이상 줄였다. 그의 말대로 “별 짓 다 하는” 배우의 삶이다.

“내가 썼던 카드를 다시 꺼내고 싶지 않다”는 그가 한 걸음씩 나아가는 힘은 새로운 시나리오를 읽을 때마다 피어나는 호기심 때문인 듯 보였다. ‘서부전선’도 비슷하다.

“전통적인 전쟁영화였다면 하지 않았다. 전쟁과 무관한 B급 코미디의 향기가 매력적이다. 오직 집에 갈 생각밖에 없는 병사 얘기다. 이념? 남과 북? 그런 건 없다.”

영화 ‘서부전선’의 설경구 여진구. 사진제공|하리마오픽쳐스


영화는 농사짓다 전쟁에 끌려온 남한 병사(설경구)와 총 쏘는 법도 모르는 북한 병사(여진구)가 휴전 직전 전쟁터에서 겪는 이야기. 설경구는 출연에 ‘상대역은 여진구’라는 조건을 달았다. 영화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 속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은 뒤였다.

“시나리오를 보고 단박에 떠오른 얼굴이 여진구였다. 맑은 눈을 지닌 그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다. 우린 대본 연습 한 번 안했다. 대신 촬영장에서 철저히 영화 속 인물로 지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진구는 나의 적일뿐이다. 그냥 무시했다. 하하!”

설경구는 “영화 촬영장 사람들 중 악한 이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동안 겪은 촬영장은 늘 그랬다. ‘서부전선’은 평균 이상. 그는 “이번처럼 서로서로 사진을 많이 찍은 현장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라고 돌이켰다.

부족함이 없었던 건 아니다. 연출자 천성일 감독은 드라마 ‘추노’, 영화 ‘해적:바다로 간 산적’ 등 대본을 쓴 작가 출신. ‘프로’ 설경구에게 천 감독은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문제가 없던 이유는 “인간적인 따뜻함으로 소통한” 덕분이다.

설경구는 추석 명절을 온전히 관객과 보낸다. 빽빽한 무대인사 일정이 잡혀 있다.

“늘 그랬다. 명절이라 특별한 건 없다. ‘해운대’ 찍을 땐 부산에서, ‘오아시스’ 땐 서울 서대문고가에서 ‘감시자들’을 촬영하면서 추석을 보냈다. 하하!”

분주하게 활동하는 그는 국내에선 드문 시리즈 영화의 주인공이다. 고유의 형사 캐릭터를 지녔다. 3편까지 제작된 ‘공공의 적’ 시리즈다. 할리우드에서 과거 히트작을 다시 만드는 리부트(작품의 주요 골격과 등장인물만 차용해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 제작이 유행인 요즘, 혹시 비슷한 욕심을 갖고 있진 않을까.

그는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형사 강철중(1편), 싫은 캐릭터는 검사 강철중(2편)”이라고 했다. “번외편 겪인 3편을 촬영하면서는 내가 날 흉내 내는 기분도 들더라. 그래도 연출자 강우석 감독님이 한 번 더 하자면? 무조건 ‘네!’. 해야지.” 덧붙여 그는 “‘시나리오 읽고 결정하겠다’는 말을 할 수 없는, 무조건 출연해야 하는 두 명의 감독”으로 강 감독과 더불어 이창동 감독을 꼽았다.

요즘 설경구는 아침 5시30분에 집을 나선다. 한 시간 반쯤 한강둔치를 달리고, 스포츠센터에서 두 시간 넘게 운동한다. 매일 1만번의 줄넘기를 거르지 않는다. 내심 기대를 걸고, 변신을 준비하는 ‘살인자의 기억법’ 촬영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욕심난다. 궁금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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