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영리한 마블에 뒷통수 맞은 한국

입력 2015-09-24 07: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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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벤져스2:에이지 오브 울트론’.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할리우드 스튜디오인 마블은 지난해 봄 한국에서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어벤져스2)’의 일부 장면을 촬영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외국영상물 로케이션 인센티브’로 26억원을 지원받은 제작진은 서울시 등 당국의 전폭적인 협조로 촬영을 진행했다. 시민과 언론의 관심도 컸다. 마블은 서울 등을 ‘첨단 IT도시’로 그리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4월23일 개봉한 ‘어벤져스2’에 10여분간 나온 서울은 그저 주인공들이 싸우는 격투의 ‘배경’으로 등장했다. 이는 ‘어벤져스2’에 대한 지원이 한낱 한국만의 ‘짝사랑’에 불과한 것이었다는 것을 알리는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영화진흥위원회 등은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인 뉴질랜드가 영화 흥행에 힘입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는 점에 주목해 ‘어벤져스2’ 한국 로케이션이 ‘관광효과 4000억원’, ‘국가브랜드가치 2조원’의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한국관광공사 등은 영화 장면을 활용해 한국 홍보영상을 만들기로 했다.

하지만 22일 한국관광공사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해당 영상이 ‘어벤져스2’ 개봉 이후 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마블은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 등과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계약의 세부 사항을 검토하면서 영화 영상을 이달에야 한국관광공사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상 유출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전 세계 개봉을 마친 영화가 꺼낸 이유로는 궁색하다. 마블이 제공한 영상은 그마저도 ‘비하인드 더 신’. 과하게 표현하면 영화에 쓰지 않은 ‘B컷’일뿐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마블은 ‘어벤져스2’ 로케이션을 계기로 국내에서 인지도를 크게 올렸다. 20∼30대 관객에겐 익숙하지만 중장년층에게 마블은 낯설었다. 하지만 대대적인 촬영 지원과 같은 시기 거의 모든 뉴스의 소재로 다뤄지면서 ‘어벤져스2’와 그 모태 브랜드인 마블은 전 세대에 각인됐다. ‘어벤져스2’가 1편보다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 속에 1400만 관객을 불러 모은 것도 한국 로케이션을 통해 얻은 전 세대의 관심이 결정적인 배경이 됐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마블 영화는 이제 한국에서 ‘흥행보증수표’로 통한다.

이 같은 ‘흥행 싹쓸이’는 결국 한국영화 침체의 부메랑이 되어 날아올 수도 있다. 할리우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그저 멀거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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