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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딸 수 있다’는 환상이 도박중독 첫 단계
자살·이혼·약물사용·음주증가 등 문제 야기
혼자서는 절대 못 헤어나…전문가 상담 먼저
‘손가락을 잘라도 도박은 한다’는 말이 있다. 도박중독에서 벗어나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다. ‘나는 괜찮겠지’ ‘이번 한 번만 따면 잃은 돈 다 갚고 손을 뗄거야’하고 자기 최면을 걸지만 도박중독의 ‘예외’는 그리 많지 않다. 한 번 빠지면 장맛비에 둑 무너지듯 삶이 무너진다. 도박중독의 덫에서 벗어나는 길은 뭘까.
● 성인 100명 중 5명꼴로 도박중독…30∼50대 고소득 남자 유병률 높아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조사한 2014년 사행산업이용실태에 따르면 우리나라 도박중독 유병률은 5.4%. 영국(2.5%) 프랑스(1.3%) 뉴질랜드(1.7%)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다. 만 20세 이상 성인 100명 중 5명은 도박중독 유병자라는 얘기다. 인구로 환산하면 약 207만 명에 달한다. 이중 57만여명은 도박으로 부적응적 결과가 발생하고 도박행동에 대한 조절력을 상실한 위험군에 속한다. 도박중독이 나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다.
인구학적 특성을 보면 남자일수록(남자 8.9%, 여자 2.0%), 30∼50대 연령대에서(30대 6.9%, 40대 6.5%, 50대 6.2%), 소득이 높을수록(월 400만원 이상 11.4%, 월 100만원 미만 4.0%) 중독률이 높았다.
도박중독 상담 및 예방 치료를 하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지난해 내담자 305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도박 종류별로는 스포츠도박(온라인 42%, 오프라인 52.1%)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이어 카지노(온라인 17.6%, 오프라인 15.1%) 카드, 화투, 경마, 경륜 순이었다. 도박중독 상담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에 상담 및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횟수도 2011년 1만2538건에서 2014년엔 2만3092건으로 폭발적 증가세를 보였다.
● ‘돈을 딸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면 이미 도박중독 1단계
도박중독은 도박으로 인해 본인, 가족 및 대인관계의 갈등이나 재정·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도 자기 의지로 도박행위를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도박중독에 빠지면 도박에 대한 통제력이 상실되고 각성이나 흥분 유발을 위해 베팅 금액을 늘리는 특성이 있다. 급기야 도박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거나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으로 변하는 금단현상에 이르게 된다.
그러면 도박중독은 어떻게 진행될까. 우연한 기회에 도박에 손을 댔다 돈을 따게 되면 흥분하게 된다. 때론 ‘대박’도 경험한다. 이럴 경우 ‘돈을 딸 수 있다’는 환상에 빠지고 이를 이루기 위해 배팅액을 늘리게 된다. 이른바 승리단계로 도박중독에 빠지는 첫 단계다.
승리단계를 넘어서면 손실단계로 접어든다. 도박에 대한 집착으로 빚이 늘어나고 이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빚을 지게 된다. 이 정도에 이르면 대인관계에도 금이 간다. 세 번째 단계는 빚을 갚아줄 것을 주변에 요청하면서 대인관계서 소외되고 도박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바로 절망단계다. 이 단계에 접어들면 법적인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 마지막 단계는 포기다. 자살, 이혼 등의 문제를 야기하고 금단증상과 약물사용, 음주증가로 이어진다.
한국마사회 도박중독예방 및 상담센터인 렛츠런 유캔센터 임상심리전문가 이재갑 박사는 “도박중독에 빠진 환자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분비하는 뇌의 특정 영역에 잘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며 “뇌에 구조적인 문제는 없지만 뇌 기능이 뒤틀려 있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인간관계에 짜증을 내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다”고 밝혔다.
● “도박중독은 혼자서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전문가의 도움 필수”
도박중독은 혼자서는 절대 빠져나오지 못한다. 가족이나 주변인의 도움이 꼭 필요하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도박중독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치료는 1336 전화상담부터 시작한다. 24시간 365일 운영한다. 비밀보장은 기본. 온라인 1대1 상담도 진행한다. 전국 11개 센터에 전문 상담사가 100명 가까이 상주하고 있다. 상담사와 상담을 하면서 빚을 갚는 법부터 도박중독의 원인을 함께 찾아가는 과정을 거친다.
상담과정은 12주. 매주 1회씩 3개월간 기초상담을 한다. 이어 ‘단도박(도박을 끊는 것)’을 시작한 뒤 심리치료와 가족치료를 한다. 도박자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가족 구성원의 심리치료도 병행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회복된 사람들의 모임인 한국단도박모임(Gamblers Anonymous)에 매월 1회 참여하면서 도박중독에서 벗어난 사람들과 함께 전문가의 도움을 이어간다. 모든 과정은 무료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이광자 원장은 “도박으로 돈을 딸 수 있다는 생각은 도박중독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도박중독은 질병이다. 혼자서는 절대 그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따라서 주변인의 협조가 필요하다. 일단 도박중독 증세가 나타나면 전문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