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인간문화재 된 해태출신 5총사

입력 2015-12-11 05: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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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장성호(38)가 7일 현역은퇴를 선언하면서 1990년대까지 KBO리그를 호령했던 해태왕조 출신 선수들은 이제 다섯 명만 남았다. NC 이호준과 LG 정성훈, kt 김상현, 롯데 강영식, 한화 김경언(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이 그라운드를 꿋꿋이 지켜나가고 있다. 스포츠동아DB

kt 장성호 은퇴로 해태출신 선수 5명만 남아
해태 ‘공포의 붉은 상의·검정바지’ 기억들
그들이 뛸 때마다 그 시절 향수도 새록새록

해태의 붉은 상의-검정 바지는 1990년대까지 그라운드에서 상대팀에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선수 시절 해태를 상대했던 수많은 코치들은 “검정 바지가 우르르 몰려나오면 뭔가 위압감 같은 것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해태 왕조’의 주역이었던 선동열 전 KIA·삼성 감독은 “지금 생각하면 검은색 바지 입고 여름에 어떻게 공을 던졌는지 모르겠다. 정말 더웠다. 원단도 최근 유니폼과 달라서 두꺼웠는데, 땀이 배출이 안 돼서 흥건히 젖곤 했다”며 “그래도 모든 선수에게 큰 자부심을 주는 유니폼이었다”고 기억했다. 이강철 넥센 수석코치는 “여름에 정말 더웠던 기억이 난다. 스파이크도 검은색이어서 손을 댈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며 웃었다. 2011년 7월 ‘올드 유니폼 데이’에서 다시 해태의 상징 검정 유니폼을 입었던 이건열 당시 KIA 타격코치(현 동국대 감독)는 “오랜만에 입으니 붉은 색 피가 다시 끓는 것 같다”고 했고, 이종범(은퇴)은 “돌이켜보면 상대팀에 굉장히 큰 위압감을 주는 그런 유니폼이었다”고 했다.

한때 고 앙드레 김이 디자인했다는 유언비어가 나돌기도 했던 해태의 ‘검빨’은 영국 왕실근위병의 군복 색깔을 본떠 디자인됐다. 당시 제과기업 해태는 ‘런던 드라이진’이라는 술을 출시하며 본격적으로 주류업계에 진출했는데, 술병에 영국 왕실근위병의 그림이 멋들어지게 들어있었다. 구단주가 감독, 코치를 영입한 뒤 첫 회식에서 런던 드라이진을 마시다가 ‘근위병이 멋있으니 유니폼도 같은 색깔로 하자’고 해서 결정됐다는 재미있는 야사가 남아있기도 하다.

해태의 유니폼은 한국시리즈 9회 우승을 함께했다. 2001년 해태를 계승한 KIA도 붉은 색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검은색 바지는 역사가 됐다.

7일 장성호가 kt 유니폼을 벗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장성호의 그라운드 작별은 개인통산 2100안타를 기록한 대타자의 퇴장과 더불어 6명밖에 남지 않았던 ‘해태’ 출신이 이제 5명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5명이 남아 ‘인간문화재’급으로 불러도 손색이 없는 5총사는 내년에도 현역으로 뛰며 붉은 상의-검정 바지가 남긴 전통과 추억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해태 출신 5총사의 맏형은 이호준(39·NC)이다. 1994년 해태에 입단해 2000년 SK로 이적하기 전까지 6시즌 동안 검정 바지를 입었다. 이호준은 “아버지가 코치분들께 ‘죽지 않을 정도만 때려서라도 사람 만들고 좋은 선수로 키워주십시오’라고 했는데,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 혼나면서 훈련했다. 팔이 부러진 적도 있었다”며 웃은 뒤 “김응룡 감독께서 전지훈련 때 매일 밤 방으로 불러 당신 눈앞에서 닭고기 한 마리를 다 먹게 했던 일이 기억난다. ‘많이 먹고 덩치 키워라’라고 하셨다”고 그 시절을 더듬었다.

김상현(35·kt)은 1999년 군산상고 3학년 때 건국대에 진학할 예정이었지만 스스로 “계약금은 안 받아도 괜찮다. 오랜 꿈이었던 해태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간청해 해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00년과 2001년 상반기를 함께했다. 2002년 LG로 트레이드됐지만, 2009년 KIA로 돌아와 꿈에 그리던 붉은 유니폼을 다시 입고 우승까지 맛봤다.

정성훈(35·LG)은 1999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고졸 야수로 해태에 1차 지명을 받았을 정도로 크게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광주일고 1학년 때부터 최희섭, 이현곤, 김병현 등 쟁쟁한 선배들과 함께 주전으로 뛰며 전국을 호령한 ‘해태의 적자’였다. 해태에서 2년, KIA에서 2년을 뛴 뒤 2003년 현대 박재홍과 트레이드됐다.

강영식(34·롯데)은 김응룡 감독이 가장 사랑한 덩치 큰 왼손잡이 투수였다. 2000년 해태에 입단했고, 김 감독을 따라 2001년 삼성으로 옮겨간 ‘코끼리 감독’의 애제자였다. 마지막 해태 5총사의 막내는 김경언(33·한화)이다. 2001년 입단해 시즌 도중 KIA 로고가 새겨진 유니폼을 입었다.

그라운드에 5명 남은 해태 출신 야구선수들. 그러나 이들을 압도하는 더 희귀한 인간문화재도 존재한다. 쌍방울 유니폼을 입었던 현역 선수는 이제 딱 1명만 남았다. 1999년 쌍방울의 1차 지명을 받고, 춥고 가난했던 그 해 레이더스 멤버로 뛴 이진영(35·kt)이 당당히 살아있는 추억으로 그라운드를 지키고 있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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