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여행]가을바다, 그 짙어짐. 속초

입력 2015-12-16 16:37: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모두투어 제공

가을, 세상의 모든 색들이 더욱 짙어지고 그에 따라 이상한 쓸쓸함과 까닭 없는 허전함이 묻어나는 계절. 여름과 겨울 바다에 밀려 모두가 바라보지 않는 가을의 깊은 바다는 그래서 더욱 그런 정서를 닮아있다. 가을 그리고 바다, 그 짙어짐의 끝에 속초가 있었다.

인제를 지나고 미시령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오면 비행기가 부드럽게 착륙하듯 닿는 곳에 속초가 모습을 드러낸다. 속초로 들어가는 일주문 같은 울산바위는 오늘도 어김없이 웅장하고 또 마치 세상을 빼꼼히 내다보는 익살스러운 모습도 보인다. 원래 울산바위는 울산에 있었다. 신이 벌인 바위 경연대회에 참가하고자 울산에서부터 금강산까지 올라왔던 울산바위는 힘에 부친 나머지 이곳 설악산에 주저앉고 만다. 울산바위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세를 걷어가던 울산 원님은 신흥사의 동자로부터 더 이상 세를 낼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바위를 통째로 이고 가려고 했지만 동자승은 영랑호와 청초호 주변에 자란 풀들을 엮어서 새끼를 꼰 뒤 울산바위를 묶어 결국 울산바위를 이곳에 다시 머물게 했다. 묶을 속束, 풀 초草. 속초의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속초관광수산시장
시장이란 그 지역 사람들의 삶의 축소판과 같다. 사람들의 물건과 사람들의 거래 그리고 그 속에서 촘촘하게 이어지는 서로간의 복잡하고 수많은 관계들. 속초시장을 먼저 찾은 이유는 그런 모습들을 유연하게 풀어내는 시장사람들의 호흡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6.25이후 속초가 수복되자마자 시작되어 곧바로 삶의 난전을 열었다. 이후 전국에서 손꼽히는 건어물시장으로 자리 잡았고 몇 해 전에는 ‘여행하기 좋은 전통시장 10선’에도 선정됐다. 속초관광수산시장이 공식 명칭이지만 사람들은 아직 중앙시장이라는 친근한 이름이 편하다. 바로 옆이 바다이다 보니 수많은 수산물이 먼저 시장을 메우고 각종 갖가지 생필품과 속초 특유의 먹거리들이 그 뒤를 따른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닭강정집도 여전히 바쁘다. 튀각을 맛보고 가라는 상인의 억양에는 반드시 이것을 사가라는 주문이 없다. 풍부하게 또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앙시장, 이곳은 속초에서 매일 벌어지는 잔칫집이다.
http://sokchomarket.com/main/

영랑호와 청초호
지도를 보면 석호인 영랑호와 청초호는 마치 허파처럼 심장인 속초 시내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다. 석호란 여러 자연현상으로 인해 이동된 모래가 바다의 일부를 막아서 생겨난 호수로 바로 위아래 동네인 고성의 송지호와 강릉의 경포호 등이 잘 알려진 석호다. 영랑과 청초는 비슷한 성질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쌍성호라고도 불리지만 영랑호는 물이 아닌 신화를 담고 있기에 좀 더 특별하다. 삼국유사는 금강산에서 수련을 하던 신라의 화랑들이 무술대회를 위해 경주로 내려가는 도중 영랑이라는 이름의 화랑이 이 호수에 비친 설악의 모습에 반해 대회를 포기하고 이 호수에 머물러 살았다고 전한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버린 호수는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결국 같은 물로 설악을 이고 속초를 담고 있다. 호수를 따라 걷다보면 속초 8경 중 하나인 커다란 크기의 범바위가 나온다. 범의 형상을 하고 있어 범바위로 불리는 이곳은 실제로 예전에는 범이 나타날 정도로 인적이 드물고 숲이 울창했다고 한다.
속초항을 지나 이어지는 금강대교와 설악대교를 건너면 바로 드넓은 청초호가 모습을 드러낸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띠고 있는 청초호는 특히 풍랑이 미치지 않아 여름 태풍이 지나갈 때면 속초 어선들이 대피 정박지로 이용하곤 한다. 잔잔한 호수 위에 여리한 풀섶들이 흔들리고 물결이 영랑호와는 달리 청초호는 속초의 도심을 시원하고 커다랗게 담고 있다. 호수의 물길은 바다로 이어져 청초호는 동해에게 동해는 또 청초호에게 서로의 물을 나눈다. 물이 합쳐지며 이제 그 둘은 서로 한 가지가 된다. 바다와 속초사이에서 호수라는 이름으로 살포시 양쪽의 손을 잡아주는 청초호. 청초한 그녀의 얼굴은 뒤편에 자리 잡은 속초 시내로 이어지고 더 깊은 안쪽으로 펼쳐지는 설악으로 여울진다.

아바이 마을과 갯배
아바이 마을은 청초호 입구, 호수의 물이 살며시 바다와 만나기 위해 옆으로 빠진 물길에 있다. 원래 모래톱으로 이루어져 뭍 바깥으로 똑 떨어져 있는 곳이라 아바이 마을은 엄밀히 말해서 섬이다. 사람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았던 곳이었으나 한국 전쟁 당시 내려온 함경도 피난민들의 임시거처로 쓰인 것이 오랜 세월동안 결국 그 땅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의 정착지가 되어 속초 한편에 남았다. 아바이 마을로 들어가 위해서는 먼 길을 돌아와야 하는 차로 보다는 갯배를 이용하는 것이 편리하다. 단돈 200원으로 40여 미터의 물길을 천천히 건너는 것. 이는 분명히 짧지만 그 다른 어떤 것보다 속초의 얼굴, 속초의 물을 천천히 어루만지는 것과 같다. 배에 오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긴 쇠막대기를 가지고 쇠줄을 끌어 갯배를 반대편 선착장에 댄다. 다소 아쉬운 거리와 시간이지만 당시에 서둘러서라도 육지의 소식을 듣고 싶었던 실향민의 마음을 생각해본다면 이 거리는 단순히 물리적인 시간을 넘는다.

아바이 마을 맛집 <옛 북청 아바이 순대>
아바이 마을에서는 역시 아바이 순대가 최고의 메뉴다. <옛 북청 아바이 순대>집은 우선 맛에 있어서 주변과 비교해 항상 최고의 점수를 받는 집이다. 주인장 내외가 직접 텃밭에서 재배한 싱싱한 채소와 야콘을 섞어 만든 효소로 음식을 조리해 조미료 맛이 느껴지지 않아 텁텁한 맛이 없고 깔끔하다. 서비스로 제공되는 젓갈 비빔밥도 넉넉하다. 안주인의 서글서글한 친절까지 느껴지는 집.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A 강원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길 7-2
T 033-632-7243

모두투어 제공


학무정과 한옥마을
설악으로 들어가는 입구 마을인 도문동 한옥마을에 있는 정자 학무정鶴舞亭은 속초 선비들의 풍류가 숨 쉬는 정자로 속초 8경중의 하나이자 문화재다. 비교적 가까운 시절, 속초 출신 구한말 성리학자 오윤환이 세운 것으로 정자 모양이 특이하게 육각으로 되어있어 이곳 사람들은 육각정이라고도 부른다. 당시 속초 선비들의 학습과 회합장소로도 쓰였던 학무정 앞에는 망곡터라는 비석이 있다. 고종황제 승하 후 돌로 제단을 쌓아 3년 동안 북쪽을 향해 곡을 하며 제사를 지낸 곳으로 이곳 사람들의 나라에 대한 애끓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곧고 잘생긴 송림의 호위를 받으며 한적하게 쉼을 누리고 있는 정자의 4면에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쓰인 현판이 걸려있어 특이하다. 남쪽에는 학무정, 북쪽에는 영무정, 북동쪽의 인지당 그리고 남서쪽의 경의재. 아무도 없는 정자에 앉아 솔바람을 맞는 것이 바로 학이 춤을 추는 학무처럼 선계仙界가 아닐까.
투박한 돌담이 인상적인 도문동의 한옥마을은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크게 조성된 곳은 아니다. 그래서 더욱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분위기 속에 머물러 있다. 묵은 느낌이 나는 빼곡한 돌들은 담을 이루고 그 담은 마을 집들 간의 행정상의 경계를 나눌 뿐이다. 건강하게 잘 자란 소나무는 마을 뒤편에서 숲을 만들어준다. 휘영청 기울어진 감나무에서는 감이 곧 투박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져 잠시 땅을 홍시 빛으로 물들일 것이며 여름철의 옥수수 밭과 봄의 벚꽃은 이 한적한 공간에 각 계절의 숨을 불어 넣을 것이다. 게다가 설악산이 바로 앞에 있으니 무엇이 더 필요할까. 이곳에 서 있으면 설악산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에, 짙어지는 가을의 입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신흥사
아바이마을의 갯배가 속초의 얼굴을 어루만진다면, 설악은 속초를 품속에서 두고 쓰다듬는 것처럼 속초 전체를 감싸 안는다. 그 품속으로 더 들어가다 보면 신흥사가 있다. 설악산은 보통 외설악과 내설악으로 구분을 하는데 내설악을 대표하는 사찰이 용대리 백담사라고 하면 설악동 신흥사는 외설악을 대표하는 고찰로 자리한다. 이 땅의 많은 고찰에 그의 이름이 실리지 않은 곳이 드무나 이 신흥사 역시 서기 652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붉게 혹은 더 붉게 짙어지는 설악산의 입구로 들어가 매표소를 지난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오른편에 무게가 108톤이나 된다는 엄청난 크기의 청동 좌불상을 만나게 된다. 2천만 불자들의 보시금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고 있는 통일대불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 신흥사로 들어가면 먼저 사천왕상이 험악한 얼굴로 어리석은 중생을 타이른다. 신흥사는 그 역사와 명성을 가늠했을 때 규모가 그다지 큰 사찰은 아니다. 수많은 세월동안 향성사와 선정사 등의 이름으로 바뀌면서 이어져오고 있지만 그때마다 의도적으로 사세를 확장시키지 않은 빗물욕非物慾을 엿볼 수 있다. 경내에 거니는 사람들은 행락객이든 불자든 불가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불심을 공유하며 이 신흥사의 가을을 조용하게 꾸미고 있을 뿐이다.

등대전망대와 영금정
속초는 원래 동해안의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6.25 전란 후 휴전선을 바로 앞에 둔 속초는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항구 개발이 절실했고 때문에 덩달아 빈번한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성장해온 도시다. 속초에 등대가 세워진 것은 그 무렵이다. 이제는 군사적인 역할을 조금 내려놓고 속초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등대는 속초 8경 중 첫 번째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속초를 대표하는 곳이다. 오르는 길은 두 코스가 있는데 영금정 쪽보다는 나무계단으로 오르는 길이 다소 수월하다. 전망대에서는 속초의 산과 바다, 호수와 속초 시내를 모두 담아갈 수 있고 날씨가 좋은 날은 설악산의 대청봉까지 또렷하게 보여 속초를 한꺼번에 익히기 위해서 첫 코스로 잡는 사람들도 많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망망한 동해와 반대편의 굽이치는 백두대간 산자락의 모습은 등대전망대가 가히 속초 8경 중 으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영금정은 속초 등대전망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걸어서 갈만한 거리에 있다. 영금정은 파도가 등대 동쪽의 석산에 부딪힐 때 나는 신비한 음곡이 마치 거문고 소리를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동해안 전체를 대표하는 몇몇의 일출 포인트 중에서도 가장 앞자리에 놓이는 곳이며 이곳에서 보는 가을 나절의 동해 물결은 검푸른 청색이거나 짙푸른 쪽빛으로도 보인다. 급하지 않은 가을 바다에 만들어진 파도는 바다에 쳐놓은 커튼처럼 수면 위에 가지런하게 퍼져간다.

장사항
장사항이 있는 지역은 본래 뭍이 아니었다. 영랑호가 오랜 세월동안 모래가 쌓여 물이 가두어져 석호가 된 것처럼 이곳 역시 모래가 땅이 된 곳으로 모래기라고 불렸다. 속초에는 대포항이나 동명항처럼 이름이 알려진 항구들이 있지만 장사항은 그런 번잡하고 다소 관광지화 된 항구의 정취에선 조금 빗겨나 있는 곳이다. 고성과 인접해 있는 까닭에 북쪽으로 올라가는 지리적인 연계도 좋을 뿐 아니라, 규모가 크지 않은 작은 항구이기 때문에 복잡하지 않은 호젓한 어촌마을을 느끼고 싶다면 장사항은 그런 마음을 받아줄 것이다. 바다 쪽으로 나가는 골목에서는 현지인들의 삶의 소리가 들리고 판매가 아닌 가족의 식탁에 오를 오징어들이 집 대문에 걸려 있는 모습은 장사항을 찾게 만드는 이유다. 짧지만 장사항의 해변을 걷고 장사항 공원을 지나 바다 쪽으로 나있는 방파제로 나가본다. 장사항의 끝에 서면 비로소 속초의 반대편이 보인다. 청초호나 등대에서 본 것과는 다른 속초 한 켠의 수수한 모습이 멀리 실루엣처럼 보이는 설악산을 배경으로 드러난다. 장사항 끝에서 만나는 가을. 비로소 속초의 가을이 짙어짐이 보인다.

장사항 맛집 <청정해역>
맛집을 고르는 기준은 우선 맛에 있다. 맛이 좋기 위해서는 재료가 싱싱해야 하는 법. 이 집 역시 식당 뒤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기른다. 상추는 물론 콜라비와 도라지도 기르기 때문에 맛은 이미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대표메뉴는 역시 물회다. 오랜 기간 동안 배를 탔던 주인장이 내놓는 물회에는 멍게와 가자미, 전복, 소라 등이 푸짐하게도 들어가 있어 입 안에 넣자마자 맛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 직접 짠 들기름으로 버무린 회덮밥 또한 인기다.
A 강원 속초시 장사항해안길 59
T 033-637-0027

제공 : 모두투어(www.modetour.com, 1544-5252), TRAVEL MAGAZINE GO ON

<동아닷컴>



뉴스스탠드